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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가게에서 일본을 엿보다!

세계문화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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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문화 현미경으로 경험하다]

자전거 가게에서 일본을 엿보다!

 

  24년 전인 1993년, 일본 수도권의 어느 동네 골목 자전거 가게가 있었습니다. 자전거 수리도 하고 팔기도 한 그런 가게죠. 가게 앞에는 동전 10엔을 넣으면 에어 컴프레셔가 작동해 공기가 주입되는, 소화전 모양을 한 기계가 놓였습니다.

  그것을 호기심 있게 바라보고 있는 한국 유학생 한 명이 마음으로 한국의 동네 자전거 가게를 그려 봅니다. 가게 안에는 자전거가 진열되어 있고, 밖에는 손잡이를 상하로 움직여 공기를 넣을 수 있는 수동 펌프가 개 밥그릇과 함께 무심히 놓여있지요. 좀 더 생생하게 묘사하자면, 잔뜩 녹슨 자전거와 공구 상자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고, 반팔 런닝구에 담배를 입에 문 주인아저씨가 무심하게 내기 장기를 두는 그런 곳. 수동 펌프는 누구든 쓴다고 말하지 않아도 예의 없다고 탓하지 않고, ‘아재요, 뽐뿌(펌프) 한 번 쓸게요’하면 허락받을 줄 알고 쓰면 되는 물건이었지요.

 
  아무리 배추 농사가 흉작이라도 식당 김치는 무한리필이 가능하고, 돼지고기 한 근을 사더라도 한 근 반을 신문지에 썰어 넣어줘야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는 인심 좋은 대한민국에서 온, 이 유학생에게는 10엔을 넣어야 공기를 뿜어주는 이 기계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바로 ‘문화충격’culture shock이었지요. 반찬도 돈 내고 먹어야 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공짜인 공기도 돈 내고 쓰라 하니 너무나 야박해 보였으니까요. 당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인들이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로 인한 반감때문에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고 비아냥거릴 때였고, 우리도 그 유행사조에 편승을 하던 때이니, 이 청년에게는 반일감정의 ‘확증편향’의 증거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지요. 그 청년은 Gray Market에서 이란인에게 1000엔당 5장으로 구매한 국제전화카드(공식가격은 1장에 1000엔임)로 이 사실을 고향 친구에게 급히 타전합니다.

 

  “친구야, 요기는 자전거 뽐뿌를 쓰는데도 70원(당시 환율)을 내야 한다.”
  “진짜가? 일본 사람들 살벌하게 사네.”        

 

  결국 청년은 10엔은 에어 컴프레서를 돌리는 원가로 여기고 이 문화충격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합니다. 이후, 이 청년은 숙소에서 20분 거리인 전철역까지 갈 때나, 휴일에 근교로 놀러 가는 일로 자전거를 이용했는데, 공기주입에 1년에 20엔을 사용했습니다. 만약 공짜였거나 주인에게 청년과 같은 또래의 딸이 있었더라면, 가게 아저씨랑 말 트고 지내면서 일본어 실력이 늘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상상을 했지만, 그런 기회는 당최 오질 않았지요. 그 이후에도 일본만의 특이한 정경이 펼쳐지고, 그럴 때마다 청년은 나름의 해석으로 일본문화를 이해하고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러면 이런 정경을 밥 딜런풍의 노래 가사처럼 묘사해 볼까요?

  하라주쿠에서 힙합 차림의 젊은이들이 광장에서 어지럽게 춤추고 노래하더니 
  놀던 자리 깨끗이 치우고 귀가하는 걸 보았소.
  시부야에서 신호등 색깔이 바뀌면 모세의 기적처럼
  행인들이 질서정연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사라지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소.
  전철이 아무리 늦어져도 누구 한 명 화를 내거나 불평하는 사람 없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는 걸 보았소.
  언제나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던 옆집 아저씨가 애니메이션 ‘캔디’에 나오는 캔디처럼 짙은 화장에 금발 가발, 빨간 원피스, 흰 스타킹 차림으로 외출하다 나와 얼굴이 마주쳤소.
  스미다강 다리 아래 그늘에서 심드렁하게 과월호 잡지와 캔을 모으고 있는 노숙자를 보았소.
  젊은 부부가 태어난 아이 이름을 ‘악마(惡魔)’로 짓겠다는 문제로 구청직원과 다툼이 있었다는 뉴스를 접했소.

 

  그렇게 일본을 관찰하고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겹겹이 퇴적되어 천천히 시상화석이 되어 갔고, 그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드디어 10엔에 대한 의문도 풀려갔지요. 에어 컴프레서의 원가 외에 다른 ‘문화코드’culture code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인 입장에서는 수리나 판매를 위해서 어차피 에어 컴프레셔가 필요하고, 단순 공기 주입이 아니더라도 중간 중간에 공기 압축을 위해 에어 컴프레셔는 가동됩니다. 일일 매출 중 단순 공기 주입용 수익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마케팅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공짜로 제공하는 미끼 상품으로 더 많은 판매 확대를 꾀하는 것이 나은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하겠지요.

 
  그러면 ‘에어 컴프레셔 공짜 X 일본인’이라는 조합으로 시뮬레이션을 현미경적 시각으로 돌려볼까요?
  이 일본인은 자기 집에서 4km 정도 떨어진 역 근처 쇼핑몰을 가다가 자전거 바람이 빠진 것을 확인합니다. 하필 근처 자전거 가게(A가게라고 합시다)는 단골 가게(B가게)가 아니죠. 만약 에어 컴프레셔가 공짜라면 그는 A가게에서 공기 주입하는 것을 머뭇거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본 정서상 전기세 등을 고려하면 분명히 공짜가 아니어야 하는 이런 호의를 받으면 후에는 뭔가 사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상호간의 예의인 거지요. 그가 A가게 주인에게 사례를 하는 방법은 다음에 일부러 A가게를 들러서 수리를 하거나 액세서리를 몇 개 사는 것이겠죠. 그렇게 되면 그는 단골 가게를 집에서 가깝고 이웃사촌처럼 편하게 지내는 B가게가 아니라, 집에서 훨씬 멀고 다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하는 A가게로 옮겨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겁니다.

 

  이럴 경우 A가게와 B가게 중 누구에게 이득이 될까요? 처음엔 B가게 단골이 A가게로 옮기게 되니 A가게 손님이 늘어나겠죠. 그런데 이런 일이 기존의 A가게 단골에게도 발생하게 되고 그도 원치 않게 단골 한 명을 잃게 되므로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부득이 하게 단골이 아닌 가게로 원정 수리를 하러 가야만하는 (조금이라도 마음의 부담이 덜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고객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게 공짜가 아니고 10엔을 넣어야 된다면 가게 주인이나 고객은 이 일본적 딜레마에서 탈출하게 됩니다. 사소한 이런 행위에 대해 손님은 정당하게 10엔을 지불하고, 이제 그의 마음에 남아있던 일본적 껄끄러움이 해결되는 겁니다. 다음에 간단한 자전거 수리를 하더라도 10엔으로 그 가게와의 부채가 해결 되었기에 그 가게로 소위 ‘보은報恩출장’을 갈 필요없이 근처 단골 가게로 가면 되는 거지요. 이게 단돈 10엔이 일으킨 일본의 경제와 문화의 순환입니다.


  한가하게 내기장기를 두고 있는 한국의 자전거포 아재의 다음 수는 공짜 뽐뿌를 쓴 안면부지 행인의 괜한 부채감이 아닐까요?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말입니다.

서울시 마포구 황성진
monsunny@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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