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의 세계인 - 카자흐스탄]
카자흐스탄 유학생 ‘악지라’에게 듣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이야기
세계의 중심, 카자흐스탄을 소개합니다.
<카자흐스탄 민족통합의 날>
<카자흐스탄의 젊은 도시 '아스타나'>
카자흐스탄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소개합니다.
카자흐인들은 여유롭고 손님을 좋아해요. 또 한국인들이 볼 때 행동이 느리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일을 바쁘게 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차를 많이 마시는데 ‘카자흐스탄인의 몸은 70%가 물이 아니라, 차로 되어 있다’라고 농담할 정도죠. 손님대접에 있어 미리 상을 차려놓고 손님이 가기 전까지 상을 치우지 않거든요. 계속 차를 마시고 대화하며 손님을 접대하죠. 그런 가운데 자연스럽게 여유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오면 무조건 차 두 잔은 먹어야 하는데, 두개의 발을 가지고 있어 차를 두 잔 먹어야 한다는 우스갯 소리도 하곤 하지요.
저의 엄마를 한번 소개해 볼까요?
저의 엄마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시며 아주 똑똑한 분이에요. 카자흐스탄에 친척들을 보러 잠깐 왔다가 소련이 붕괴되는 바람에 돌아가지 못하고 남으셨지요. 그리고 엄마는 우리가 뭔가를 하고 싶다고 하면 절대로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대신 시작하면 일단 끝까지 해야 하고,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그만 두게 하는 원칙을 지키셨어요. 대학교 가는 것도 네가 할 수 있으면 하지만, 게으르면 절대 지원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죠. 그래서 장학금을 받는 시험을 보지 않고 한국을 가겠다고 제가 말할 때도 “그것은 너의 선택에 있어서 네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지금 이런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고맙죠.
너무 예쁜 한국말에 반해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한국 드라마를 좋아했는데, 더빙으로 듣다가 자막으로 보며 듣는 한국말이 너무 예쁜 거예요. 원래 말을 못 알아들으면 답답하고 듣기 싫은데 듣기에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어를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사는 남쪽 지역엔 고려인들이 많았지만 그들이 쓰는 한국어는 제가 배우고 싶은 한국어와는 달랐어요. 그래서 혼자 공부하다가 카자흐스탄에 공사하러 온 한국인에게서 한 달 동안 배우기도 하며 어느 정도 한국말을 익혔지요. 이어서 학교에 오신 한국어 선생님을 만나 정식으로 6개월을 배워 ‘한국어 능력시험’을 통과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정부 초청 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2015년에 한국에 오게 되었어요. 그때는 한국인들과 한국어로 대화하고, 한국인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제 꿈이었거든요.
한국문화, 빨라서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 와서 빨리 학교에 다니고 싶은 마음에 어학당에 다니지 않고 수업을 들었는데, 마치 비행기에서 강의실로 바로 뚝 떨어진 느낌이었어요. 초반에 한국생활과 학교생활을 동시에 적응해야 했던 것이 많이 힘들었죠.
제가 카자흐스탄에서는 제법 빠른 편에 속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빠르잖아요. 빨라서 좋은 점의 하나는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바로 나오는 거죠. 줄서도 빨리빨리 없어지고요. 하지만 여유롭고 느린 카자흐스탄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오니까 모든 게 정신없이 빠르더라고요. 예를 들어 유행이 빨리 변하는데, 하나가 유명해지면 사람들이 다 그리로 쏠리다가, 금세 다른 쪽으로 바뀌는 거에요. 저는 ‘이제 이게 좋구나’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벌써 다른 쪽에 가 있는 거죠. 하나를 충분히 생각하고 선택하기보다 남들이 선택하니까 그냥 따라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좁은 범위에서 옷 유행을 말할 수 있지만, 넓게 보면 학교나 직장을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 같거든요.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남들이 하니까 하고, 남들이 좋은 대학 가니까 나도 가야하고,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 가야 남들이 인정해 주니까 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사실 제가 한국에서 하고 싶은 공부 때문에 방황하고 시험도 보지 않아서 선생님께 혼도 나기도 했는데, 한국인들은 너무 다른 거예요. 제가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한국이 급속도로 산업화되면서 사람들이 정신없이 목표만을 가지고 살아와서 그런 것이 아니가 싶어요.
이런 한국의 모습에 ‘상대평가’하는 방식도 한 몫 하는데요. 저도 학교에서 이것 때문에 힘들었는데, 아무리 잘해도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늘 위축되고, 또 남들보다 잘하면 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남들보다 못하면 못한다고 평가받는 거지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심리학과
현재를 푸는 열쇠와 같은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저는 원래 물리학을 좋아해서 공대쪽으로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재미는 있었지만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이걸 계속하고 싶은가’를 질문해 보면서 여러가지 책을 읽다가 심리학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적용분야의 상담심리학이 아닌, 제가 뇌에 관심이 많아서 ‘인지심리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마음’이라고 하는데, 왜 그럴까?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인지심리학을 배우면서 많은 답을 얻었지요. 알파고 열풍으로 AI와 관련된 인지심리학에 관심이 많아졌지만, 저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아서 선택한 거예요.
또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데, 처음엔 역사는 주관적이고 정확히 알 수 없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나 공부하다 보니 과거를 연구해야 현재가 설명되더라고요. 카자흐스탄에 손님 대접을 잘하는 이유도 이전 역사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죠. 옛날 카자흐스탄인들도 유목민들처럼 이동을 하면서 마을을 형성했어요. 이런 가운데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로 가려면 굉장히 거리가 멀어요. 그래서 잠잘 곳이나 식량을 얻기 위해 아무 마을이나 들어가서 문을 두드리면 바로 손님이 되는 거예요. 집주인도 자신도 나중에 동일한 처지에 처한다는 것을 알고 무조건 문을 열어 최고의 대접을 하는 거지요. 만약에 접대를 거부하면 그 마을은 망신을 당하게 되는 전통이 옛날부터 있었어요. 이런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남게 된 거죠. 카자흐스탄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적도 우리 땅에 들어오면 손님이 된다.’이만큼 손님에 대해 철저한 것이 카자흐스탄의 문화라 할 수 있죠.
보통 사람들은 카자흐스탄이 가지고 있는 자원과 한국의 기술을 접목하는 것을 많이 말하며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상호교류를 진행시키지요. 그렇지만 저는 다른 각도로 문화적 교류를 하면 어떨까 생각해요.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요. 고려인들의 1세대로서 소련의 강제이주정책으로 카자흐스탄까지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많은 분들이 기차 안에서 죽으면서 힘들게 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이분들이 후손들에게 남긴 말 중에 ‘카자흐스탄인들이 베푼 은혜를 절대 잊지 말라’는 말이라고 해요. 그 이유는 고려인들이 힘들게 카자흐스탄에 도착했을 때에, 한 카자흐스탄인이 말타고 지나가길래 도와달라고 했지만 그냥 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이제 여기서 꼼짝없이 죽는구나’하고 생각했지만, 아무 반응없이 갔던 그 사람이 많은 말들과 사람들을 이끌고 와서 고려인들을 각자의 집에 나누어 수용해서 살아남게 해 주었기 때문인 거지요.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은 제가 사는 ‘크질오르다’지역에 있다가 서거하셨어요. 그분을 기리기 위한 ‘홍범도 거리’도 공식적으로 나 있죠. 또 크질오르다는 쌀로도 유명한데 이것을 재배하기 시작한 분들도 고려인들이었어요. 여기에는 첫 고려인 신문사나 고려인 극장도 있답니다. 카자흐스탄 인들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고려인들을 잘 몰라요. 그래서 홍범도 장군과 고려인을 매개로 카자흐스탄인들은 한국의 역사를 배우고, 한국인들은 카자흐스탄에 대해 서로 알아 가면 어떨까 하는 거죠.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묘역>
앞으로 독일에 가서 심리학 공부를 계속하려고 해요. 미국이 심리학에 있어 유명하지만 심리학의 근원지는 독일이거든요. 더불어 독일과 유럽의 부지런하면서도 여유로운 다른 문화도 느껴보고 싶고요. 3년의 한국생활 속에서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한다는 말을 들을 만큼 이제 한국과 이곳에서의 생활은 제 자신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뺄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습니다.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며 더 나은 성장의 기회로 만들고 싶습니다.
카자흐스탄에서 온 유학생 악지라
(이름의 뜻은 ‘하얀 해’)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3학년
0526zira@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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