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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는 왜 장수기업이 많을까요?

세계문화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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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장수기업을 찾아서]

독일에는 왜 장수기업이 많을까요?


  삼성이나 LG나 애플 같은 크고 유명한 기업이 아니라 왜 작지만 장수하는 기업을 공부하는지 물어오는 사람에게 저는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크고 잘 나가는 기업을 연구하겠습니까? 아니면 500년 된 기업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아남았는지 연구하고 싶습니까? 저는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입니다. 기업의 전통이 제대로 쌓여야 하는 한국에서는 크고 잘 나가는 기업보다 꾸준하게 몇 백 년 동안이나 훌륭하게 살아남은 증거를 가진 기업을 공부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천년의 오랜 역사를 지녔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내면에 역사의식이 부재한 한국인들이 이런 장수기업들을 제대로 배운다면 역사도 새롭게 창조할 뿐 아니라 역사의식을 가지고 기업하는 전통을 잘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창업을 하면 5년 내에 90% 폐업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여러 번 시도해보고 빨리 망해서 거지가 되는 것보다 하나를 제대로 만들고 구체적인 방법을 시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장수기업의 하나로 1530년에 창업한 독일의 ‘Prym’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림’은 어떤 기업인가? 

  12세대를 걸쳐 이어온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가족기업 중 하나입니다. 15세기에 황동과 구리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시작하였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윌리엄 프림(William Prym)에 의해 점차 기업의 형태를 띠면서 완제품 생산에 돌입하였습니다. 그 이후 점차적으로 폭넓은 제품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여, 현재 전세계적으로 5,0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하고 있는 글로벌기업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기업이 처음부터 잘 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외부적, 내부적 도전’을 어떻게 돌파했는가?

  종교개혁 이후 1530년부터 황동과 구리제품을 생산했던 ‘프림’은 개신교 가문이었는데, 16세기 당시 로마교 도시인 아헨지역에서 황동제작 권리를 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스톨베르그라는 지역에 다시 정착하여 제품생산을 계속해 나갔지요. 그리고 17세기 이 지역의 가장 큰 황동제작 가문과 결합하여 사업을 확장시켰습니다. 하지만 18세기 아연제련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황동 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었을 즈음, 프림가문은 이에 대처하여 황동 압연 소재 및 와이어 외에도 철 및 강철 재질의 최초의 완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이어진 19세기에는 윌리엄 프림(William Prym, 1811~1881)의 이름을 따서 기업 이름을 삼았습니다. 20세기까지 이어지는 400년된 기업이 되자, 그의 아들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프림(Heinrich August Prym, 1843~1927)은 영국 버밍엄에서 견습을 마치고 그곳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기계적으로 제조되는 최초의 금속잡화제품을 생산했습니다. 그는 또한 1927년 사망 직전, 아픈 사람, 일할 수없는 사람들, 노인들을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함으로써 회사 이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더불어 그 시대에 오스트리아에 지점을 마련했습니다.


  1903~1909년에는 ‘똑딱 단추’를 개량하여 스프링을 삽입하는 디자인의 특허를 획득하였고, 자동공정을 통한 생산을 처음 시도하였습니다. 1932년 경제공황으로 사업이 어려운 상황을 한스 프림은 황동 공장을 현대화하는 역설로 대처했습니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당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에 쓰일 터빈 버킷 및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오류를 범해 한스 프림은 1945년 연합군에 의해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족과 회사는 드레스덴지역, 랑겐 베르그 지역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폴란드의 자산을 많이 잃었습니다. 1960년이 되어서야 한스 프림은 잃었던 오스트리아의 모든 생산 현장과 부동산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프림에서 장수기업을 만드는 데 어떤 교훈을 받을 것인가? 

  프림사는 특이하게도 ‘가족기업’으로서 장수기업입니다. 무려 12세대 500년동안 어떻게 기업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프림 가문만의 특징을 네 가지로 뽑아봤습니다.

 

  첫째, ‘종교적 기초’입니다. 프림 가문은 처음 창업할 때부터 개신교 가문이었습니다. 로마교의 박해로 처음 공장을 열었던 아헨지역을 떠나야 했지만, 스톨베르그 지역에서 다른 개신교 가문들과 결합한 그들은 종교적 이념으로 사업을 이어나갔습니다. 

  둘째, ‘발빠른 기술개발’입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이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철과 강철로 된 완제품을 처음 생산했으며, 기계적으로 생산되는 첫 금속잡화제품을 생산했고, 똑딱단추를 처음 자동공정으로 생산하는 등의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셋째, ‘사회기여’입니다. 19세기 초 아픈 사람, 일할 수없는 사람들, 노인들을 돕기 위한 재단을 설립함으로 사회에 기여했습니다. 사회의 신뢰와 성실을 바탕으로 회사를 키운만큼 다시 사회에 기여를 한 프림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 사업이 힘을 받았던 거지요.

  넷째, ‘글로벌화’입니다. 프림이라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17세기와 18세기에 그들은 지역의 황동 산업을 확립하고 국제적 명성을 얻는 노력을 하여 프림이라는 브랜드를 널리 알렸습니다. 일찍이 오스트리아에 거점을 만들어 수출에도 힘썼으며 각국의 사람들을 고용하여 기업의 글로벌화를 촉진시켰습니다.


  ‘프림’은 가족기업으로 500년에 걸쳐 내부적, 외부적 도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한국인이 만들어 갈 기업으로 프림 같은 가족기업을 넘어서고 ‘가족적 사회기업’을 삼으면 너무 높은 목표를 세운 걸까요? 최상의 실력과 회사에 충성된 사람이라면, 혈연이 아니라 할지라도 후계자로 선정하는 건강한 ‘가족적 기업사회문화’를 만들어갈 때 프림같은 ‘가족적 장수기업’을 뛰어넘는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주)그린휠, 디자이너 유지형

designprod@naver.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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