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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와 사장님의 날카롭게 대치된 마음의 격랑을 타고 조율해 가는 김태훈 공인노무사!!

기업/창조기업들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8. 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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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기업스토리]

근로자와 사장님의 날카롭게 대치된 마음의
격랑을 타고 조율해 가는 김태훈 공인노무사!!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는 지금까지 제대로 운영하려는 기업이나, 바른 사회적, 문화적 운동들에 대해 가치를 두고 발굴해서 소개해왔지만, 노무사를 인터뷰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 8월호에는 근로자와 사장님들 쌍방의 애환을 모두 들어주고 서로의 날선 대립을 부드럽게 조율해 가는 김태훈 노무사를 만났습니다.

 

 

노무사라는 직업에 발을 담다.
  저는 꿈이 없던 청년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장래 희망란에 적었던 것은 썰렁하게도 ‘회사원’이었어요. 부모님이 공장에서 맞벌이를 하셔서 집안사정이 어려웠던 터라,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부모님이 원하는 아들이 될까만을 생각했지요. 개인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부터 ‘애늙은이’라는 소리를 들었죠. 그래서 대학도 취업 스팩트럼이 넓은 법대를 선택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 지도교수와 대화를 나누던 중, 교수님께서 저에게 “넌 꿈이 뭐냐”고 묻더군요. 전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며 “취업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죠. 바로 그때 저에게 날아온 것은 책이었습니다. 교수님께선 책을 가지고 제 머리를 한대 퉁하고 때리셨죠. 저희 가정 형편에 대해 물으시며 “너희 집안을 일으킬 생각은 없냐”고 하시더군요. 그 순간 ‘아! 내가 좀 더 욕심을 내야겠구나’해서, 28세까지 데드라인을 정하고 사시를 준비했는데 보기 좋게 떨어졌죠. 정말 죽을 만큼 공부를 열심히 안했던 거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해 가정에 보탬이 되겠다는 저에게 “공장에 가서 나사 하나를 조이더라도 일단은 대학을 나온 후 해라”라고 하며 저를 밀어 주셨던 어머님은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화이트 칼러로 보이는 금융권에 취업하길 바라셨습니다. 여러 낙방 끝에 드디어 금융권에 입사하게 되었고, 1년은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회사를 다녔죠. 급여도 높았고, 저 또한 만족했고요. 3년 정도 지나니 숫자만 보는 일이 너무 재미가 없었습니다. 다른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보며 이 회사가 잘 굴러가나 안 굴러가나를 판단해야 하기에 꼼꼼하지도 않은 제가 숫자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죠.

 

  31세에 월급날만 기다리고 살던 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답은 NO! 였습니다. 이렇게 10, 20년을 보낸다는 게 너무 불행할 것 같았습니다. 왜? 돈 때문에 회사에 다니니까! 그나마 제가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를 추억해보니, 비록 저도 어렵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 사람들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제게 표현할 때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워낙 사람을 좋아했던 저는 노무사 일을 하던 학교 선배의 말을 듣고,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를 도울 수 있는 노무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결심을 했지요. 무엇보다 새롭게 도전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깊은 고민 끝에 결국 사표를 던졌죠. 하지만 문제는 엄마를 설득하는 거였습니다. 다행히 엄마는 저의 고민을 들으시고 “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라고 하시더군요. 엄마는 제게 정말 큰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넓게 보고 깊게 품으시는 엄마를 저는 아주 좋아했지요. 이렇게 해서 노무사를 5년째 하고 있네요.

 

  전에는 근로자였다가 지금은 사장인데 맨 처음 노무사를 시작할 때는 친근로자 입장이었지요. 그러나 제가 막상 직원들을 데리고 일하다 보니 대표들의 고충과 애환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일의 핵심인 노와 사 사이를 조정할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잡으려고 합니다.

 

노사 간 가장 날카로운 상황을 조율하는 게 힘듭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게 제 역할인데, 의뢰인이건 아니면 대표이든 저에게 오는 상대방은 무척 좋지 않은 상황에서 찾아옵니다. 가장 날카로운 상태에서 이쪽도 저쪽도 조율하는 입장이다 보니, 맨 처음에는 근로자 측이 참이다 생각했지만 사장님들도 그 나름대로 이야기 할 게 많았지요. 서로가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있는데, 자기가 원하는 만족스러운 결과가 안 나올 땐 결국 저를 원망하게 되죠. 가장 많은 사례가 임금체불, 부당해고, 산재 등의 순인데, 한 달이면 10여건 정도를 기본적으로 처리하는 편입니다.

  역설적으로 경기가 어려우면 저희는 도리어 호재입니다. 그러나 이 곳 시장도 경쟁이 치열하죠. 어쨌든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 가면서 업무적인 것이 아닌 하소연까지 들어야 하는 부분도 참으로 힘듭니다. 중간에 딱 끊고 핵심에 들어가기가 어렵거든요. 어찌 보면 저희는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숫자가 싫어 직업을 바꿨는데, 이젠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죠!^^ 아는 선배가 대뜸 “너 요즘 무슨 일 하냐?”묻더군요. 망한 회사에서 임금 못 받은 근로자에게 임금 받게 한다고 하니 “야! 정말 힘든 일 하는구나! 망한 것도 힘든데 임금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냐”고 하더군요.^^

  “노무사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한마디에 그동안의 피로가 다 녹습니다.

 

  망한 회사에 국가 제도를 활용해서 근로자에게 임금을 일부 받아 주기도 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릅니다. 모두들 일단 회사가 망하면 못 받는다고 생각하죠. 이런 회사에게서 돈을 받아 근로자 통장에 입금이 되면 “노무사님! 너무 수고 하셨습니다”라고 되돌아오는 한마디 말에 그 동안의 피로가 다 녹습니다. 쌍방의 소리! 즉 근로자와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며 때론 설득하고 비위도 맞추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 합의가 잘 될 때에는 작은 일이라도 참으로 기쁩니다.

 

  6명의 어머님 연배 근로자에게 퇴직금을 받게 해 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임금체불건이었습니다. 제 어머님 연배의 근로자들 6명이 동대문에서 옷 만드는 회사에서 퇴직금도 못 받았다라고 하시며, 그 중 한 분이 먼저 저를 찾아 오셨지요. 제가 보기엔 최저임금도 못 받았고 사장은 월급에 이미 퇴직금이 포함되어 지급되었기 때문에 끝났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그 중 한 분이 퇴직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저를 찾아왔다면서, 6명이 짧게는 5년~20년 가까이 일을 했는데 퇴직금을 받을 수 있냐? 또 우리가 문제 제기해도 되냐?며 순진하게 묻는 분들이셨죠.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막상 자료를 준비하려니 근거 자료가 너무 없었습니다. 심지어 근로계약서도 없고, 월급도 통장이 아닌 현금으로 받았던 거죠. 저부터도 이런 상태에서 ‘퇴직금을 받아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지요. 그래서 전부 해결을 못한다하더라도 일단 일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하니, 주변에 사람들의 말을 듣고 증인 진술서를 작성했고 야유회 사진 등 회사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그분들에게 찾아오라고 했는데 다행히 월급봉투가 있었어요. 서류를 다 갖추어 고용부에 제출하자, 여자 사장이 처음에는 노발대발하더군요. 하지만 사장을 달래가며 그동안 직원들이 고생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 하지 않느냐 그리고 무엇보다 최저 임금도 못 받았다며 조정안을 내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던 사장도 끝내 인정하더군요. 다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을 받도록 해 주었습니다. 이에 어머님 나이 또래의 근로자들은 기뻐하며 아들 같은 저에게 맛있는 것 사주겠다고 하셨죠. 이 일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에서 제일 큰 문제는 ‘비정규직’입니다.
  저는 무엇보다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삼포시대’라며 결혼도 포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비정규직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근로자의 30~40%가 비정규직인 가운데, 임금도 정규직이 100만원이라고 한다면 비정규직은 60%정도 받으니 60만원인 거죠. 이러니 젊은층이 비정규직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사실 결혼은 엄두도 못내는 겁니다. 무엇보다 직장이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유럽과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을 비교할 때, 먼저 유럽은 ‘개인의 관점’에서 보고 우리나라는 ‘기업의 관점’에서 본다는 게 가장 큰 차이입니다. 사실 유럽은 비정규직을 좋은 제도로 잘 활용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악용하고 있는 거죠. 유럽의 경우 회사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인력의 탄력적 배치나 인력 공백시에 도입하고, 개인적으로는 본인이 만근할 수 없을 경우 시간활용을 하기 위해 스스로 비정규직을 신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정규직 월급이 더 높습니다. 그 이유는 비정규직은 고용이 불안하니 생활 자금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순전히 개인적 관점으로 보아주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회사의 관점’에서 봅니다. 우리 회사에 얼마 안 있을 텐데 왜 많이 주느냐 좀 낮게 줘도 되지 않느냐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정규직과 동일하게만 대우해도 좋을 텐데 말이죠. 비정규직은 개인이 경력개발 차원에서도 잘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편의점 알바를 해도 시급이 높아 먹고 살 수 있거든요. 앞으로 좋아질 거라 믿지만, 우리나라 노동 여건은 아직도 열악합니다. 제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월급을 설계해 주는 경우도 많은데, 사장님들에게 근로자의 월급이 얼마인지 물으면 근로시간에 비해 급여가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문지상에서 운운하는 연봉은 사실 왜곡된 경우가 많고요.
  우리나라 근로자 88%가 거의 중소기업 종사자인데 현재 시급이 6,470원입니다. 이러면 한 달에 135만원이지요. 시급 10,000원을 목표로 가지만, 사실상 이럴 때에 문 닫을 중소기업들이 많습니다. 순차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정부가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똘똘한 청년들은 실패하더라도 잡스 같은 친구들이 나올 수 있도록 창업에 도전했으면 합니다. 엄청 뛰어난 인재들이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대기업에서는 그렇게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지 않을 수 있거든요.

 

이 일의 의미와 앞으로의 꿈
  유한한 인생인데 회사에 묶여 있을 때보다는 그래도 내 시간이 조금이라도 늘어났고, 노사 문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진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안에서 배우고 느끼는 게 저에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또 제가 노동법을 코치하는 중견기업들이 직원들의 역량을 키우고 최종 목표인 좋은 인사제도를 만들어 대기업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노사는 서로 대치하는 관계가 아니라 정말 서로 잘 되어야 하거든요. 회사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관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노무법인 온누리 김태훈 대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광덕서로 62, 607호
(고잔동, 고잔법조빌딩)
031-403-0072
hoppang00@naver.com

  고3학생들을 대상으로 노동법을 강의하는 김태훈 노무사는 ‘청소년기 때 나처럼 아무 생각없이 살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꼭 한다고 한답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의 시선에 의해 살지 말라고요. 본인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꼭 고민해보라고요. 마지막으로 그럼 현재 직원들에게 잘 해주냐고 하니 유쾌하게 웃으며 “네! 잘해주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김태훈 노무사에게 사람 냄새가 물씬 났습니다.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4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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