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슬로푸드 운동]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김종덕 회장을 만나다!
코를 에일 듯한 매서운 바람이 부는 아침,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김종덕 회장을 만나기 위해 방배역 부근 ‘오페라빈’ 커피숍에 30분 일찍 도착하여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김종덕 회장은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오셨죠. 바로 그가 쓴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였습니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일을 하기까지
대학에서 만 34년 동안 사회학 교수로서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교육민주화 관련 일들에 실천적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논문도 관심분야였던 농업, 농촌문제를 다루었고요.
1994년에 미국에 연수를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패스트푸드와 관련된 책, 조지 리처(George F. Ritzer)의「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원제목 ‘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를 접하고 번역하게 되었죠. 이 책의 요지는 맥도날드점에서 나타나는 효율성, 예측가능성, 계산가능성, 합리성 등이 사회 전반에도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을 번역한 것을 계기로 슬로푸드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회원으로 가입한 뒤 2000년 10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개최된 제1회 국제슬로푸드 시상대회 심사위원으로 초대받아 참석했지요. 그때「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의 저자인 조지 리처(George F. Ritzer)의 옆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글과 책을 통해 우리나라에 슬로푸드 운동을 본격적으로 소개했고, 그것이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일을 하게 된 인연이 되었죠.
‘슬로푸드운동’은 무엇이고, 이 운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
‘슬로푸드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고, 1989년 파리에서 14개 나라들이 서명하고 공표한 ‘슬로푸드 선언문’을 통해서 전세계적 운동이 되었습니다. 당시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결과, 소의 단백질이 변형된 광우병이 유럽에서 발병해 사회문제화 되면서 사람들이 먹거리에 상당한 공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먹거리, 제대로 된 고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슬로푸드운동에서 답을 찾은 거죠.
‘슬로푸드’는 음식이기도 조직이기도 하며, 운동이자 철학이기도 합니다. 음식으로서 슬로푸드는 좋고(good), 깨끗하고(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말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좋음’(good)은 맛있고 신선하고 풍미 있는 지역의 제철 먹거리이며, ‘깨끗함’(clean)은 환경과 인류건강에 해를 끼치지 않고 동물복지를 지키며 생산된 먹거리입니다. ‘공정함’(fair)은 농민들과 생산자들의 수고를 인정해서 정당한 가격을 보장한다는 겁니다.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은 clean까지는 얘기하지만 good이나 fair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슬로푸드운동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다양성의 보호입니다. 왜냐하면 산업화로 다양한 지역의 많은 품종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거든요. 종의 다양성이 없어지면 생명의 기반이 약해집니다. 예를 들어 1860년대 아일랜드에서 감자역병이 발생해 100만명 이상이 죽고, 수백만명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결국 감자의 역병을 치료한 백신을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 있는 감자 품종에서 가지고 왔어요. 만약 안데스 산맥에 있는 감자가 사라졌다면, 백신을 찾을 수 없어 인류가 감자를 먹을 수 없었겠지요.
또, ‘슬로푸드 생물다양성재단’을 만들어 맛의 방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소멸위기에 처한 3,900개 정도의 품종과 음식이 맛의 방주 목록에 등재되었고, 우리나라는 55개 품종과 음식을 맛의 방주에 등재했습니다. 그런데 등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종자나 품종의 소중함을 알리고, 그것을 섭취해 지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슬로푸드운동에서는 소비자를 소비자라고 얘기하지 않고 ‘공동생산자’라고 얘기합니다. 소비자가 먹거리 생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무엇보다 슬로푸드 운동에서는 음식을 보는 시각이 기존의 것과 다릅니다. 기존의 시각은 주로 영양학 쪽으로 환원론적 관점에서 음식을 다루죠. 다시 말하자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미네랄, 오메가 3 등등...으로 말하지만, 슬로푸드운동은 음식을 그렇게 보지 않고 음식을 다음 10가지와 관련시켜 봅니다. 1)땅 2)물 3)공기 4)생물 다양성(종자) 5)(농업)경관 6)건강 7)영농지식 8)즐거움 9)관계 10)나눔 이렇게 슬로푸드운동은 음식에 대해 전체론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음식에 대한 생각을 확산시키기 위해 이탈리아에 있는 전 세계 하나뿐인 ‘미식과학대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식학은 단순히 맛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나 환경을 고려한 미식학을 말하고, 굉장히 다양한 분야를 가르칩니다. 농업, 역사, 법률, 무역, 관광, 사회학, 인류학을 통해 여러 관점에서 음식에 대해 접근하고 사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음식여행(food trip)을 합니다. 그 지역에 가서 생산자를 만나고, 어떤 생산 과정을 거치는지 확인하며, 지역의 식재료를 가지고 만든 음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먹어보고 조리실습도 하며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실제로 경험하지요.
시민들에게 부탁하고픈 한마디
슬로푸드운동은 음식 자체보다 농업, 땅, 종자, 농민 등 음식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중시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과 음식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을 ‘음식문맹자’라고 정의하는데, 그 이유는 음식을 모르고 음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싸고 맛있고 편리한 음식, 즉 기업이 만든 음식에 빠져있어요. 이런 음식은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싼 식재료에 첨가물, MSG등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음식문맹자들은 싸고 맛있고 편리한 음식에 길들여져 계속 그러한 음식을 먹고 있는 거죠. 음식문맹자에서 벗어나려면 슬로푸드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실제적인 어려움들
2000년에 슬로푸드운동을 우리나라에 소개했지만 좀 더 조직적으로 하게 된 것은 2007년부터입니다. 사단법인 ‘슬로푸드 문화원’을 만들어 교육과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 슬로푸드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왔어요. 저희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정부나 지자체 지원은 없고 회원들은 월 1만원 이상 회비를 내고 있어요. 그리고 ‘슬로푸드 친구들’이 있어 월 20만원 이상 후원하고 있습니다. 아직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보다 많은 회원들과 슬로푸드운동을 하고자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슬로푸드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회원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사실 그 외에도 어려운 면이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좋은 음식도 많이 접하고,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음식을 확산시키기 위한 일을 하고 있으니 매일이 즐겁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먼저 2013년부터 매 2년마다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슬로푸드 국제페스티벌’을 안정적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를 발전시켜 한국의 농업과 어업이 온전하고,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생산하여 ‘공동생산자’들이 그러한 음식을 먹도록 하는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음식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할 수 있도록 교육 등을 통해 의식을 바꾸는 일도 하고자 합니다.
김종덕 회장은 패스트푸드의 문제로 비만 못지않게 사람들로 하여금 조리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조리하는 사회 캠페인’을 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조리의 시작이 농업이고, 조리는 농업을 완성하기에 조리의 확산은 농업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했습니다. 또 요즘에는 혼밥족들도 많아서 혼밥족들을 위한 조리 교실, 요리를 못하는 남자들을 위한 조리교실 등도 계획하고 있다며, ‘조리’가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닌, 현대 음식의 문제와 농업의 문제를 푸는데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 김종덕 회장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재재기로 419-1
031-576-1665/slowfoodkorea@gmail.com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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