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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을 발견하다.

2022년 1월호(14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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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범의 종횡무진 고고(古考)한 이야기(2)

일제강점기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을 발견하다.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처음 발견 했을 때 모습

 

조사와 발견과정
근대산업문화유산이란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공장과 시설물을 말한다. ‘산업문화유산’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장의 굴뚝을 떠 올리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약간의 연배가 있는 분들은 우리가 산업화를 이룬 1960~1970년대의 사회상을 함께 떠 올리며,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방문 길에 검은 연기를 내뿜는 공장의 굴뚝을 한없이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에피소드를 생각해 낼지도 모르겠다. 공장은 산업시설 그 자체이니까?!
서양에서는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근대산업유산’은 공장의 굴뚝 이미지와 그대로 맞아 떨어진다. 그래서 제일 먼저 산업혁명을 통해 근대산업국가의 입지를 굳힌 영국에서 공장의 굴뚝을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로 인해 도시가 오염되고, 산업화의 산물인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가 영국 특유의 안개와 결합되어 스모그(smog = smoke + fog)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산업혁명기의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근대산업유산’에 ‘한국’이라는 단어를 덧붙여도 똑같은 이미지가 떠오를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산업유산’과 관련해서 특정 ‘이미지’를 떠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울 강서구에 자리한 양천배수펌프장과 양천수리조합 사무실은 지난했던 한국 농업사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근대산업문화유산이다.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과 양천수리조합 사무실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농업수리 시설과 그것을 관리했던 곳이다. 우리나라의 농업관련 시설물들은 각 지방마다 고유의 특색을 가지고 다수 남아있다. 그렇지만 수리조합과 수리시설이 함께 남아있는 곳은 서울 강서구에 남아있는 양천수리조합 사무실과 배수펌프장이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시설물들은 한국농업사를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근대산업유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양천배수펌프장은 지표조사 결과를 토대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2007년 11월 26일 등록문화재(제363호)로 지정되었다.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의 발견과 가치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하 배수펌프장)’은 양동수리조합 설립 시 설치된 배수펌프시설을 두기 위한 목조건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시대 창고건물 중 가장 최대이며 완전하게 남아있는 건물로 국내 유일한 것으로 판단된다. 배수펌프장은 1927~1928년 사이 건설되었다. 배수펌프장은 장마 때 논의 물을 빼고, 갈수기에는 논물을 대기 위한 용도였다. 배수펌프장 건물은 1층 높이의 콘크리트 기초 위에 비늘판벽 외장을 갖고 있는 목조건축으로 내부는 대규모의 목조 트러스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에는 일본인이 집중적으로 거주했던 곳을 중심으로 일본식 주택이 많이 남아있지만, 해방전 산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농업과 관련된 산업시설물로는 본 배수펌프장(또는 빗물펌프장)이 유일한 것으로 판단되어 이 시설은 우리의 농업 관련 근대산업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다고 판단하여 등록문화재가 된 것이다. 지금은 서울식물원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나는 2019년 관련자료 모두를 서울식물원에 기증하였고 그해 5월 기증 특별전이 개최되었다.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복원 후 실내 모습 투명유리로 덮어 90년전 배수관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근대산업유산이 고철로 팔리지 않기를 소망함
나는 직업고고학자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애써 외면하는 유물과 유적들이 있다. 바로 근·현대 지층에서 출토되는 도자기와 각종 쓰레기(특히 비닐봉지와 생활재)들,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시대(50년~100년 정도)에 만들어진 건축물과 각종 시설들이다. 공사현장에서는 산업쓰레기라 부르는 것들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근·현대에 형성된 제일 위쪽의 지층은 그저 걷어 내고픈 귀찮은 흙일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에 많은 수의 조선시대 유적이 조사되면서 그 이후에 만들어진 근·현대유적에 대한 조사자들의 관심도 늘어났다. 몇 년 전, 대학박물관에서는 산업화와 근대산업유산에 대한 전시회도 개최하여 이 분야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을 드높이기도 하였다. 
종로구의 사간동·통의동·청진동 유적 그리고 동대문운동장의 발굴현장에서는 많은 수의 근·현대 도자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 중에는 우리가 만든 것도 있고 일본에서 만들어 판매한 것도 있었다. 과거 이 유물들은 대접받지 못하고 발굴현장 한구석의 유물상자에 담겨있거나 발굴보고서에 간단히 언급될 정도로 천대를 받았다. 최근에 이 애물단지 같던 도자기들이 산업고고학의 관점에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도공들이 일본으로 잡혀갔고, 이후 산업화를 통해 일본 도자기는 공예의 수준에서 벗어나 대량생산과 수출로 부를 축적하였다는 사실도 확인하였다.  
이제 고고학의 연구주제가 선사와 고대의 역사나 문화 복원의 사명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일상에 영향을 준 ‘산업화’에 대해 진지한 물음이 시작 되었다는 것은 환영받을 만하다. 그런데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려면 ‘근대산업문화유산’을 대하는 사회의 인식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물건의 주인, 연구자간의 폭넓은 이해를 수반한 대화는 제대로 된 유물의 보존과 확보를 위한 핵심사항이다. 발굴현장에서 버려졌던 비닐봉지, 플라스틱, 또 제철소의 고로(高爐), 증기기관차, 연탄공장의 콘베어벨트, 배수장의 펌프엔진과 시설, 정수장의 모터 등이 모두 연구의 대상이다. 무지하면 이들 모두 쓰레기로 매립하거나 고철로 팔 수 있는 것들이나 ‘근대산업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것들이다. 지금 갖고 있지 않으면 나중에는 없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예와 기술이 산업화 되지 못하고 남의 나라에 선수를 빼앗긴 결과는 우리에게 매우 혹독하였다. 되풀이 되지 않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성과 공부가 필요하다. 그리고 산업화를 위해 세우는 아이디어의 기초지식은 향후 잘 보존된 ‘근대산업문화유산’을 통하여 제공될 것이라 믿는다. 현재 서울식물원이 복원하여 활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서울 구(舊)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의 전시와 활용사업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서울문화유산 연구원 부원장 박준범
amimuse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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