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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 must go on!!예술, 정신을 위한 백신

2022년 2월호(14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2.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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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2]

Show must go on!!
예술, 정신을 위한 백신

 

공연장에 근무하다 보면 일반 회사를 다니는 사람과는 사뭇 다른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직원 구내식당에 갔는데 한창 공연 중인 뮤지컬의 주인공인 유명 배우가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든지, 야근 후 귀가 길에 공연을 보러 온 팬들과 소통중인 멋진 아이돌의 진솔한 모습을 본다든지, 늘 완벽한 연주복에 근엄한 표정으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지휘자가 리허설에 캐주얼을 입고 있는 편한 모습을 본다든지… 일터에서 이런 광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무료할 수 있는 직장생활의 보너스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한번은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중의 하나인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틀 동안 우리 극장에서 있었습니다. 첫 번째 연주 다음날 출근길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전날 연주 후 악기 보관함과 개인용 트렁크가 백 스테이지에 도열해 있었습니다. 어느 연주자가 서둘러 숙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느라 바빴는지 연주 때 신었던 반짝이는 구두 한 짝이 트렁크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라 살짝 사진에 담으며 전날 연주의 감동을 소환했습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의 감동이 몰려옵니다.


공연장은 매우 다양한 연주자들을 담는 그릇입니다. 아침의 출근길은 전날의 감동으로 젖은 무대 뒤의 고요가 매력적인 곳이고 리허설을 거쳐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그 어디에도 없을 긴장감으로 공기마저 팽팽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런 분위기가 있어야 할 공연장이 그간 코로나로 위기였습니다. 해외 연주자가 입국하지 못하고 객석 간 거리유지, 인파가 몰린다고 생각하여 자주 보던 공연을 아무래도 뜸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공연장 분위기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공기가 꽉 차서 뾰족한 것에 스치기만 해도 빵 터져버릴 것만 같은 풍선 같아야 하는 그 곳이 철 지난 바닷가 유원지의 바람 빠진 풍선인형마냥 느슨하고 활기가 없습니다.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거치면서 공연장이 가져야 할 에너지를 잃어버린 것 같아 서글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해외에서도, 국내에서도 이렇게 코로나를 피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다가는 공연계가 고사할 것이라는 위기감으로 서서히 자기 자리에서 예술을 지키기 위한, 무대를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코로나가 없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코로나 상황에서도 방역에 힘쓰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증거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우리 극장만 해도 올해는 년 초부터 세계적인 뮤지컬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원래 공연 오픈은 연말이었는데 그사이 오미크론이 창궐하고 각국은 바이러스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빗장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티켓 매표를 시작하여 매 회당 매진기록을 세우고 있었던 뮤지컬 팀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대세트는 이미 도착해서 공연장에 일부 설치를 해 둔 상태에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공연에 참여 할 투어 인원 백 여 명이 남아공에서 출발해서 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지요. 이런 경우 대부분 투어 팀에서 포기하고 공연을 취소하기 마련인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한국 공연에 참가한 출연자, 스텝 등 백 명이 넘는 인원이 기꺼이 2주간의 자가 격리를 감수하고 공연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모습입니다. 조심한다고 하지만 매일이 살얼음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있기엔 이 공연을 기다린 전 세계 많은 팬들의 기대를 알고 있고 또한 우리나라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공연예술 산업 규모로 보았을 때 아무 시도도 안하고 산업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는 없는 시점일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난 달 있었던 클래식 공연에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한국 8개 도시 순회공연을 위해 내한했던 바로크 실내악단의 백발이 성성한 단원들도 모두 자가 격리를 마친 후 공연에 임했습니다. 


이런 국가 위기나 천재지변이 닥쳐왔을 때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분야는 사실 생존과 관련 없는 문화예술 분야일 것입니다. 하지만 금방 끝날 것만 같았던 코로나가 2년 이상 지속된 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정신적인 충만함 없이 얼마나 피폐해 질 수 있는지… 일상의 불편함도, 끝을 알 수 없는 재해 상황도 건강한 정신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다면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 인간의 존엄함 때문에 예술을 하고 공연을 하고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정신적 충만함을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도 이겨낼 정신적 백신은 바로 예술입니다. 

 

 

서울 예술의 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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