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내 옆에 있는 예술

2022년 4월호(15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5. 21. 21:33

본문

[손미정의 문화·예술 뒷이야기 4]

 

내 옆에 있는 예술

 

지난 대통령 선거는 숨 막히는 접전을 거듭한 끝에 97%의 개표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20대 대통령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만큼 박빙이었다. 직접 선거로 가리는 대통령 선거는 각 사람마다 왜 그를 지지하는지 각양각색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이라면 그리고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기관이라면 앞으로 5년 동안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가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투표하기 전에 각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가슴에 와 닿는 공약을 찾기는 어려웠다.


문화예술 분야의 실질적인 공약이 없는 이유는 경제, 국방, 교육 등 보편적인 생활에 밀접한 분야와는 거리가 멀어서 후순위로 밀리는 분야가 문화예술계인 이유도 있고, 정치와 법에 주도권을 가진 분들이 예술에는 문외한이라 생각하셔서 주변 문화예술인들의 생각을 모아 정책을 구성하다보니 주요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의 생각과 그 외 주변부 예술인들의 생각이 다르고 그렇게 급조한 공약이라 두루두루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후보들 간의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공약도 특별한 차별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공약도 찾기 어려웠지만 표면에 드러난 공약마저도 그 공약으로 혜택을 받는 층으로 인해 문화예술계의 발전을 도모하고 국민들에게 환원될 수 있는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30년 가까이 문화예술 현장에서 일하다 보니 결국 문화예술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민간 기관을 제외하고 조금이라도 공공성을 띤 문화예술기관이라면 예산의 주도권을 가진 상급 기관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이번 정권의 국정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에 따라 구체적인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결정되는 것도 현실이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90년대 초반 우리나라 문화예술 예산이 전체 나라 예산의 1%가 되지 않던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나라 문화계의 소원은 문화부 예산이 1%를 넘는 것이었다. 지금은 문화예술부분 예산만 2조원이 넘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보다 일반 시민이 피부로 체감하는 문화와 예술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은 늘어난 예산만큼 문화예술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자리매김 해야 하는가가 반영된 여러 정책들의 결과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소위 말하는 문화선진국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국제적으로 힘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문화적으로 선진국이 아니라면 그 나라는 존경받을 수 없다.
문화예술기관도 정권에 따라 장관에 따라 부평초처럼 운영기조를 달리하여 입맛에 맞추는 대신 그 기관의 미션과 비젼을 명확히 하고 어떤 목적에 의해 설립된 곳인지를 분명히 하여 운영하여야 한다. 지자체별로 수없이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문화기관을 설립하고 정작 좋은 컨텐츠와 기획은 전무하여 개점휴업 상태인 곳을 더 이상 양산해서는 안 된다.

20~3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내한 공연이 있거나 ‘오페라의 유령’, ‘라이온 킹’같은 유명 뮤지컬이 국내에서 공연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봐야하는 시절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해야만 가서 볼 수 있는 공연을 국내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니, 그리고 그 당시만 해도 국내 공연의 수준이 월드클래스에 한참 못 미치는 시절이니 당연히 그런 공연은 봐야하고 또 티켓 파워도 대단해서 무조건 매진되던 시대였다. 20여년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가 만든 드라마, 영화, K-POP등이 세계를 리드하는 시대가 되었다. 예술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콩쿨의 상위 입상자는 예외 없이 한국인이다. 뭔가 창의성을 발휘하여 콘텐츠를 생산하는 분야나 기량을 연마하여 세계적인 연주력을 쌓는 분야에서는 단연코 우린 1등이다. 그러나 문화의 세기에 우리가 문화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서로 다른 영역을 이어주는 매개분야, 좋은 재료를 엮어서 뛰어난 콘텐츠로 엮어내는 기획 분야의 창의성을 더욱 길러나가야 한다. 개별 영역이 뛰어나도 그것이 향유자들의 마음에 닿도록 일목요연하게 반짝이는 구슬로 엮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 또한 문화예술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초기에는 좋은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경쟁우위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문화예술 분야의 판도가 바뀜에 따라 좋은 컨텐츠를 알아보는 안목, 인접 문화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깊이 있는 지식,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분야의 매개, 이런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기획자가 중요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개별 예술장르에만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문화를 폭넓게 바라보는 것의 중요성, 인접 장르 간 융합을 이끌어내는 법, 다른 산업과 문화를 접목시키는 노하우 등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득 어떤 정치인의 평전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70년대 그 정치인은 유럽을 여행했을 때 스웨덴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88세의 연로한 국왕 구스타브 6세가 소년 오케스트라에 끼어 클라리넷을 불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치인은 ‘국가 지도자가 국민과 하나가 되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가는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라고 썼다. 

점심을 먹고 분수광장을 걸으며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에서 이미 봄이 왔음이 느껴졌다. 새로운 대통령, 새로운 정부, 새로운 문화정책을 통해 우리 모두 내 옆에 예술이 있음을, 그리고 국민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향유할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되기를 희망해본다.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0>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