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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요트 여행기3

2022년 6월호(15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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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문법이야기 18]

겨울 요트 여행기3

 

우여곡절을 겪으며 위도항에 있는 엘사호에 도착했다. 출발을 위해 배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이틀 전 불어 닥친 강풍으로 펜더들이 여럿 깨져 있고 풍향계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예전 모아나호를 통영에서 가져올 때 이동 하루 전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제노아가 갈기갈기 찢어졌던 일들이 떠올랐다. 요트가 어촌의 임시 폰툰에 묶여 고생을 많이 한 듯하다. 전 선주와 필요한 서류들을 마무리하니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간다. 이제 운항이 가능한 시간은 7시간 남짓. 바삐 움직여 연료와 물 등을 확인하고 바로 배를 출발시켰다. 

 

매뉴얼 항해중인 김명기 선장



어항을 벗어나니 파도가 심상치 않다. 전날 풍랑주의보의 여파가 남았는지 파도가 1.5미터에서 2미터 가까이 올라오며 배가 밀려 오뚜기처럼 기우뚱거린다. 출항에 설레여하던 크루들의 표정을 살피니 벌써 멀미가 올라온 것이 보인다. 하나 둘 콕핏에서 버티던 크루들이 선실로 들어가 그대로 뻗어버렸다. 오토파일럿이 고장 나 직접 휠을 잡고 배를 움직여야 하는 상황. 다행히 태평양을 함께 했던 강릉의 명물 헤밍웨이호 김명기 선장이 함께해 둘이 합을 맞춰 교대로 배를 조종한다. 예전에 필리핀 수빅을 향하던 마지막 밤. 오토파일럿이 고장 난 배의 휠을 교대로 잡으며 둘이서 남십자성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밤새도록 배를 몰아 맞이했던 큰 바다의 아침이 떠올랐다. 
한 겨울이라 해가 짧아 이동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물 밭인 남서해 바다에서 어둠을 맞이하는 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처음 목표로 삼았던 가까운 어청도 방향으로 배를 틀자 바람의 방향이 맞지 않아 돛이 펄럭 거린다. 때는 12월의 대사리 기간, 하루에 근 10여 미터씩 밀물 썰물의 이동량이 가장 강한 기간이라 파도도 엄청나고 유속도 대단했다. 돛을 펴지 않고 엔진으로만 밀 경우엔 배가 너무 뒤뚱거려서 크루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조타도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바람 방향이 맞는 외연도를 향했다. 내내 신경이 쓰였던 건 외연도의 수심. 가지고 있던 어플에는 어항 내부에 1미터 남짓한 곳들이 많았기에 킬이 걸려 있게 될 확률이 높았고 배를 어항에 못 대면 항 바깥에다 앵커링을 해야 하는 부담이 컸지만 당장 배를 괴롭히고 있는 이 대사리 파도와 유속보다는 낫겠다 싶었다. 파도가 강할 때는 세일을 쓰지 않으면 배의 좌우 움직임이 심해진다. 세일을 펴기 위해선 바람의 힘을 빌려야 했기에 여러 리스크가 존재하는 좀 더 먼 외연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앞바람 쪽으로 세일을 여니 그나마 파도에 맞는 뒤뚱거림이 좀 줄어든다. 

크루들은 선내에 다들 쓰러져 있고 20년 지기 김선장과 둘이 낑낑 거리며 교대로 배를 몰았다. 겨울 해는 짧아 오후 네 시 남짓하니 골든 타임이 시작된다. 섬 근처에 와서 조금 잦아든 파도에 겨우겨우 멀미에 정신을 조금 차린 크루들의 섬에 가면 집으로 도망칠 거라는 농담을 들으며 외연도 항구 내부에 들어섰다. 가장 걱정했던 수심은 물때가 낮은 데도 4미터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중에 식당 주인아저씨께 여쭤보니 1년 전에 크게 항 안쪽에 준설 작업을 했단다. 아 이렇게 감사할 수가. 수심 걱정 없이 배를 댈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돌이켜 보니 이 험난한 겨울 딜리버리 트립의 항로는 하나님이 알아서 준비해 주셨다. 

바람에 맞춰 항로를 조정하니 도착한 섬은 배를 정박하기 적절한 깊이를 가지고 있다. 어항 안에는 크고 작은 어선들이 가득했다. 11미터 크기의 요트를 어선들 사이에 우겨넣고 높은 파도에 먹는 둥 마는 둥 비스켓으로 때운 주린 배와 7시간의 매뉴얼 항해로 피곤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식당을 먼저 들렀다. 섬 특유의 싱싱한 재료로 만든 찜요리와 흰 쌀밥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맛있게 저녁을 먹고 민박집에서 노곤한 몸을 누였다. 

다음 날 새벽, 육지로 떠나는 김선장 가족의 배웅을 뒤로 하고 두 크루와 요트에 올랐다. 오늘의 이슈는 물때. 오전까지 최대한 거리를 벌려 태안반도를 넘어가야 일정을 맞출 수 있다. 또 반도 전까지는 유사시에 배를 피할 섬도, 항구도 거의 없다. 이른 아침 출발했는데 역시 물때가 속을 썩인다. 엔진을 3천 RPM 가까이 밀었는데도 속도는 4노트 남짓, 바람 방향도 맞지 않아 이럴 때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파도는 조금 줄어들어 어제까지 쓰러져 있던 크루들도 기력을 회복한 듯 다시 휠을 잡기 시작했다.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임대균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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