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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문방구

2022년 6월호(152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8. 4.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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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문방구

 

칠레수도 산티아고의 문방구는 손님의 대부분이 성인이다. 학생들이 학용품을 직접 사는 법이 거의 없고 대부분 부모들이 사다 준다. 거의 엄마들의 몫이다. 때문에 문방구의 분위기가 여성적이다. 물론 직원들도 여성들이다. 남자직원을 그간 네 명 써보았는데 그 중 딱 한 명만 훌륭했고 나머지는 근면, 성실 부분에서 죄다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남자직원을 뽑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여름방학 때 잠깐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남자직원들은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엄마들이 주로 고객이다 보니 수를 놓거나 꿰매거나 하는 반짇고리, 가정용 소품도 가져다 놓고 팔게 된다. 그러다 보니 문방구가 점점 부피가 커져 나날이 복잡해진다. 신기한 것은 가짓수가 많아지더라도 경력이 쌓여서인지 그닥 끔찍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리 끔찍하지는 않게 여겨지기까지가 22년이 걸렸지만 말이다.

회상
23년 전 칠레에 도착했다.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할지 막막했다. 옷 장사를 해야 했지만 어렵겠다 싶어 선뜻 나서지 않았다. 교민의 대다수가 옷 장사를 했기 때문에 노하우를 전수 받으려면 옷 장사뿐이었는데 문제는 자금이 필요했다. 별 수 없어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했다. 나는 적응이 더뎌 아내보다 훨씬 늦게 일을 시작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문방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초기에 본 목격담
무엇을 해야 할까 싶어 무작정 돌아다녀보았다. 눈에 뜨이는 것은 짐꾼들이 험악한 분위기로 짐을 나르는 모습이었다. 중·대형 종이뭉치들을 나르는 것을 보면서 저 거치른 짐꾼들을 어떻게 다룰지 난감해서 절대로 종이사업은 하지 말자하고 작정했드랬다. 그런데…

운명인가!
결국 종이도 다뤄야하는 문방구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살기 위해서 취직한 곳이 문방구점이었으니 별 수 없지 않겠는가 말이지. 모두가 다 알겠지만 종이 종류만 해도 많지 않은가. 켄트지, 도화지, 골판지, 고무판지, 코르크지, 잡포장지, 선물포장지, 습자지, 고급화방지 등등 이십 수 가지를 다뤄야 한다. 게다가 사이즈도 작은 것부터 1m가 넘는 대형사이즈까지 구비해 놓아야 운영이 되면서 돈을 손쉽게 벌 수 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문방구를 작게 운영하면 돈을 아주 조금 밖에 못 번다는 뜻이다. 뻔한 얘기 같지만 아주 중요한 말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아는데 15년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문방구가 작으면 큰 사이즈의 종이를 가져다 놓을 수가 없어 그만큼 손님들이 가지 않게 된다. 특히 칠레사람들은 한군데에서 다 사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문방구를 잘 경영하려면 문방용품의 모든 가짓수를 완벽하게 구비해 놓아야만 한다. 그럴려면 가게도 커야하지만 창고는 가게의 다섯 배에서 열배쯤 커야한다. 자~ 요기까지 읊어보다가 다시 회상해보니 그간 우찌 견디며 살았는지 눈물이 핑 돌고 또 한편 웃음이 픽 난다. 아무튼 22년간 문방구 일을 하게 되면 겪는 일이다. 그러니까 표시 안 나게 조금씩 조금씩 훈련을 하였더니 감당하게 되더라는 말이다.

일에 들어가면
칠레 직원들은 개념이 없다. 대형종이 묶음을 바닥에 펼쳐 놓고 팔 때 막 밟고 지나댕긴다. 그러면 발자국이 찍히게 되니 버리게 된다. 아시겠는가? 어떤 애환이 있었을른지. 이젠 제발 발자국 찍지 말라고 애원하지 않는다. 어떤 영문인지 이젠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아마 꼴같잖은 직원들을 내보내면서 점차 우량 직원만 남게 되어 그랬는지, 아님 내가 아예 칠레직원들처럼 똑같아졌는지 알쏭달쏭이다. 

‘멜기세덱 문방구’의 자랑
안드레아(Andrea)는 산티아고의 명동 마띠아쓰 꼬우씨뇨 거리에 있는 칠레 최고의 문방구 체인점 LAPIZ LOPEZ에서 근무했다가 출퇴근 길이 멀어서 그만두고 자기 집에서 가까운 변두리에 있는 우리 문방구에서 일하게 된지 7년째다. 문방구 운영, 22년간 이렇게나 신실한 직원은 없었다. 나는 우리 ‘멜기세덱 문방구’의 자랑이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필자 노익호, 재입사한 까롤리나, 문방구 최고의 직원 안드레아


장사꾼이 우대받는 나라 칠레
항상 느끼는 것인데 칠레인들은 가게주인을 존경한다. 남미지만 서양식이니만큼 직업에 귀천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워낙 물자가 귀한 탓이다. 인구가 1600만 명인데다가 4000km나 길게 뻗은 나라이다 보니 기간산업이 발달하기가 어려워 주로 수입에 의존을 많이 한다. 물건 파는 상인이 뽀대가 난다. 수입을 하기 때문에 물건이 떨어지면 더 이상 살 수 없거나 다음 컨테이너가 오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치열하게 사려는 경향이 칠레인들의 몸에 배어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장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문방구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방구 일이 몹시 성가시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달겨들지를 않아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물론 그런 줄 모르고 취직했고 나중에는 아는 게 도둑질이니 뭐 별 수 없이 문방구점 주인이 된 것이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2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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