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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디자이너 ‘유바카’, ‘어린왕자 호텔’을 꿈꾸다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0. 3.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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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밥 디자이너 ‘유바카’, ‘어린왕자 호텔’을 꿈꾸다

어린왕자호텔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펼쳐지는 풍경

 

햇볕과 바람이 저를 키웠어요.
어렸을 때 학교 갔다 오면 가방을 집에 훅 던져놓고 밖으로 나갔어요. 거의 매일 들판에서 살다시피 했었어요. 꽃 보는 것이 좋고, 솔방울을 따고, 배추꽃 따 먹고… 햇볕과 바람이 저를 키웠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자연이 좋았죠. 물론 엄마가 들으면 서운하시겠지만요. 그렇게 늦게까지 밖으로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면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죠. 그래서 저는 초등학교 교사셨던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다가 함께 들어갔어요. 아버지는 항상 저를 무척 사랑해주고 용서해주시는 자상하신 분이셨죠.

독수리 오형제, 둘째의 설움 극복
저는 다섯 형제자매들 중 둘째로, 예쁨을 받기위해 엄청 노력했어요. 눈치 백단에 솔선수범으로 엄마가 부르면 즉각 도와 드리고, 아버지 말씀도 잘 들었으니까요. 다른 형제들은 이래저래 예뻐하는 이유가 있어 일을 많이 시키지 않았는데, 유독 둘째인 저는 달랐어요. 입맛이 까다로운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매일 김치를 담그면서, 그때마다 호출되는 건 저였죠. 김치를 담그고 6개나 되는 도시락을 일일이 싸기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덕분에 엄마의 오른팔 역할을 하며 음식솜씨를 어깨너머로 많이 배웠습니다.  

엄마의 텃밭
어렸을 때, 엄마의 텃밭은 재미가 가득한 곳이었죠. 이른 아침 엄마와 함께 논길을 지나 텃밭에 가려면, 고개 숙인 벼이삭의 이슬 때문에 엄마의 바지가 다 젖었어요. 엄마는 일부러 저를 떨어져 따라오게 하고, 앞장서서 걸으며 온몸으로 이슬을 떨어뜨리고 가셨던 거죠. 엄마는 걸으면서 고추, 상추, 가지 등을 어떻게 따야 하는지 알려주셨어요. 텃밭 주변의 풀 하나하나를 보며 예쁘다고 하면, 엄마는 제가 별걸 다 예쁘다 한다고 했죠. 

시골처녀, 셰익스피어에 홀딱 빠지다
어렸을 때 나가 놀기에 바빴던 저는 책에 관심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일어에 중국어, 영어까지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언어에 능하셨지만, 저에게 “공부해라, 책 읽어라” 다그치지 않으셨죠. 그랬던 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셰익스피어에 푹~ 빠지고 말았죠. 셰익스피어의 표현 하나하나에 충격을 받은 저는 그의 문체로 책을 써서‘이육사 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입주교사에서 유학 컨설턴트, 한옥호텔 총괄매니저까지
대학 졸업 후, 입주 가정교사로 서울에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친구의 소개로 유학원에 면접을 보게 되었죠. 당시에 유학 붐이 한창 불고 있었거든요. 면접관이 학업계획서를 영어로 번역하라는 과제를 주었는데, 10분 만에 끝내버렸죠. 그랬더니 바로 다음날부터 출근하라 하더군요. 이렇게 시작한 일은 저에게 너무나 잘 맞았어요. 저는 유학 갈 학생들을 돕기 위해 미국현지 학교를 수시로 방문해 가능한 모든 정보를 알아냈습니다. 기숙사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 하숙을 한다면 어느 곳에서 해야 하는지 등, 학교와 주변 장소를 파노라마처럼 사진으로 찍어 와 상담을 했죠. 이렇게 노력하는 저에게 어떤 분은 학생 100여 명을 소개해 주기까지 했습니다. 20년 정도 유학 컨설팅 일을 하던 저는 인터넷의 발달로 더 이상 유학원에서 할 일이 없을 것을 알고 직장을 정리했습니다. 그 후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있는 한옥호텔에서 총괄매니저로 일하게 되었어요. 유럽의 부호들, 러시아, 일본의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스러운 호텔이었죠. 그곳에서 저는 외국 사람들을 응대하는 국제적인 감각들을 키울 수 있었는데, 식사할 때의 테이블 연출을 제가 직접 했어요. 화려한 꽃 장식이 아닌, 호텔 정원 뜰에서 꺾은 소박한 꽃이나 출퇴근하며 발견한 강아지풀로 장식을 했는데,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호평을 받았죠.  

나는 무엇으로 대접하지?
호텔매니저 일을 하며 영국을 가게 되었는데, 미국과는 완전 급이 다르더군요. 버스를 탔는데 운전기사가 “너, 안전 하니?” 물어보고 출발을 하는 겁니다. 사람을 배려하고 대접하는 게 일반 시민들에게도 너무나 자연스러웠어요. 이 모습을 보며 저는 나 자신을 향해 ‘그러면 나는 무엇으로 사람을 대접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내 돈 주고 밥을 먹는데도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대접 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서비스가 부족했거든요. 아버지는 늘“음식은 정성이고 정성이 없으면 사료다. 닭에게 주는 사료도 정성 없이 주면 안 된다”고 하셨죠. 그래서 저는 아버지 밥상을 차릴 때 당근 꽃이라도 꺾어 꾸미곤 했습니다.


부여에 정착하다
2018년 3월,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초대를 받아 부여에 내려왔다가, 3개월이라도 살아보자고 한 게 3년째 살고 있습니다. 부여에서 이 집을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어요. 친구의 소개로 처음 집을 보았을 때, 20년 동안 방치 되어있어 한옥 대문은 삐딱하고, 앙상한 나무들에, 돌담은 풀이 우거져 있는 볼꼴 사나운 집이었죠. 하지만 가만히 보니 집 주위에 향교와 정자가 있고, 본채, 아래채, 화장실 등의 구조가 재밌는 거예요. 제가 그 집을 맘에 들어 했지만 경제적인 여건상 바로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친구는, 4월 제 생일날 저를 초대해 미역국을 끓이고 생일케이크에 집 계약서를 저에게 내밀었어요. 정말 저에게는 큰 선물이었죠. 5월부터 집 꾸미기를 시작했는데, 조금만 손을 대도 집이 좋아하는 게 느껴졌어요. 임자를 만난 것이죠. 목수나 쓰레기를 치울 사람 등의 인건비가 여의치가 않아,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다하자고 했습니다. 손이 변형될 정도로 열심히 했죠. 평생 할일을 2020년까지 다 한 것 같아요

‘어린왕자 호텔’
집을 수리하면서 ‘어린왕자 호텔’을 머릿속에 계속 그리고 있었어요. 2016년, 어느 교수님의 소개로 어린왕자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알게 되었죠. 
‘누가 어린왕자를 만나거든 나에게 편지 해다오.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교수님은 그 누구도 쓰지 않은 어린왕자의 후속 편지를 저에게 써보라는 미션을 주셨죠. 하지만 저는 다음해에 둘째 아들을 잃었고, 그 슬픔으로 2018년 무작정 서울을 떠났어요. 그러면서 부여도시재생프로그램을 맡게 된 것이죠. 옛날 담배 가게를 수리해 서점으로 세팅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미션이 떠올랐고, 저는 집으로 돌아와 거침없이 편지를 썼습니다.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 어린왕자 책 하나가 있는 아주 조그마한 공간에 많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와서 책을 읽던, 우두커니 앉아 있다 가든, 노래를 하던, 엎드려져 자든 자유롭게 자기 나름의 소통 방식으로 위안 내지는 호흡을 하고 있다. 여전히 어린왕자는 우리 안에 이렇게 존재한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오.’

이런 편지 내용이었어요.
편지를 쓰면서 어딘가에 ‘어린왕자 호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편안함과 자기 자신과 만나는 곳. 그곳에서 사람들을 편안히 재우고 내가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을 정성껏 대접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의 ‘어린왕자 호텔’은 투숙객을 한 팀씩만 받습니다. 제 에너지가 분산되지 않도록 말이죠. 이곳에서 식사를 하거나 1박을 하는 분들은 한결같이 대접받은 느낌이라고 말을 합니다.

고객의 마음을 집중해 상상하기
한옥호텔에 근무할 때 손님이 장미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컬러를 좋아하는지 등 아주 세세하게 취향을 맞추려고 했어요. 하지만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급하게 전화해서, 입금했다는 문자 받고 그리고 오실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여기서부터 시작을 해요. 고객의 마음을 상상하며 그려가는 것이죠. 그러면 진짜 신기하게도 “우리 남편이 아욱국을 정말 좋아하는 데 어떻게 알고 끓였어요.”, “제가 이 꽃을 정말 좋아해요.”, “제가 이 색깔을 너무 좋아해요.”라는 말을 들은 경험들이 되게 많아요. 저는 그냥 집중! 집중! 하는 것 밖에 없어요.(상상 속에서 집중하는 거네요) 그 사람의 마음을 완전 충족은 못시키더라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준비했던 마음부터 내가 동행하자! 결국에는 그 사람 마음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그게 제 정답입니다. 손님이 오시면 제가 정자 앞으로 직접 마중을 나가요. 그리고 반갑게 손을 흔들죠. 거기서 바로 무장해제가 되고 문 앞의 계단에 오른 순간, 마당을 보며 ‘와~’하죠. 이러면 밥은 저절로 맛있게 되요.(웃음)

밥 디자이너! 
우리는 모든 게 디자인화 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데, 아직 밥을 디자인한다는 말은 없어요. 푸드스타일리스트, 푸드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들은 있죠. 
저는 원래 밥 자체를 너무 좋아하는 ‘밥순이’에요. 그래서 밥이라는 단어를 고유 명사화 시키고 싶은 거죠. 《밥 디자이너》라는 동화책도 썼고요. 밥 디자이너는 밥이라는 매개체로 사람 마음을 디자인 하는 일을 해요. 이제는 식사를 한 끼 때우는 것이 아닌,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어떤 음식을 앞에 두고 시간을 보내는가가 중요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손님이 왔을 때 테이블 세팅부터 시작해, 마당을 디자인하고, 맞이할 계단, 더 나아가 밖에서 어떤 모션으로 맞이할까까지 디자인을 하는 거죠. 저에게는 모든 한걸음 한걸음이 디자인입니다.

식탁에서 돋보이는 창조성! 
우리가 추억할 때 “우리가 언제 만났지?”하는 것보다, “아! 우리가 코스모스 필 때 만났잖아.”, “식탁에 배추꽃이 놓여 있었잖아.”라고 구체적으로 기억이 되도록 식탁에 계절을 옮겨놓는 거죠. 그런데 이런 계절을 알려주는 것이 자연이고, 텃밭이고, 텃밭에서 나는 풀과 꽃과 열매들인데 저에게 이곳 부여가 최적입니다. 마당과 밭이 있으니까요. 이 자연의 모든 것을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하느냐는 저의 마음에서 나오죠. 

앞치마는 나의 모든 에너지?!
엄마는 음식을 할 때 항상 하얀 수건을 머리에 쓰고 하셨어요. 매일 밖에서 일을 하시다, 집에서 하얀 수건을 하고 밥을 하는 엄마의 모습이 참 좋았어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졌거든요. 그것 때문인지 몰라도 저는 하얀 앞치마만을 직접 만들어 입습니다. 그럼 모든 에너지가 솟아나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하지만 앞치마를 안 입으면 아무것도 못해요(네? 큰 웃음)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도 제 앞치마를 가져가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직접 제가 디자인한 옷을 입어야, 데코 할 때 디자인이 나와요. 일반적인 옷을 입으면 디자인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마치 어떤 의식 같은 것 같네요) 저의 정신무장이죠. 정말 마음이 흩어 질 때는 ‘바베트의 반찬’이라는 영화를 봐요.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인데 어느 마을에 가서 가정부로 일하며 동네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거든요. 영화의 장면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래 나는 오늘 바베트야’하는 마음의 무장을 하는 거죠. 

21세기, 흙집에서의 하룻밤
시골이다 보니 아무래도 벌레가 있어요. 방충망을 한다 해도 벌레의 의지를 어떻게 할 수 없어, 틈새로 들어와 놀래키는 경우가 있답니다. 저도 처음에는 까무러치게 놀랐으니까요. “여기는 시골이다. 원치 않게 거미가 나타날 수 있는데 놀라지 마시길, 거미가 더 놀란다.”고 하면 손님이 웃어요. 저희 집은 흙집입니다. 흙에다 천을 발라서 겨울에는 추워요. 코가 시리기도 하지요. 하지만 21세기에 흙집에서 하룻밤 자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코가 시린 것도 감안을 해야 되요. 그것을 못 견디면 여기서 잘 자격이 없다고 설명을 하죠. 어떤 분은 이불을 직접 가져오시는 분들도 있어요.(웃음) 그래서 1~2월은 쉬고 있어요. 간곡하게 원하시는 분들에게 식사만 받습니다. 겨울철에는 옷을 만들거나 동화책을 내기도 하죠. 추운 겨울철만 빼면 저희 집은 0~99세까지 와도 되는 곳이랍니다. 아이들이 오면 저와 금방 친해져서 마당, 텃밭, 제 부엌, 방에까지 쫓아오죠.

20년 폐가, 새롭게 태어나다


어린왕자호텔은 정신적인 체온을 유지하는 곳
사람들이 이곳에서 지내며 기뻐하고, 음식을 차례로 내어 낼 때 ‘와~~’하며 마음이 열려 좋은 기억을 가지고 집에 가서 선물도 보내오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 집이 돈 냄새도 안 나고 허술하잖아요. 그런데 저를 보며 ‘왜? 이 사람은 행복할까?’ 하고 궁금해 하며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더군요. 제가 여기서 즐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찾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정성껏 배설(排設)하고 손님들이 행복해 하면서 즐기며 돌아가면, 제 스스로 “유바카! 너 참 잘했어”라고 칭찬을 해요. 그러면 제 마음이 따뜻해져요. 이것이 제가 정신적인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이고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바카의 박하 같은 꿈
제가 이 일을 하다 보니,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어요. 그런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요. 그래서‘유바카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놀이터를 전주에 만들고 있습니다. 의, 식, 주, 자기개발 이렇게 4가지 코스로 진행하려 하는데, 스스로 피어나는 self blooming이 되도록 도와주려는 거죠. 하지만 유바카의 박하처럼 속을 시원하게 하는 진짜 꿈은 어린왕자호텔입니다. 지금은 호텔이라고는 할 수 없고, 연습삼아하는 것인데 이곳은 사람들이 과연 어떤 내용들로 흡족해하고,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고, 어떤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지 연습하는 장소입니다. 이것을 넘어 자그마한 어린왕자 부띠끄 호텔을 하고 싶어요. 어린왕자를 주제로 전 세계 사람들이 올 수 있는 호텔을 하는 것이죠. 외국에서 온 친구가 1박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돈이 없다면, 호텔에서 하루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죠. 특히 외국인들이 방문하게 될 때“너희 나라 어린왕자 책을 가져와라. 그렇다면 하루를 프리로 머물 수 있다”고 알리려 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동안 집중해서 일하면, 저녁 8시 반에 잠이 와서 한 번도 깨지 않고, 5시 반에 일어나 다시 하얀 앞치마를 두르면, 뽀빠이처럼 항상 새로운 힘이 솟는다는 유바카님! 어렸을 때 아토피가 심해 허벅지의 피부를 보고 강감찬 장군의 갑옷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살기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면서 많이 호전이 되었다고 합니다. 유바카님은 이 공간을 어린왕자라는 모티브, 밥이라는 매개체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고, 무엇보다 ‘밀리언 하트’라고 말하며 백만 명의 마음과 같이 웃고, 울고, 쓰다듬어주는 그렇게 사람을 만나는 것을 기대한다고 했습니다. 입에 넣으면 향기가 확 도는 박하 같은 삶을 살기 위해 이름도 이리 바꾸었다는 유바카님의 목소리는 인터뷰 내내 정감 있고, 또렷하고, 경쾌하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유바카 안의 자연스러움과 어린왕자의 순수함이 부여에서 활짝 꽃 피우기를 기대하며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손이 변형될 정도로 어린왕자호텔을 새롭게 가꾼 유바카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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