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업로봇을 꿈꾸며…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0. 8. 12:11

본문

식량 안보를 책임지는 농업로봇을 꿈꾸며… 

 

안녕하세요. 저는 메이커 윤종섭입니다. 무슨 메이커냐고요? 무엇이든 만드는, 그리고 앞으로도 만들고 싶은 메이커입니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습니다. 레고, 건담뿐 아니라 우체국 아저씨가 되고 싶다고 종이로 우체부 아저씨 모자도 만들고, 철사와 한지 등으로 꽃도 만들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정말 많이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남들이 하는 것,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하면서 자연스레 만들기와는 멀어졌었죠. 딱히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그런 꿈 없이 대학을 다닐 때까지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똑같이 안하면 불안하기에 저도 열심히 살아오면서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앞두었던 2013년 어느 날, 사고로 인해 몇 개월을 꼼짝없이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별일이 없었다면 그냥 하던 대로 계속 살아갔을 텐데 그 흐름이 딱 끊어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니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읽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자신에게는 엄청난 전환점이었죠. 그 전엔 항상 미래의 무언가를 잡으려 했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를 잘 가면 행복할거다, 대학교 때는 졸업하고 대학원을 잘 가면 행복할거다, 그 뒤로도 계속 미래에 있는 것만 좇아가고 있는데 거기에는 절대 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항상 새로운 걸 얻으면 또 다른 걸 얻고 싶고, 이런 식으로 살다보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죠.


 어릴 때부터 코딩도 해보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있었지만 3D 프린터를 보는 순간! 내가 구현한 코드대로 실제 실물이 만들어지고, 모터나 하드웨어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 컴퓨터 코드만 있으면 나의 의지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죠.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은 매트릭스 영화의 스미스 요원이 실제 세상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습니다. 코드가 하드웨어에 심겨지는 순간 진짜 내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을 보면서 내 의지를 정리해 코드에 구현하기만 하면 세상에 변화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확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재활이 끝나자마자 컴퓨터 하나 들고 “저 산에 들어가겠습니다”선언하고는 산에 들어갔죠. 병원 퇴원 후, 그냥 이전에 살던 방식으로 되돌아가면 절대 그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도시보다 복잡하지 않고 방해받지 않을 수 있고, 눈치 보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있고 싶었습니다.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서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뒷받침 해주셨기에 대학 때까지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보지 않고 자랐습니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랬던 제가 산에 들어간다고 하니 어머님은 물론이고 친척들, 친구들까지 모두 걱정하면서 저를 말렸죠. 그런데 참 감사하게도 아버지께서는 이런 저의 결정을 믿어주시고 직접 부동산을 다니시며 제가 지낼 곳을 알아봐 주셨습니다.


시골에 얼마나 있을지 기약 없이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무척 힘들었어요. 주변에 뭔가 보여줘야 할 것 같고, 내 뜻대로 들어왔는데 제대로 안 되서 다시 또 돌아가면 괜히 시간낭비만 하고 똑같은 길을 가야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많이 불안했죠. 그때부터 머리도 빡빡 밀고 친구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유튜브와 책으로 공부와 자기개발만 했습니다. 용접기도 유튜브를 보고 혼자 해보는데 선을 거꾸로 끼워놓고 반대로 하면서 이게 맞는 건가 헤매고, 용접하다 빵꾸도 많이 내고 삽질을 진짜 많이 했습니다. 정말 이렇게 별의 별일을 다 해보면서 몇 천 번의 크고 작은 실패들을 하며 내공을 쌓았죠. 물론 생활도 해야 하니 소프트웨어 개발도 조금씩 하고, 시골의 험한 일도 정말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습니다. 가축 축사에서 용접도 하고, 비 오는 날 그라인더 작업하다가 감전도 되고, 동네 아주머님의 부탁으로 새장도 만들고, 의자, 화장대, 테이블 등등. 그러다 동네에 소문이 나서 온 동네 분들이 만드는 거라면 목공, 용접 상관없이 제게 다 가지고 오셨었습니다. 동네 이장님이 부화기를 만들어 달라고 하셨는데 병아리가 한 마리도 안 나와서 망신당했던 적도 있어요.(웃음)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내 실력이 쌓이고 좀 덜 불안해지니 제가 기여할 수 있고 보람 있는 일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열심히 하고 실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너무 크다는 걸 깨달았죠. 작년 초에는 아는 동생과 같이 농업 로봇을 만드는 회사를 창업했다가 저희 둘의 생활 패턴이나 스타일이 잘 맞지 않아서 1년 만에 접었습니다. 그 때 저도 너무 힘들었었죠. 혼자 있다가 누군가와 같이 마음을 모아 좀 더 큰 꿈을 키우며 나만의 회사를 만들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다시 혼자가 되니 마음이 쉽지 않더군요. 그러다가 작년 12월에 지금 있는 회사에서 농업 관련된 로봇을 만들기 위해 동료들과 같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3D 프린터로 만든 첫 농업로봇 프로토타입  - 딸기따러 가는 모습


제가 이렇게 혼자 도전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열정과 지식을 나누고 있는 ‘메이커 무브먼트’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IT를 떠나 많은 영역들에 해당되는 부분일 것 같아요. 이전에는 회사들이 폐쇄적으로 가지고 있던 노하우들이 이제는 오픈소스로 공개되어 같이 연구하며 발전시키는 프로젝트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보다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는 게 더 많기도 하고요. 
현재의 스마트팜은 시설내의 환경을 제어함으로 생산성을 향상시켰고 귀중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결국 궂은 일들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특히 선진화가 진행될수록 농업 인건비는 상승하지만 식량 안보는 포기할 수 없기에 대안은 반드시 필요하지요. 처음부터 이족보행 로봇이 뛰어다니며 농사를 짓는 그림을 상상할 수는 없지만 농약방제와 파종 등 가까운 영역부터 한 단계씩 로봇이 사람의 노동력을 대체해 나갈 것입니다. 실제로 미국, 네덜란드, 일본,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농업 로봇 업체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고 이런 농업의 미래가 곧 우리 앞에 필연적으로 펼쳐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메이커 윤종섭
joejsy@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