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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한옥 밤마실’에 다녀오실래요?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0. 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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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한옥 밤마실’에 다녀오실래요?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 서곡
일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진리임을 확인했다.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가 이루어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안녕 나의 한옥 집》을 미국에 살면서 출간한 임수진 작가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아니 그전에 임작가의 책을《Hanok, The Korean House》와 《서촌 홀릭》등을 쓰신 로버트 파우저 박사님께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소피님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출발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같으니, 한옥 관련 책은 파우저 박사님도 당연히 좋아하실거라 여겼다고 했다. 두 분이 책으로 서로 인연을 맺고 있었지만 북토크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 된 것은 유진하우스에 임작가가 오면서부터였다. 나는 이미 임작가의 출간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고, 한국에 오면 꼭 우리 집에 오기로 미리부터 약속을 해 두었었다. 이번에 서울에 오자마자 우리 집에 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혜화동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고 하니 더 남다른 인연이다 싶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둘이 한옥 관련 책을 썼으니 한옥 북토크를 열면 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왕 북토크를 한다면 로버트 파우저 박사님도 모시면 좋겠다고 했다. 마침 한국에 나와 계셨기에 연락을 드려 허락까지 받았다. 유진하우스에 마당이 있으니 장소는 있는 셈이고, 그 이외의 것은 어찌하나 걱정을 했다. 그런데 임작가가 막내 이모인 김정라 기획자께 이번 북토크의 총괄 진행을 부탁드렸는데, 기꺼이 두 팔을 걷어 붙여 주었다.

한옥 관련 저자들의 북토크 의논을 위한 첫 모임
첫모임은 서촌 한옥에서 가졌다. 파우저 박사님은 모임이 거창하게 진행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한옥에 진짜 관심이 있는 사람들끼리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을 갖자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박사님 소박한 모임을 하면 되는 거지요?”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저자와 독자들이 한옥 툇마루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는 밤마실이라는 말이 딱 어울려서 명칭도 ‘한옥 밤마실’로 했다. ‘한옥 밤마실, 한옥 저자 3인의 북토크’를 파우저 박사님이 미국으로 돌아가시기 이틀 전날인 7월 14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으로 겨우 잡게 되었다. 사회자도 유진하우스 이웃에 사는‘참우리건축’김원천 소장님을 추천 드렸더니 모두가 좋다고 했다. 급한 마음에 모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김소장님 사무실에 들러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히 허락을 해 주는 바람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간절한 바람
북토크 날짜는 바로 내일인데 장맛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행사 당일에도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어떡하나? 걱정이었지만, 가랑비 정도로만 내린다면,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한옥 마당에서 우산을 쓰고, 비를 좀 맞으면서 모임을 진행해도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일기예보를 몇 번이나 살피면서 행사 날만은 비가 좀 비켜 가 주기를 바랬다. 모두의 간절한 바램 때문이었는지 행사 당일에는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유진하우스 마당에서 펄럭이던 빨래를 걷고, 눈에 띄는 거추장스러운 것들만 치우고 있었더니 일찌감치 자원봉사자와 김기획자님이 오셨다. 필요한 소품들을 한 보따리 챙겨 오셔서 순식간에 우리 집을 몰라보게 바꾸어 놓았다. 행사 포스터를 집 안팎에 붙이고, 대문 앞에 안내데스크를 준비했다. 작가들의 책들과 꼭 필요한 소품으로 멋지게 장식을 했다. 전문가들의 손을 거치니 거창한 모임이 열리는 것처럼 이 집이 유진하우스 맞나? 싶을 정도였다.
코로나와 장맛비를 뚫고 ‘한옥 밤마실, 한옥저자들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미국과 경주 등 멀리서 가까이서 오신 분들 30여 명이 툇마루와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한옥 마당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처럼 차려진 듯했다. 한옥의 창들 곳곳에 붙여진 행사 포스트와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들이 함께 잘 어우러졌다. 여름이라 해가 늦게 지는 바람에 7시 30분 시작 시간에도 날이 환했다. 마당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이 두둥실 떠 있어 네모 하늘을 처음보는 냥 연신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었다.


딱 어울리는 한옥스러운 진행
‘참우리건축’ 김원천 소장님이 사회를 맡아 주셨는데, 복장도 남달랐다. 평소 즐겨 입는 개량한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오셨다. 한옥 북토크에 이 분보다 더 어울리는 사회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딱 어울리는 한옥스러운 진행을 해 주셨다. 장맛비가 계속 내린 후라 후덥지근할 줄 알았는데, 살랑살랑 바람까지 불어 모두의 기분을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한옥을 지을 때 남쪽을 약간 낮게 해서 바람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도록 했다는 이야기는 물론 한옥에 대한 여러 가지 지식까지 덤으로 알려 주셨다. 특별히 한옥이라면 뒷간, 화장실의 추억을 빼놓을 수 없다면서 화장실에 얽힌 추억까지 꺼내어 달라고 하는 바람에 한옥 이야기가 더 원색적이고 향기?로왔다.

임수진 작가의 한옥에 대한 추억
40여 년 전 살았던 한옥에서의 추억을 달게 곱씹는 임수진 작가도 지금 미국에 살고 있지만 이번에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나고 북토크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한옥은 개방되어 있는 곳이다. 마당이 있고, 누구나가 들어 올 수 있는 동네와 마을을 품는 공간, 고향 공주를 품는 곳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언제나 와서 맛있는 것도 먹고, 할머니도 만나고, 언제든 오고 싶으면 오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집이 단순한 개인의 집이 아닌, 온 동네를 아우르는 곳이었다. 골목을 들어서면 두근두근하고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하늘, 나무, 벽, 담, 골목 그리고 한옥의 숨겨진 공간들에 갖가지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이다.” 비록 지금 어릴 적 살았던 한옥과 주변 동네는 이제는 많이 변하고 다시 살기에는 어려운 곳이 되었다. 그때의 추억을 책에 따뜻하게 남겨 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고 했다.

로버트 파우저의 한국인보다 더한 한옥 사랑
한옥을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한옥을 사랑하는 로버트 파우저 박사님은 88년 올림픽이 열렸을 때 서울 혜화동에 있는 한옥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하셨다. 신혼부부와 마산 총각, 파우저 박사님이 같은 한옥에 세를 들어 살았다고 했다.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서양 사람으로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한 집에서 사는 것이 좀 걸리기는 했다고 한다. 안방, 다락방, 마루를 사용할 수 있었다. 미처 화장실이 어떤 상황인지 확인을 하지 못하고 계약을 했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양변기가 없는 화장실이라 처음 며칠은 난감했지만 1주일 정도 지나면서 사용 방법을 배워서 겨우 적응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TV가 귀한 때라 신혼부부의 방에만 TV가 있었는데, 올림픽 개막식을 보기 위해 마당 한 켠에 있는 보일러실 위 높은 장독대에 TV를 꺼내 놓고 함께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억센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했던 마산 총각의 말이 처음에는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총각과 가끔 소주도 마시면서 친해질 수 있었고, 그때 배운 사투리 덕분에 영화 ‘친구’도 보러 갈 수 있었다고 하셨다. 한옥은 마당이 있어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물론, 외부에서 오고 가는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만나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는 곳이라 했다. 화장실과 마당도 청소도 당번을 정하지 않았는데도 돌아가면서 서로 알아서 청소를 잘해서 늘 깨끗했다고 한다. 한국의 80년대 말에 남아 있는 공동체 의식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멋있게 살자는 의도가 강했던 것 같다고 하셨다. 공동주택에 살면서는 느낄 수 없는 한옥에서만 가능했던 훈훈한 이야기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계셨다. 파우저 박사님은 외국인으로 책들을 직접 한국어로 썼지만,《Hanok, The Koran House》는 영어판으로 공동저자이다. 출판사의 의도에 맞추느라 비교적 화려하고 큰 집, 고택 위주로 한옥을 소개한 것이 아쉽다고 하셨다. 유진하우스와 같은 서울식 도시형 한옥 등 다양한 한옥을 싣지 못했지만, 한옥을 세계로 알리는 일에 일조를 한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긴다고 하셨다.

유진하우스 주인장 김영연의 진행형인 한옥의 삶
내 인생 중 혜화동 80년 된 한옥에서 13년을 살아 온 것을 큰 복으로 여긴다. 한옥을 수리할 때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었던 점, 그리고 기와를 옛날 것으로 하고 싶어 했던 일 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그동안 한옥에서 지내온 생활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유진하우스는 조상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집이다. 쉼과 멈춤이 있는 한옥으로 시골 외할머니 댁에 온 것 같은 곳이라 여기는 사람도 많다. 철학자의 숨결이 남아 있는 사색의 한옥으로, 세계인의 안방인 글로벌 한옥이 된 유진하우스가 김태길 기념관으로 오래오래 남기를 고대한다고 했더니 “한옥을 지키느라 애쓴 수고를 추앙합니다”라는 최고의 멘트를 날려 주신 분까지 계셨다. 내가 진짜 그랬나? 싶어 울컥할 정도였다.《나는 혜화동 한옥에서 세계여행 한다》일본어판《ソウルのわが家で世界旅行,韓国伝統家屋・オンマのおもてなし日記》이 곧 출간이 된다. ‘서울의 우리집에서 세계여행, 한국 전통가옥 엄마의 환대일기’라는 제목으로 변했지만 일본 사람들이 더 이해하기가 쉬울듯하다. 한일 간의 화해(和解)에 관련된 이야기가 책 속에 있다. 미력하나마 한일 간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한국 전통문화를 외국인이 이해하기에 좋은 가이드북과 같다고 하니 일본어판을 시작으로 영어와 다른 언어로도 번역이 되는 것도 소망하고 있다.
“한옥의 편안함에 안겨 있는 기분이에요.“라며 어릴 적 한옥에 살았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 한옥은 집만이 아니라 그 속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 이웃들의 관계 등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에 우리의 가슴 깊숙이 따뜻함으로 남아있다. ‘우리는 한옥인이다’로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해 준 황준호 대표님의 말처럼 우리는 이제 ‘한옥인’이 되기로 했다. 아니 벌써 ‘한옥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이었다.
간식도 1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 김기획자님이 직접 천을 끊어 만들었다. 천 귀퉁이에 살짝 포인트로 놓은 수가 앙증맞게 어울렸다. 맛있다고 소문난 떡집에서 맞춘 개성찹쌀떡과 방울토마토, 포도를 접시에 담아 손수건으로 쌌더니 얼마나 폼새가 나든지! 하나부터 열까지 섬섬옥수 정성의 손길은 야물고 지혜로왔다. 한옥의 향기가 베인 종이(센트바이, 배사라 대표 협찬)에 좋아하는 색깔의 색연필로 그림도 그리고 시를 쓰기도 했다. ‘장독대 안에 장이 익고, 돌절구 속에선 세월이 익는다.’라는 즉흥시와 그림을 임작가의 어머니께서 멋지게 작품으로 남겨 주시기도 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온갖 준비를 다 해 와 수고를 해 주신 김기획자님을 배웅하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더니 “한옥이 최고의 준비였어요.”라고 답을 해 주셨다. 그러고보니 한옥이 열일을 한 날이었다.
한옥아, 정말 고마워!


서울시 종로구 유진하우스 김영연 대표
yykim65@daum.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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