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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적, 다른 직업. 라이딩으로 하나되어 달리다.

2022년 8월호(15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2. 10. 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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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적, 다른 직업. 
라이딩으로 하나되어 달리다.

 

국적, 직업, 나이도 서로 다른 30~40대 5명의 처자들이 장장 150km의 1박 2일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답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미래의 나를 계획하기! 그리고 나의 한계를 넘는 도전하기! 산본에서 가평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하루 묵고, 다음날 춘천까지 달려 자전거를 타고, 전철로 다시 산본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죠.


라이딩을 계획하며
여행을 계획할 때 여러 가지 고려할 것들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출발하는 7월 9일, 그전 주까지 폭우로 자전거 도로가 침수되는 바람에 길이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출발날짜는 다가오고 비예보가 계속 있었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죠. 저희 팀 큰언니가 가평 관내에 전화를 해서 자전거도로 청소를 부탁했어요. 그리고 저희는 가평에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자전거를 들고 이고 가더라고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발하는 날 저희의 각오를 하늘이 알아주었던 것인지 비가 싹 그치고, 밝은 태양이 떴지 뭡니까! 저희가 떠나기 며칠 전 자전거 도로 청소가 이루어졌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었고요. 
두 번째로 고려해야 했던 것은 같이 출발하는 팀원들의 훈련정도와 건강상태였습니다. 우선 이번에 같이 가게 된 팀원들을 소개할께요. 프로그래머에 듬직한 큰언니, 중국어 통번역을 전공한 길치 라이더인 저, 장군 별명을 가진 디자이너, 네팔에서 한국으로 와 엄마가 된 네팔 처자, 사천에서 한국에 온지 6년이 된 중국어 강사인 천하장사 소녀 이렇게 5명이랍니다. 저희 중 가장 걱정했던 팀원은 발목 부상으로 장거리를 타보지 않았던 장군님과 겨우 두 달 전 자전거를 처음 타본 네팔처자였어요. 라이딩 일정을 시간 단위로 나누어 치밀하게 짜고, 첫날 거의 100km 가까이를 달려야 했기 때문에 새벽 4시 반에 출발했죠. 일찍 출발하면 한낮 더위도 피할 수 있고요.

뼛속까지 길치, 선두에서 길 찾다 눈에 핏줄까지 터지다 
여행이 종이에 써 놓은 계획대로 된다면 재미없는 여행이 되겠죠? 우선 제가 로드를 3년 전에 입문해서 해마다 여름에 목표를 가지고 훈련을 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가장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어요. 이 이유 때문에 선두에서 팀들을 끌고 출발을 했답니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는데, 사실 저는 방향감각이 맹꽁이인 길치이지요. 몇 번 가본 길이라 큰 걱정은 안 했는데, 평소 가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헷갈리는 갈림길이 나오면 영락없이 틀린 길로 들어섰지요. 혼자 간다면, 쓱 돌아서 다시 가면 되지만, 뒤에 줄줄이 따라 오는 팀원들이 저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습니다. 맨 뒤에 지도를 잘 보고 길을 잘 찾는 큰언니가 있어 한편으로는 든든했지만, “못한다고 포기는 없다!”라는 각오로 마음과 정신을 다잡고, 온 신경을 자전거 손잡이에 거치한 스마트 폰의 지도와 앞의 길을 대조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지도를 확대해서 작은 샛길을 찾는 법도 알게 되고, 핸드폰의 화면이 어두워질세라 손으로 터치해가며 지도와 길을 확인했습니다. 둘째 날은 온 신경을 다 쓰며 집중을 해서 그런지 길을 잘못 드는 일은 거의 없었답니다. 한 손을 놓고 동영상으로 팀원들의 라이딩 모습을 촬영하는 등 새로운 도전도 해 보았어요. 그러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저의 왼쪽 눈에 실핏줄이 터진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항상 친언니의 손에 이끌려 다녔기 때문에 방향이나 길을 찾을 필요가 없었답니다. 이번 라이딩을 통해 내가 과거에 훈련하지 않아 현재 영 못할 것 같은 영역도 온 힘을 쓰면 새롭게 개발될 수 있다는 것과, 처음엔 너무 힘들지만 하다보면 익숙해 질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생기게 되었답니다. 

네팔처자의 필살기
두 번째 순서로 달렸던 네팔처자는 불과 두 달 전에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는 매주 수요일 10km 정도 자전거를 탔고, 토요일에는 40km와 60km 한 번씩 평지를 타 본 것이 전부였죠. 평일 훈련을 하고 회사에 가서는 커피와 박카스로 버티고 점심시간에는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해 잠시 낮잠을 자야했지요. 출발 전날, 야근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 산본에서 잠실을 지나 광나루로 가는 내리막길에서 몸에 힘이 빠지면서 그만 길옆의 봉에 부딪쳐 넘어지는 사고가 나고 말았지요. 무릎이 두 곳이나 까지고, 몸에 군데군데 멍까지 들었습니다. 상처 뿐 아니라 놀란 가슴과 넘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네팔처자를 보며 ‘전철로 이동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전체 일정은 당연히 점차 늦어지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팀원 중 어느 누구 하나 낙오자 없이 끝까지 가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네팔처자는 “우리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묻더군요. 숙소를 예약해 둔 대성리까지 가는 것이 목표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네팔처자는 “그럼 끝까지 자전거 타고 가요! 대성리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요”라고 하더군요. 한국의 지리에 익숙지 않은 네팔처자의 대답이 천진무구하게 들리기도 했고, 거리는 모르지만 함께 가겠다고 하는, 의지 담긴 대답이 기특하기도 하여, 저희 팀 전체는 힘을 얻고 네팔처자의 컨디션을 살피며 다시 라이딩을 시작했습니다. 팔당에 도착해 빵과 음료로 힘들었던 몸에 에너지를 충전하고, 두물머리로 이동 점심식사 후, 낮 시간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커피숍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오후에 다시 출발해 숙소까지 도착! 저의 스마트 워치로 거의 100km를 첫날 탔습니다. 처음 계획은 오후 3시 도착이었지만, 저녁 7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갔죠. 하지만 팀 전체가 네팔처자의 컨디션에 맞추어 100km를 함께 완주한 것이 너무나도 뿌듯했습니다. 모두가 씻고 9시가 넘어 잠이 쏟아졌지만 짧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지요. 네팔에도 이런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라이딩을 하는 레져 문화가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네팔에서 등산은 하지만, 자전거 라이딩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친구들과 일을 하러 가다 오는 중에 잠시 놀기는 하지만, 이렇게 여행을 다녀 본 경험은 없다고 합니다. 한 달 정도의 훈련기간 동안, 처음에 짧은 언덕을 넘어 신기했고, 다음에 좀 긴 곳을 갔을 때 내가 여기까지 오다니 하며 매번 조금씩 늘어나는 훈련에 스스로 성취감을 얻었다고 하더군요. 또 기어변속과 오르막 내리막에서의 자세 등을 이번 장거리 라이딩을 하면서 터득 했다고 합니다. 넘어져 무릎을 다쳤을 때 내가 끝까지 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무엇보다 다시 자전거를 타면서 앞으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겁쟁이 라이더, 드디어 장군 인정에 한 표!
세 번째로 달렸던 디자이너인 친구는 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체격이 좋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겁이 많은데다 자전거를 타다 몇 번이나 발목을 다쳐 자전거 훈련을 제대로 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항상 뒤쳐져서 혼자 오거나, 다른 사람들을 서포터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완주를 했고, 속도도 한 번도 뒤처지지 않았어요. 발목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체력도 많이 좋아져서 그런지 세 번의 깔딱 고개가 있는 아이유 고개에서는 선두인 저를 앞질러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으니까요. 평지에서도 한 번도 속도가 뒤쳐지지 않고 따라오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답니다. 산본에서 안양천을 타고 한강까지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는 친구였는데, 이번 라이딩을 완주하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산본에서 회사가 있는 가산디지털 단지까지 자출족으로 출퇴근을 결심하였다고 하니, 앞으로 쌩쌩 속도를 내며 달리는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막내이자 중국인인 ‘천하장사’ 소녀, 미션 성공
네 번째에서 앞의 사람들을 잘 챙겼던 팀의 막내이자 중국인인 천하장사 소녀는 작년에 한국인들과의 자전거 라이딩 경험이 있었습니다. 워낙 체력이 좋고, 자전거도 잘 타는 친구라 자전거 타는 것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죠. 작년까지만 해도 앞 사람을 쫓아서 타기만 하다가 이번 여행에서는 두 가지 미션이 주어졌죠. 하나는 자신의 앞사람을 잘 챙기고, 앞사람과 뒷사람을 연결하는 중간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팀 재정사용 영수증을 챙기는 일이었고요. 전에는 쌩쌩 앞 사람을 좇아서 자전거 타는 것에 집중하며 재미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자신이 담당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무척 뿌듯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는 자전거를 교통수단으로 많이 이용하지만, 여러 명이 팀을 이루어 라이딩 하는 것이 흔하지는 않다고 해요. 이번에 함께 한 자전거 여행에서 문제가 생기면 팀원들이 함께 해결하고, 서로를 이해해주고, 살피며 다녀 온 것에 보람을 느끼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주장이 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도 되었다고 했습니다.

끝까지 배려하며 팀원을 챙긴 큰언니 
마지막으로 프로그래머인 큰언니는 맨 뒤에서 전체 팀원을 챙기며 라이딩을 했습니다. 평소 시간 계획을 하고, 계획대로 진행하려는 성향이 강한데, 이번 여행에서는 같이 타는 팀원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각 개인들을 배려하면서 그것에 맞추어 시간을 진행해 보려고 노력을 하였다고 해요. 처음 일정을 짤 때부터 돌아와서 몸에 무리가 생길 수 있는 네팔 처자를 위해 마사지 코스를 추가하기까지 각 팀원들을 생각하는데 마음을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평소 언니는 척추뼈가 다른 사람보다 하나가 많아 무리하면 허리가 아픈데, 첫날 오후 네팔처자의 컨디션이 좋아지면서 전체 속도가 꽤 빨라졌을 때, 아픈 허리에 힘을 주지 않고 기어를 조절해 페달링 하면서 빠른 속도로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애를 썼다고 합니다.

가기 전에 자전거 타이어 교체 연습까지 하며 준비했는데, 네팔 처자가 다친 것 외에는 큰 사고 없이 돌아올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자전거 라이딩에서 각자가 서로 다른 자신의 한계를 어느 정도는 넘은 것 같아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것 같습니다. 이 경험들이 삶에서 어떤 한계에 부딪쳤을 때 주저앉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돌파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자전거 여행에서 아쉬웠던 점은 라이딩 시간이 길어지면서 서로 이야기 할 시간이 좀 부족했어요. 각자의 미래에 대한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시간을 기약해 봅니다.

 

서울시 천호동 김송희
zulu7979@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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