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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님!

2022년 12월호(15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4. 1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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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문화에 대한 해양문화의 비판에 대한 비판]

 

감사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님!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 뉴욕타임스 2022년 10월 20일자

 

 

친애하는 시진핑 주석님

(도입) 당신이 중국공산당의 주석으로 세 번째로 임명된 것에 대해 내 나라가 보내는 감사와 축하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하는 통치가 어떤 날인가는 다른 자유국가들을 비롯한 미국의 역사에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축복의 하나로 인식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10년 전에 처음으로 최고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론) 그 때로 되돌아가 보면, 중국이 고대에서 세계를 주도하던 문화와 가장 거대한 경제를 회복할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결론 내렸습니다. 매년 10%를 자주 넘겼던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률은 우리(서방)가 이룬 보잘 것 없는 발전을 그늘에 가리우고 말았습니다. 한 산업에서 다른 산업을 - 정보통신, 은행, SNS, 부동산 - 막론하고, 중국회사들은 산업계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외국 국적자들이 상하이, 홍콩, 베이징에 살거나 공부하거나 일하려 몰려들었고, 잘나가는 미국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중국어 몰입과정에 등록시킨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정책입안의 차원에서 말하자면, 더 부유해진 중국은 해외에서 더욱 더 영향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영향은 서유럽에서 남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와 동아프리카에까지 느껴졌습니다. 비록 중국이, 거부하기 어려울 강력한 이런 영향력을 세계에 미칠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정치적 의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중국은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권위주의의 효용성을 합한 유일한 모델을 제공하는 것 같았습니다. 결정은 내려졌으며 그대로 실행되어졌지요. 점차로 흥청망청해가는 (서방의) 자유사회와는 얼마나 대조되는 현상인가요. 
중국의 모든 것이 잘되리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정치적으로) 부상한 것은, 있을 법했다는 쿠데타의 소문과 함께, 당신의 근본 대적인 보시라이가 극적으로 추락한 것과 동시에 발생했습니다. (중국이 가진) 장기적 관점의 도전들을 - 널리 퍼진 부패, 늙어가는 인민들, 경제에 있어서의 정부의 역할 -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경영이 요구되었습니다. 중국이 재빠르게 부상하는 국제적 패권국이 됨에 따라 당연히 따라오는 국제적 혐오와 저항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이런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음과 세 가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당신의 가족이 문화혁명 기간 당했던 쓰라린 경험으로 당신은 전체주의의 위험을 인지했으리라고 판단되었습니다. 
(2) 부패를 척결하려는 당신의 확고한 자세는 당신이 중국 경제를 더욱 자유화시킬 의지를 가진 것과 맥을 같이 하는데, 이는 당신이 유능한 관료인 리커창(李克強)을 총리로 임명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 그리고 당신이 1980년대에 미국의 아이오와의 한 가정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당신이 미국을 어느 정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리라는 소망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소망이 단지 실망으로 변할 정도를 훨씬 넘어섰을 뿐 아니라, 여지없이 분쇄되었습니다. 만약 (미국 정치에 있어서)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의 전 대통령)와 조 바이든(민주당의 현 대통령), 혹은 톰 커튼(공화당 대표의원)과 낸시 펠로시(민주당 대표의원)가 단 하나의 합의점에 이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 제거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이 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다섯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1) 부패를 향한 당신의 전쟁은 대량 숙청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신장(지역)에서 행한 당신의 억압은 소련시절의 (잔악한) 굴락(수용소)에 비교할만한 것입니다.
(2) 당신의 경제개혁은 전형적으로 비효율적인 정부소유의 사업체(공기업)가 주도적으로 활약하는 지경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말았습니다.
(3) (서방의 기술을)엿보아서 탈취하며, 지적재산권을 도둑질한 당신이 행하는 ‘사실상의’ 정책은, 많은 서양인들로 하여금 화웨이와 같은 중국브랜드들을 마치 방사능물질 대하듯이 혐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FBI 원장인 크리스퍼 웨레이는 2020년에 행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FBI가 새롭게 매 10시간마다 중국관련 대 정보전쟁을 열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4) 당신의 제로-코로나 정책은 때로는 중국의 대도시들을 사람이 살기 어려운 거대한 감옥 군도들로 변화시켰습니다.
(5) 이웃을 괴롭히는 당신의 외교정책(전랑외교)은, 오히려 일본의 재무장을 부추기거나 미국의 바이든으로 하여금 타이완을 위하여 싸우도록 다짐하게 하는 일에 주로 성공하게 만들었습니다.

(출처:한겨례)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이 통치하는 중국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것 중의 어느 하나도 당신을 강하게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독재정권은 대체로 복종을 강요하지만, 억지로 충성심을 발휘하게 만듭니다. 정치학자 조셉 나이(Joseph Nye)가 관찰한 것처럼, 응집시키려는 (유형의) 물리적 힘은 매력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려는 (무형의) 문화적 힘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조만간에 당신을 괴롭히게 될 진실에 마주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블라디미르 뿌띤이 한 때 가졌던 무시무시한 군사력이 우크라이나에서 급격하게 축소되었을 때 받은 바로 그 고통입니다. 
당신은 진로를 수정할 시도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럴 것 같지 않은데, 그것은 단지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수정하기가 거의 힘들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신이 더 많은 대적을 만들수록 당신은 더 많은 압박을 가해야 할 겁니다. 당신이 지금 하고 있듯이 당신 주위로 예스맨을 둘러싼다면, 당신에게 일종의 안정감을 주기는 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치명적으로 중요한, 진실 된 정보의 흐름을 놓치게 만들 것인데, 특히 그 정보가 당신에게 불편한 진실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당신이 가진 것과 같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가진 치명적인 아킬레스 힘줄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하는 거짓말을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외국기자들을 중국에서 내어쫓는 일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인데, 그 이유는 당신은 더 이상 당신에게 점증하는 골치거리들에 대한 외부의 견해를 얻을 수 있는 유익을 누리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들 중의 그 어떤 것도 여기 미국과의 외교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많은 면에서 당신의 호전성은 이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데, 우리가 어느 때인가 서로 맞부딪쳐 싸워야 할 지 모를 점증하는 위험을 결코 사소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자유세계와 비자유사회 사이의 장기간의 경쟁의 관점에서 보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당신은 자유세계가 승리하도록 도우고 있는 셈입니다. 내 친구인 톰 프리드만의 말을 한 줄 인용해 보겠습니다 :“도대체 당신의 중국에 하루라도 머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이것들이 우리가 당신에게 감사드리는 이유입니다. 우리의 연합체(미국 혹은 자유적 세계질서)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 흠이 있다는 사실도 압니다: 우리 사회의 돌파력이 물러터졌을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한번 당신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당신이 선택한 중국의 음울한 미래상보다는 이런 약점을 가진 우리의 체제를 더 선호할 것이 분명합니다.

 

 

친애하는 브랫 스티븐스씨 !

 당신이 쓴 반박불가능한 선명한 논지, 치밀하고 정연한 구조를 가진 글에 우선 감탄합니다.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바로 옆인 서쪽에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중국을 신경써야 할 우리의 관점도 많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여러 한국 미디어들은 당신의 글, 특히 당신 글의 제목을 리포트의 제목으로 되풀이해서 소개하곤 합니다(‘Thank you, Mr. Xi!’). 중국현상을 단순히 1차원적인 군사력과 자본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이 당신이 말한 것처럼 헤매면 헤맬수록 한반도나 미국이 유리해집니다. 그렇지만 중국대륙과 중국인들을 멀리 이사 보낼 수도, 또 한반도나 미국이 그 옆을 떠날 수도 없으며, 앞으로는 전 지구적인 장기적으로 세계사가 진행되어야 하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헤매는 중국에 대해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습니다. 단기적으로는 현 정권인 중공의 파멸은 다들 기대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현재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전제정치적 전통에 짓눌린 데서 벗어나, 수십억의 중국인이 발휘할 폭발적 능력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전 지구에 놀라운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해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당신의 글에서 한편으로는 많은 부분에 동의하고 또 속 시원함을 느끼고, 그렇게 생각하는 우군이 지구상에 많다는 사실에 안심합니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매우 당연한 다음의 명제를 따라 지금의 중국현상을 바라본다면, 당신처럼 이야기하며 주요 미국신문을 통해 퍼지는 것이 매우 가볍고 속 좁은 것이며, 특히 중국과의 관계를 주도하는 세계의 패권국 미국이라는 관점에서는 심히 염려되는 것입니다.  

명제: 타자비판이 정당하려면 자기비판은 더욱 정당해야 한다. 미국의 중국비판이 정당하려면 미국이 미국 스스로를 비판하는 것이 정당해야 한다.

첫째, 외부(중국)를 그 안에 속한 사람처럼 따뜻하고 동정적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당신의 글에서는 중국을 따뜻한 내부인의 관점이 아닌 철저히 냉혹한 외부인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뿐인 것이 너무나 선명합니다. 이것은 서구문화의 세계 제패의 끝물로서의 미국이, 20세기 중반까지 가졌던 현실적인 관점으로, 끊임없는 경쟁으로 인한 승리와 정복, 패배의 치욕이라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입니다. 이것은 정말 구시대의 유물일 뿐입니다. 특히 미국은 1970년대의 냉전의 해빙을 주도해서 중공을 폐쇄에서 풀어주는 결정적인 실수를 행했습니다. 그 이론적 기초는 닉슨의 정책입안자였던 키신저의 학위논문에서 전제되었던 서구의 베스트팔리아체제(1648)-비엔나체제(1815)의‘힘의 균형’이었습니다.1) 20세기의 정치가 이전의 정치와 획기적으로 다른 점은 이데올로기의 정치개입이었는데, 키신저는 이 점을 깡그리 무시하고 하나의 마르크스 세력인 소련을 잡기 위하여 또 다른 마르크스의 세력인 중공을 세우는 힘의 전략을 취한 겁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이 중국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니, 결국 당신네 나라 미국이 자초한 셈입니다. 물론 실용주의적 정신을 영국으로부터 이어받은 미국의 전통 때문에 이데올로기를 싫어하면서 동시에 그 이데올로기를 무시하였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중국은 역사가 일천한 미국이 성립되기 수천 년 전부터 전제군주국가로 통일성을 오랫동안 유지하여 온 나라였습니다. 이런 전제군주적 전통의 기초 위에 이데올로기적 공산주의가 덧붙여진 매우 특이한 중국공산당 정권이라는 유일무이한 동양적 정치전통(북한,베트남,남한좌파도 동일)을 과연 미국은 제대로 깊이 공부하고 이해하고 접근했으며 지금이라도 그렇게 접근하고 있는 지 여전히 의심스럽습니다. 1950년 당시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에 불어 닥친 이후에는 오히려 정반대로 방향을 잡아 이데올로기를 깡그리 무시한 결과는 혹시 아니었는지요? 역사를 더 거슬러 2차대전 당시로 돌아가서 일본과의 전쟁에서도, 미국은 쪼그마하고 꾀죄죄하다고 생각했던 일본인들이 진주만을 감히 급습했을 때, 당신네 선배인 서부총잡이들처럼, 비겁하게 공격당하면 사정없이 빵빵 쏘며 일벌백계의 징벌방식을 중국을 향해서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요? 일본을 얕잡아 본 결과 당신네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고 나서야 정복하였나요? 당시의 일본보다는 훨씬 강력한 중국을 상대하려면 아마 미국의 모든 국운을 건다면 이길 수 있을 것이지만, 미국 자체가 걸레처럼 망가질 것이며 세계 역사는 뒤집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흥기하는 2010년대의 중국을 배우려고 당신네 자녀들을 중국어 교습소에 보내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던 것보다 더 깊이 중국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인들은 역사적으로 바로 옆의 중국인을 향해 되놈이라고 욕하기도 하지만, 중국에 대해 늘 반드시 가져야 할 두려움을 가지고 항상 조심스럽게 대해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에 자부심을 가지지만, 동시에 이렇게 서구문화를 흉내 내어 이룬 선진국 자체가 되는 것을 궁극적 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오백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자부심을 가졌던 서구문화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딱 중간에 끼인 나라로서 지금의 중공이 아닌 그 엄청난 잠재력과 가능성을 제대로 발휘하는 중국이 미국과 함께 새로운 문화를 개척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감사합니다. 시진핑’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신 때문에 너무 염려되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입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요? 

둘째, 내부(미국)를 그 밖에 있는 사람처럼 차갑고 냉혹한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외부(중국)를 다루는 원리와는 정반대로, 이제 당신 나라 자체를 차갑고 냉혹한 외부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능력이 미국에는 있는가를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한 지 벌써 70년이 넘어가지만, 우리를 비롯한 전 세계는 미국이 행한 역사에 대해 큰 의구심이나 불안을 느낍니다. 즉 외부인의 관점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것, 탁월한 자기비판 능력은 특히 지도자나 패권국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인데, 미국은 과연 이것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주 단순하게 영국이 장기간 패권국이었을 때와 비교해 볼까요? 영국이 지배하거나 세력을 떨쳤던 나라들 중에서 지금도 영연방에서라도 느슨한 관계를 가질 정도로 영국의 정치력이나 문화에 대한 향수를 가진 나라들이 많습니다. 이런 향수를 미국이 관계했던 세계 여러 나라들은 미국을 향해서 가지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은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요? 물론 3만 명 정도의 미국 젊은이들의 목숨과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진 대한민국은 미국에 절대로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우리는 패권국이자 진정한 우방인 미국의 현재와 미래를 정말 진심을 다하여 염려하는 겁니다. 목숨을 한반도에 바친 그 젊은이들은 1930년대의 금주법 시행으로 태어난 아이들로서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한 상태였으며, 전쟁이 없었다면 미국 사회의 윤리와 정신세계에 매우 중요한 기여를 해서 미국의 국격을 크게 높였을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정반대로 20년 후에 베트남에서 싸운 젊은 미군들은 베트남전쟁의 타당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커지는 반전운동과 히피운동으로 마약에 찌든 경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아프며, 이것이 우리가 미국에 대한 고마움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언급했던 정치학자 조셉 나이의 구분을 따른다면, 현재의 패권국인 미국의 외적, 물리적 힘과 정신적, 윤리적, 문화적 힘의 조합이 전 세대의 패권국인 영국에 비해서 초라하게 보이는 것은, 영국에서 5년 유학한 이 글을 쓰는 한 개인의 편향된 시각일까요? 물론 대륙문화적 땅따먹기를 피하는 경향을 가진 해양패권국으로서 영국이 하지 말아야 했던 것은 인도정복이나 아편전쟁과 같은 치명적 실수였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명의 피도 흘리지 않은 가운데, 신실한 기독교인 정치공동체인 클랍함 공동체가 철저히 의회에서 장기간의 투쟁을 통해 노예제도를 폐지한 영국(1833)과, 30여년 후에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정치지도자인 링컨의 목숨과 60만 명의 젊은이들의 죽음(남북전쟁)으로만 노예제도를 폐지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1865)을 대조하는 것은, 신생국가인 미국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까요? 그렇지만 다음의 미국의 냉혹한 현주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까를 생각하면, 헤매는 중공 못지않게 머리가 지끈거려지며 깊은 염려를 늘 품게 됩니다:


1) 4백년 밖에 안 되는 3억 인구의 미국이 가진 매우 일천한 역사 때문에, 깊은 역사를 가진 거대한 동양(인도,중국 합쳐서 28억)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
2) 여러 민족들이 다양한 시대에 혼합되어 들어와서 인종들의‘샐러드 볼’이라고 여겨져 너무나 형성하기 어려울 것 같은 국가적 정체성
3) 한 해에 2백만 명의 이민자가 꿈의 땅으로 여기고 몰려들지만, 이들이 하나의 미국인이 되는데 쏟아 부어야 할 엄청난 정신적,물리적 에너지
4) 이민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동체성에 대한 자각보다는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철저히 개인적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개인주의,가족주의로 크게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
5) 전전 패권국이었던 네덜란드에서 성공하였다가, 전 패권국인 영국의 명예혁명에 일조하여 그 사회에 정착하고 뿌리내려 상류층이 되었다가, 다시 현 패권국인 미국에 옮아와 미국의 최상류층과 세계 최고부자의 반열에 이루었으나, 여차하면 미국을 떠나 다른 곳이나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는 유랑민족의 철저히 세속적,물질적 정신을 소유한 유대인 문제
6) 정반대로 미국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하였지만 더 이상 사회정화적이고 윤리적인 배경이 되어주지 못하고 물질주의와 극단주의로 변질된 미국 기독교
7) 영국의 해양문화적 정신세계를 이어받아서, 실용적이고 경험주의적이며 귀납법 위주의 문화문명을 만들었지만, 정반대로 원리적,통합적인 연역법을 통한 문화문명건설에 매우 취약한 미국의 학문,문화세계와 해결 불가능한 기후문제와 UN문제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segen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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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enry Kissinger, [World Order], 2015.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58>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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