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spective & prospective 9. - 청년다움]
청년다움을
회복하는 새해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을 한 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2018년의 첫 달이 훅하고 지나가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2017년 12월 31일과 2018년 1월 1일은 단지 24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인데 말이죠. 2017년을 보내고 2018년을 맞이하며 새 달력을 찾아 걸고 새 노트를 펼치며 새해엔 작년보다 살림살이도 더 나아지고 우리를 둘러싼 환경도 더 좋아지기를 희망해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갑자기 천지가 개벽하듯 좋아지고 나아지지 않듯이 이유를 모를 희망 뒤엔 살아온 시간동안 겪어냈던 걱정 또한 아직은 우리를 뒤따라다닙니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우리나라 청년 실업률이 9.9%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88만원세대,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듯이, 유럽이나 미국 또한 청년실업을 지칭하는 말로 니니(NiNi)세대, 밤보쵸니(bamboccioni)세대, 영국의 키퍼스(Kids in Parent's Pokets Eroding Retirement Savings)세대 등의 신조어도 전 세계적 문제인 청년실업률 증가를 나타낸 말들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실업률인 40~50%에는 미치지 못하는 숫자이지만, 우리가 마주한 이 9.9%라는 기록적인 청년실업률을 방치한다면 한 세대를 통째로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적 시스템이 건강하고 튼튼해서 갑작스런 변수나 불황이 찾아와도 정상적으로 되돌아가 젊은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경제인구로 편입되어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일꾼으로 성장해야합니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안정적이고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요즘은 한창 미래를 꿈꿔야하는 젊은이들이 현실도피나 계획할 수 없는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에 굴복하고 나에게 기회가 오기만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맞는 걸까요? 가망도 없으니 노력도 하지 않고 시도조차해보지 않는 것이 현명한 걸까요? 그런 태도는 기성세대들이 바라는 청년의 모습은 아닐 것입니다. ‘청년’이라는 말 속에는 불확실성, 현재진행형, 진화하는 중...처럼 정해지지 않음으로 인한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대부분 정해져서 변화보다는 현실 보존이 더 편하고, 진보보다는 쇠퇴에 더 가까운 기성세대들이 청년을 부러워하는 이유 또한 그 한없는 에너지와 성장가능성 때문일 것입니다.
몇 해 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서 미술작품들을 가져와서 국내에서 전시하는 기획을 했었습니다. 대부분이 프랑스 국보급에 속하는 고미술품이어서 전시의 준비단계부터 많은 주의와 신경을 써야했습니다. 이 전시는 루이 14세 때의 회화작품들도 소개되기 때문에 국내외 고미술 복원가들도 관심이 많은 전시였습니다. 한국전시를 위해 전시 전에 작품의 상태를 철저히 점검하는 업무를 우리나라의 미술품 복원으로 유명한 전문가를 모셔 맡겼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고 작품을 디스플레이 하는 첫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인사한 후, 전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중에 선생님 주위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따라다니는 안경 쓴 조그마한 여학생이 눈에 뜨였습니다. 선생님께 그 학생은 누구냐고 물었지요.
“저 학생은 프랑스에서 미술품 복원을 공부중인 학생인데, 전시 몇 달 전 이메일을 보내서 자비로 한국에 올 테니 전시준비 기간 중에 옆에서 보고 배워도 되겠느냐고 묻더라고요. 얼마나 기특한지 당장 오라고 했죠.”
저 또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녀에게 직접 물었지요. “어떻게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하는 전시까지 올 생각을 했느냐”고.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견한 답변을 했습니다.
“저는 22살의 노르망디 출신으로 현재 복원미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프랑스 안에서 하는 전시는 어디든 가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데 마침 제가 알고 있는 한국의 복원미술가가 프랑스 관련 전시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프랑스의 국보들이 해외전시를 할 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 싶어서 곧바로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지요. 다행히 선생님께서 참관해도 된다고 하셔서 조수로 참여하게 되었죠.”
그녀는 전시준비기간 내내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맘껏 공부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날 진정한 ‘청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자신이 알고 싶고 좋아하는 공부를 위해서 직접 알아보고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까지 찾아가서 경험하고 익히는 그 상기된 얼굴 말입니다. 어쩌면 청년기는 맘껏 시행착오를 해보아도 좋다고 허락받은 유일한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젊은 날 나이든 우리들 모두 그런 시기를 겪지 않았던가요? 사회를 지배하는 전반적 분위기가 현실감없이 꿈만 쫓다간 남보다 뒤쳐지거나 낙오자로 낙인찍힌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뿐인 인생에서 길지 않은 청년시절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위해 이리저리 찾아다니며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열정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나은 길이 아닐까요?
회사에서 주기적으로 신입사원을 뽑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한 가지는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기성세대들에게 청년들만의 패기와 용기를 불어넣어 신선한 기운을 수혈 받고자 기대하는 면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새로운 기대와 희망으로 시작하는 새해, 나이든 우리들이라도 모두 청년다움을 회복하는 한 해로 만들면 어떨까요? 청년이라면 한번 계산없이 가슴 뛰는 일을 향해 돌진해보고, 또 기성세대라면 그 옛날 풋풋한 마음으로 체면과 선입견 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일의 본질을 보는 순수했던 청년다움을 회복하는 한 해를 만들려고 하면서 말입니다.
예술의전당 창의문화팀장 손미정
mirha@sac.or.kr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10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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