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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가 중국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2018년 9월호(제10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9. 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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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사상중 법가 연구]




법가가 중국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수주대토(守株待兎)’란 사자성어를 아시나요? 

 “옛날에 송나라의 한 농부가 밭일을 나갔다가 우연히 토끼 한 마리가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뜻밖의 횡재를 한 농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예 농사를 팽개치고 매일 그 나무 그루터기에 또 토끼가 와서 부딪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그는 더 이상 토끼를 잡을 수 없었고, 남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내용을 말합니다. 법가 사상가들이 당대의 유가, 묵가, 도가 등을 신랄하게 비판할 때 사용한 비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을 늘 과거에 매여 실제 현실의 문제에는 무능한 자들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들을 가지고 있고 실제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법이라는 도구를 통해서’말이지요. 


 그러나 과연 이들은 자신들이 의도했던 것처럼 중국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성공했을까요? 진시황과 한무제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법가 사상가들의 글을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법가 사상가들의 이론들과 실행했던 실제적 사례들을 서양의 법 개념과 비교하며 비판하고, 동시에 현대 문명의 기초를 이룬 서양의 법 개념과 체계의 한계를 지적해 보고자 합니다.  


 1. 법가에는 ‘법’이 없다


 법가의 창시자로 알려진 관자는 법에 대해‘법이란 군주가 백성을 통제하는 수단이다... (중략) 무릇 법을 만드는 사람은 군주이고, 법을 지키는 사람은 신하이며, 법을 본받아 행하는 사람은 백성이다’라고 정의합니다. 이 내용만 보면 법 제정자(군주), 법 집행자(군주 및 관리), 법의 목적(다스림과 통제) 그리고 법을 지켜야 할 대상자(신하와 백성), 그리고 법 위반에 대한 형벌 규정 등이 선명하게 나옵니다. 그뿐인가요? 상앙은 자신의 책인「상군서」에서 ‘법이 공평해야 관리가 사악해지지 않는다’는 말을 통해 ‘법의 공평성’도 언급합니다. 이것만 보면 법가 속에는 형식적 의미에서의 ‘법’의 모든 내용이 존재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 역사학자인 이중텐이나 정위안 푸는 이렇게 말합니다. 법가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닌 법을 이용한 통치일 뿐이라고 말하는데 너무나 정확한 지적입니다. 왜냐하면 법가 사상을 통치철학으로 삼았던 진시황의 경우만 보아도, 지나친 형벌, 분서갱유 사건 등으로 엄청난 폐해를 중국 역사에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법가의 사상과 유사한 개념이 서양법에도 있는데 형식적 법치주의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으로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만 하면 그 내용이 악법이든 어떠하든 상관없이 그것도 법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법에 의해 행동하기만 하면 정당성이 보장된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가 만든 최초의 ‘수권법’을 위시한 수 많은 악법들이 가장 대표적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차 대전 이후에 비로소 서양법 사상은 역사의 쓰디 쓴 교훈을 통해 형식적 법치주의가 아닌 ‘실질적 법치주의’, 즉 그 절차나 내용에 있어서 정당성과 합법성을 가질 때 진정한 법치주의가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2. 법가에는 ‘인간’이 없다


 이러한 법가 사상가들의 글을 읽어보면 그들이 ‘인간(백성)을 인격적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즉각 알수 있습니다. 오로지 ‘군주’를 위한 도구로 법이 사용된다는 차원에서 보면 백성은 단지 군주를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게 유도되는 결론입니다. 마치 법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이러한 법가의 폐해를 가장 잘 경험한 사람이 법가를 주장한 ‘상앙’자신이라는 점은 참으로 역사적 아이러니입니다.  

 진 효공 당시의 재상이었던 상앙은 진나라 태자가 법을 어긴 것에 대해 ‘법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법을 어기기 때문’이라며 태자를 법대로 처벌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태자는 군주의 후계자이므로 형벌을 줄 수 없어 태자의 스승을 처벌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진의 효공이 죽고 태자가 즉위하자 이전에 당했던 일 때문에 앙심을 품은 무리들이 상앙을 모함하여 ‘상앙이 배반하려 한다’고 왕에게 고발하자 왕은 형리를 보내 상앙을 체포하려 합니다. 이에 상앙은 도망쳐 한 객사에 머무르려 하나 객사의 주인은 그가 상앙인 줄도 모르고 ‘상앙의 법에 따라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받으면 저도 같이 벌을 받게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기에 머물지 못하고 위나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때에 ‘법의 폐해가 이런 지경까지 왔구나’라고 상앙은 한탄하였지만, 결국 잡혀서 거혈형이라는 처참한 형벌을 당하고 맙니다.  

 사실 상앙의 이런 처지는 ‘군주는 백성을 쓰려고 아낀다’는 관자의 말이나, ‘뛰어난 군주는 백성을 길들이는 고귀한 존재다 그러므로 뛰어난 군주는 사람의 재주를 자원으로 다루고 그들 모두를 길들인다’라는 법가 사상가 중 또 다른 한 사람인 신도의 말 속에 이미 예견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길들일 존재’‘가축 같은 존재’‘오로지 군주만을 위해 존재하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존재’라는 차원에서 보면 최고위 관직에 오른 상앙도 예외는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서양의 경우는 어떨까요? 미국의 독립선언(1776)이나 프랑스 인권선언(1789)의 사상적 기초인 천부인권사상을 통해 서양의 인간관이 잘 드러나는데, 이것은 법가 사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법가에서 사람은 유일하게 ‘군주’인 반면, 천부인권사상은 ‘모든 인간이 고유한 인격적 존재이며, 차별받지 아니하며, 그 누구에게도 부당한 침해를 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 존재’라고 말하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천부인권사상에도 치명적 한계가 있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절대종교인 기독교적 기초 위에 도출된 ‘천부인권’ 즉 절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권리라는 것인데, 어느 순간엔가 ‘천부’는 도외시 되고 ‘인간’의 권리만 강조하는 가운데, 역사와 정치는 결국 홉스가 말한 것처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3. 법가에는 ‘정치’가 없다. 


 법가에서는 ‘정치’를 ‘술(術)’즉 통치 기술이라고 표현합니다. 한비자는 왕은 술(術)을 가슴 속에 감추고 다양한 사례에 맞추어 은밀히 여러 신하를 부리는 것이다라고 선명하게 표현하며 정치에 있어서 핵심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나라를 다스리려는 군주는 붕당을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중략) 군주가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붕당을 일소해야 한다. 붕당을 없애지 못한다면 그들은 많은 무리를 모을 것이다’라고 말이지요. 긍정적 의미에서의 정당은 ‘대화의 장, 토론의 장’을 여는 가장 기초적인 장치임에도, 아예 그러한 기회를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근절시켜야 한다는 것은 법가의 정치사상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한비자가「외저설 우상」이라는 책에서‘까마귀를 길들이려면 날갯죽지를 잘라야 한다. 날개 아래를 잘라 버리면 반드시 사람에게 의지해 먹어야 하니 어찌 길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한 부분도 더 선명하게 이 사상을 보여줍니다. 


 서구 정치문화가 전 세계적인 추세가 된 지금 거기서 유도된 현대의 정당제도는 모든 점에서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당이라는 이름하에 각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사장되거나, 각 정당간에 서로 나눠 먹기식으로 나아가게 될 때에는 엄청난 부정적 결과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정당을 통한 독재정치 같은 것이지요. 그럼에도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함께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차원’이 열려있다는 것은 명백한 장점입니다. 그렇지만 법가는 아예 ‘정당 자체’를 존재치 못하게 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정치를 기대할 수 없지요. 더 나아가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법가에게서 제대로 된 ‘정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이렇게 법가 사상 속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은 존재하지만 정당성과 합법성이 존재하는 법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 도구적 존재가 아닌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존재치 않는다는 것, 대화와 토론의 기초 위에 존재하는 정치가 없다는 세가지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물론 오로지 군주의 통치권을 절대화하기 위해 ‘법’을 사용하고, 군주 하나만을 위해 ‘모든 인간(백성)’을 도구로 사용하며, ‘폭력과 강압’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법가 사상가들의 시도는 그 시대에는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는 중국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실패한 사상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법가 사상가들이 당시의 시대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실제로 진시황이나 한무제, 그리고 그 이후 중국 통치 역사 속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로지 황제 한 사람을 위해 모든 법, 인간, 정치가 존재한다는 사상에 2천년 중국 역사와 중국인들을 철저하게 옭아맨 법가 사상의 흔적이 또 다른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현대 공산당 중심으로 진행되는 중국 통치 속에서 여전히 살아 꿈틀대고 있다는 것이 감지되는 것은 바로 옆에 사는 조그만 나라의 백성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경기도 군포시 한상기
apostle72@daum.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7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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