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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貢院)에서 공원(公園)으로 부자묘(夫子廟-공자와 그 제자들)를 부자묘(富者廟)로

2018년 11월호(제10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1. 2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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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강남공원과 부자묘]



  공원(貢院)에서 

공원(公園)으로

부자묘(夫子廟-공자와 그 제자들)를 

부자묘(富者廟)로



 

 ‘Back to the Future’라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이번 가을 중국 여행에서 ‘역사라는 타임머신 기계’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중국의 다양한 사람들, 역사 등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특히 난징에 있는 ‘과거시험 장소로 유명한 강남공원(貢院)’과 ‘공자를 기리기 위한 부자묘(夫子廟)’두곳을 통해서 말입니다. 먼저 먼 과거인 춘추 전국 시대로 돌아가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훗날인 강남공원을 만든 1168년 송(宋)의 현종 시대로 돌아가 그곳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으로 만나 보았지요. 다시 2018년 현실로 돌아와 현재 강남공원과 부자묘를 관람으로 놀이삼아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비해 본 것은 참으로 유익한 만남의 시간이었습니다. 


<중국 강남공원>


 공원(貢院)에서 공원(公園)으로  

 가장 먼저 방문한 ‘강남공원’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가로이 노니는 공원(公園)이 절대 아닙니다. 강남공원의 ‘공원(貢院)’은 ‘과거 시험장’이라는 의미이므로 당연히 한자가 다르지요. 송(宋) 현종 때(1168년) 만들어져 청나라 때인 1905년에 폐지되기까지 무려 750여년 동안 수많은 중국의 관료들을 배출해낸 곳으로 무려 한꺼번에 2만명까지 시험을 볼 수 있는 장소였을 정도라고 합니다.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1168년으로 날아가 볼까요? 마침 도착한 시간은 송(宋) 현종 황제의 칙령에 따라 중국 전역의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든 날이었습니다. ‘과인이 2만명 정도를 수용하는 과거 시험장을 만들었노니 이제 중국 전역의 수많은 청년들은 난징의 강남공원으로 몰려와 자신의 실력을 뽐내라!’는 칙령에 따라 과거 시험이 시작된 바로 그날인 것이지요. 과목은

 ‘사서오경’인데, ‘사서(四書)’는 <논어>, <대학>, <중용>, <맹자>,‘오경(五經)’은 <역경(易經) >, <서경(書經)>, <시경(詩經)>, <예기(禮記)>, <춘추(春秋)>입니다. 사실 사서오경 중심의 과거제도는 먼 훗날 중국의 세계화를 막는 주된 이유들 중 하나라고 비판 받았지요. 그러나 이런 변화를 모르거나 혹은 외면한채 이 시험장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주야로 실력을 갈고 닦았던 수많은 청년들이 청나라 말기까지 몰려듭니다. 그 중엔 16세 정도 보이는 소년뿐 아니라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도 보입니다. 유일한 신분상승의 길이라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임하는 사람들, 반드시 장원 급제하여 가문을 일으키리라는 사람들로 가득찼지요. 심지어 이번에 떨어지면 더 이상 소망이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이 신고 있는 버선에 깨알같은 글을 써서 커닝 버선(커닝 페이퍼 버선)까지 준비한 사람들 등 저마다 사연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한평 남짓한 독방에서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치러내는 수일간의 시험이 징 소리와 함께 끝났습니다. 꽃가마를 탄 몇 명의 사람들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떨구며 나옵니다. 좌절, 절망, 분노, 허무, 이를 가는 소리 등도 들립니다. 잠시 있다 사라질 부귀영화를 위해 오로지 ‘사서오경’에 젊음의 시간들을 흘려보내는 그들의 어리석음, 허무의 깊이 또한 다가옵니다.  


 850여년이 흐른 2017년, 장소는 바뀌었지만 난징의 거대한 광장에 수많은 청소년들이 모여있습니다.‘전국통일시험’이라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지요. 이름만 달랐지 실상은 과거 시험과 유사합니다. 물론 과목은 ‘사서오경’과는 달리 서양식 학제의 성격을 따라 문과계는 정치, 국어, 수학, 역사, 지리, 외국어(영어/일본어/러시아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 중 택일), 이과계는 국어, 정치,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외국어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과거와 동일합니다. 최고의 점수를 받아야만 최고의 대학에 갈 수 있고, 그래야만 대학 졸업 후 국가에서 최고의 기관, 직장으로 택함 받을 수 있기에, 성공하고자 하는 청소년이나 자녀가 성공하길 원하는 부모는 12년의 초중고 과정에 집중합니다. 이어지는 대학에서의 학습 과정도 동일합니다. 그래서인지 시험장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1168년 강남공원에서 과거를 치르기 위해 모였던 수많은 청년들과 겉만 다를 뿐 잠시 있다 사라질 부귀영화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붇는 인간의 욕망 면에서는 동일해 보입니다.


 다시 2018년 9월 22일 ‘강남공원’앞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과연 그들은 과거제가 폐지되어 ‘공원(貢院)’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기까지 무려 750여년동안 드나들었던 도합 1천여만명의 수험생들의 흔적이 배어 있는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는 과거가 되어 버린 과거(科擧)시험의 현장 속에서 과연 현재 중국, 중국인들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지향하는 자신들의 교육 시스템이 가진 한계를 역사를 통해 생각할까? 라는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강남 ‘공원(貢院)’앞거리를 먹고 마시고 노는 ‘공원(公園)’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부자묘(夫子廟)를 부자묘(富者廟)로 

 다시 답답한 마음으로 눈을 들어 보니 지척에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또 다른 옛 건물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니 큰 글자로‘부자묘(夫子廟)’라 새겨져 있는 현판이 보입니다. 이곳은 사서오경의 출발점인 ‘공자’를 모시는 사당으로 공자를 존경한다는 의미인 ‘공부자(孔夫子)’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서 역사의 타임머신을 거꾸로 타고 도착한 시대는 주(周)나라 춘추시대 말기로 주왕의 권위가 약해지고 수많은 제후들이 난립하던 시기입니다. 정치와 사상의 세계 속에도,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도 모두 소용돌이만 난무할 뿐입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수많은 설(說)들이 난무하고 혼란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이 혼란 속에서 무언가 열심히 말하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의 소리를 들어보니 귀에 익숙한 ‘충, 효, 인, 의, 예’라는 단어들입니다. 그는 이것을 바탕으로 정치를 해야 나라가 안정되며, 사회와 가정도 평안해 진다고 외칩니다. 실제 그는 조국인 노나라를 자신의 정치철학을 적용해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비록 어리석은 왕으로 인해 한동안 천하를 떠돌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바로 춘추시대에 빛을 발했던 ‘공자’입니다. 



<공자와 그 제자들 상들>


 그뿐이던가요? 다시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흘러가니 ‘왕권 강화를 위한 사상적 기반’으로 유가의 깃발을 세운 ‘한나라’가 나옵니다. 주자학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학의 깃발이 세워진 ‘송나라’도 보이고, 과거 시험을 통해 모든 젊은이들의 정신세계를 사로잡았던, 우리가 조금 전에 방문했던, 강남공원(貢院)이 바로 옆에 있네요. 무려 총 1900여년 이상 중국 황실의 통치절학, 중국인들의 정신을 지배했던 거대한 힘의 움직임들이었던 것입니다. 1919년 5.4운동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와해되기 이전까지, 또 모택동이 주도한 1966~1976년의 문화대혁명을 통해 박살나기 이전까지 말이지요.  

 다시 현재로 돌아와 2018년 9월 부자묘라는 현판 밑에 서니 전면에 공자의 상(像)이 반가이 맞이해 줍니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솔직하고 용기있으며 강직), ‘자사’(청빈한 생활), ‘백우’(덕을 행함) 등 많은 제자들의 상(像)이 좌우로 도열하여 소리없이 맞아줍니다. 비록 석비에 불과하였지만 반가운 마음이 드는 찰나, 갑자기 한쪽에서‘징~~’하는 소리가 오른쪽 고막을 파르르 울립니다.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범종 앞에 큰 글씨로 ‘2元(위안)’이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종 치는데 2위안을 내라는 것이지요. 이번엔 왼쪽에서 ‘둥~~’하는 북소리입니다. 어색한 몸짓으로 북채를 잡고 흔드는 서양 청년 앞에도 ‘2元’이라는 가격표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또 사방을 돌아보니 ‘복(福)’자가 난무합니다. 어린아이, 청년들, 노인들은 각기 동전을 찾아 작은 분수대 안에 던지거나, 부(富)를 비는 표를 사서 붙이기에 바쁩니다. 


 무언가 부조화스럽습니다. 5.4운동과 문화대혁명 시기를 통해 아무리 무시되었다 할지라도, 무려 1900여년 이상 자신들의 사상적 역할을 했던 공자를 이렇게 부귀영화를 만족시켜주는 대상으로 바꾸는 이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부자묘 한가운데 서 있는 공자상이 희미하게 웃고 있는 그 미소가 혹시 이런 후손들을 향해 조롱하는 미소는 아닐까요? 정문 현판에 새겨진 ‘부자묘(夫子廟)’라는 글자가 저에게는 묘하게도 ‘부자묘(富者廟)’라는 글자로 겹쳐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요?  


 이것이 2018년 가을 중국에서의 공동체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입니다. 당대에는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이 현재는 폐허나 관광거리로만 남아 침묵하는 강남공원과 부자묘 속에서 아무 배움도 얻지 못하는 중국과 중국인인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상대적이며 잠시있다 사라질 것들을 마음의 중심에 두었던 결과들이기에 씁쓸한 ‘느낌’또한 매우 강하게 들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오래가는 혹은 영원한 보편적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바로 옆에 있는 중국과 중국인이 그러한 것을 우리와 함께 추구해 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입니다. 





경기도 군포시 한상기
berithhsk@hanmail.net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9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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