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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2019년 7월호(11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9. 1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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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장애 극복기]

 

사고 이후,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작년 4월 9일 오후 5시경, 양재동 뒷골목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통화에 집중하다보니 주차되었던 차가 슬그머니 다가오는 것을 몰랐고, 차에 밀려 저는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넘어졌습니다. 한 손에는 짐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전화기를 들고 있어, 어떤 방어도 못하고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깨어 보니 병원이었고, 이미 3일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주변에 계신 분들이 119에 신고를 해서 실려 왔고, 의식이 돌아올 때까지 고압산소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두개골 함몰로 인한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는데 마비까지 올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사고 당시 백팩을 매고 있어 더 크게 다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뇌출혈로 생긴 혈전 때문에 올해까지도 통원치료를 매주 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고 때문인지 운전이 어렵고, 공황장애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숨쉬기가 힘들고 구토 증상까지 생겼습니다. 이전에 있던 부정맥이 다시 도지고, 전화통화를 하려면 머리가 뜨거워져 가능하면 톡이나 문자를 사용해야 합니다. 피곤해지면 목이 가라앉고 소리를 낼 수 없는 등 사고로 인해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사고로 집에 오래 있다 보니 회사에 신경을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기존의 회사 일도 그렇고 새롭게 벌려놓은 사업 때문에 걱정이 여간 많지 않았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몸과 마음은 따라주지 못하니 조급함과 불안함에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운중천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그곳의 물고기들을 보면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위해 산책을 꾸준히 나가고 음악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작년 겨울부터는 의사와 상의해 자전거도 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항상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일 중독자였지요. 하지만 사고 후에는 100%가 아니라 50~60%정도만 전력을 쏟을 수밖에 없는 여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저에게 생긴 변화는 당장에 일을 처리할 수는 없지만, 한 걸음 뒤에서 그 일을 바라보고 숙고할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일을 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했지만 은연중에 돈을 목표로 달려온 것이 사실이었는데, 다른 가치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업을 한지 4년차인데, 사고가 난 작년에는 직원들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첫해 수준의 매출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과 사장없이도 사업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떤 사업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면 좋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물건 하나 더 파는 것보다 장기적 안목의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몇 가지 아이템과 조직, 방향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면서 처음 ‘스위스플라이어코리아’를 맡게 되었던 그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2014년, 저는 잘나가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우연히 전기자전거 전시회에서 ‘플라이어’를 타보고 반해, 본사가 있는 스위스까지 찾아가 한국과 아시아 총판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총판을 따내기 위해 PT 마케팅 계획에 김대영씨에 관한 이야기를 비장의 카드로 준비했습니다. 김대영씨를 만나게 된 것은 플라이어 사업을 준비하며 양재천의 자전거샵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김대영씨는 산업현장에서 불의의 감전사고로 두 팔을 잃고 좌절과 절망감에 빠져 부인에게 술을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암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부인의 도움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트라이애슬론(철인삼종)이었습니다. 수영복도 갈아입을 수가 없어 부인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수영을 배우기 위해 한 달 반 동안 몇 드럼의 수영장 물을 마셔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을 배워 수영을 했고, 장애인 자전거를 타고 마라톤을 했습니다. 그 결과 비장애인 코스를 그 당시 22번 완주했고, 앞으로 100회 완주를 목표로 삼고 있었습니다. ‘왜 그것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나 같이 후천적으로 장애인 된 사람들에게 좌절 대신 희망을 주기 위해 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부인은 담담히 듣고 있었는데 저와 자전거샵 사장은 한 시간 반을 울었습니다. 저는 그때 속으로 다짐한 ‘이 부부에게 전기자전거로 유럽일주여행 프로그램을 해 주겠다.’라는 내용으로 PT를 했고 결국 총판을 허락받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사업인데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사고를 당하고 몸이 아프고 나니, 그 분들의 마음이 좀 더 이해가 되었고, 내가 하는 사업의 이유 중 하나가 이런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임을 다시금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불의의 사고가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기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플라이어코리아 대표 박성호
sungho@flyer-korea.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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