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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남기고 간 고마운 선물, 진돗개

2019년 7월호(11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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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이야기]

동생이 남기고 간
고마운 선물, 진돗개

 

 

뜻밖의 시련을 만나다
저는 원래 개를 좋아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고요. 그런 제가 지금 30마리가 넘는 진돗개와 함께하고 있으니, 참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요. 남편과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며 평범한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던 중,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뜻밖의 시련이 제게 찾아왔죠. 당시 필리핀에 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이었어요. 남편의 죽음은 세상 물정 모르고 남편을 의지하며 살아왔던 저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남편이 남겨놓고 간 재산마저 지인에게 빌려 주었다가 받지 못해 다 날려 버리고, 저는 한 마디로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져 버린 것 같았죠. 그래도 나름대로 외국까지 나가 생활하며 출세했다는 소리까지 들었던 저는, 한 순간에 빈털터리가 된 채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도우미 일을 시작했습니다. 환자와 어르신들을 돌보고 가사, 산모 도우미 등으로 어떻게든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설상가상으로 건강했던 남동생마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동생과의 재회와 갈등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누구보다도 사교성이 좋아 사람들을 몰고 다니던 동생이었는데, 하루 아침에 불구가 되고 그 여파로 행복했던 가정마저 깨어져 동생은 홀로 힘겹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휠체어 없이는 거동이 불편했기에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했고, 저는 누나로서 가만있을 수 없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왔습니다.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진도에는 친구들과 아는 사람들이 있었던 터라 자존심이 상했던 것도 사실이었죠. 여기다 동생과 함께 하게 되자 여러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불편해졌지만 깔끔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의 성격은 그대로였고,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대는 저를 동생은 언제나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티격태격 다툴 때가 많았고, 동생을 도우러 온 것인지 힘들게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동생과의 관계는 악화되어 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제가 좀 더 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잘 맞춰줬어야 했는데, 당시에 저 역시 몸과 마음이 다 너덜너덜 해진 상태였죠.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누굴 돌아볼 형편이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생이 남기고 간 선물
그런 저보다 동생에게 더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던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동생이 기르던 진돗개였어요. 이전에 동생이 유별나게 개를 좋아해 기르고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동생은 몇 마리의 진돗개를 키우면서 그 속에서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개들도 유난히 동생을 따랐는데, 동생이 차를 타고 병원에 갈 때면 앞뒤로 차에 따라 붙어 에스코트 하듯 달리고, 동생이 병원에서 나올 때까지 밖에서 눈을 맞으며 기다릴 정도로 주인을 따랐죠. 동생은 그런 개들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돌봐주기를 바랬지만, 제 눈에는 그 개가 그 개 같아 보여 동생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죠. 그러다 동생은 8년 전에 그만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르던 개들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말이죠. 동생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던 개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어, 제가 키워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들이 동생이 저에게 남기고 간 뜻밖의 선물이 되었음을 누가 알았겠어요? 

내게 너무 고마운 진돗개들
개들을 처분하고 진도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할까도 생각 했지만, 개들을 돌보고 함께 했던 동생을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개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개들 하나하나 마다 특징이 있다는 것도, 배려해 보살펴 주니 개들이 행복해 하며 저를 따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도 사랑받고 있다는 존재감과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게 되었죠. 그래서 진돗개를 키우는 분들과 의기투합해 진돗개 공연단도 만들어 대외적인 활동도 활발히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진도의 명물이 되라고 이름붙인 ‘진명’이는 너무 똑똑해 재주를 잘 부리고 그림까지 그리는 진돗개로 항상 저와 붙어 다니며 함께하는 특별한 존재죠. ‘진명’이가 영특하게 재주들을 익혀가는 것을 볼 때마다 대견하고, 내일은 또 어떻게 발전할까하는 기대로 오늘보다 내일을 소망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진명이 덕분에 호호백발 할머니가 방송도 타고 공연도 하니, 효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제 제 품을 떠난 자식들보다 이 아이들(진돗개)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30마리가 넘는 대 식구를 돌본다는 것은 생각만큼 낭만적이지 않죠.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가고 신경도 많이 써야 하니까요. 그래도 인생바닥에서 헤매던 저를 이렇게 세워준 진돗개들에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진도의 자랑 진돗개
진도하면 진돗개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 진돗개는 똑똑하고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개입니다. 한 주인을 끝까지 따르는 진돗개의 특성 때문에 진도에서 대전으로 팔려간 진돗개가 장장 300여 km의 거리를 주인을 찾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 특성은 진돗개의 장점인 동시에 애완견 외에 다른 역할을 맡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용맹하고 똑똑해서 군견으로 사용할 만하지만, 주인이 바뀌면 잘 따르지 않고 통제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깨끗하고 영특한 진돗개를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고, 저도 이 재능 많은 진돗개들과 함께 지내면서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어 주는 삶을 계속 살고 싶습니다.

 

전남 진도군 의신면, 김신덕
010-9008-5389
유튜브: 진돗개와 김신덕할매에 이야기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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