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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스타인을 물 먹인 사나이! ‘피에르 불레즈’

2019년 9월호(11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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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통신 노익호의 지휘자 이야기 11]

번스타인을 물 먹인 사나이!
‘피에르 불레즈’

(Pierre Boulez, 1925~2016)

 2차 세계대전 후, 유럽 정통 문화를 동경하던 미국음악계에 미국인으로 등장하여 일대 파문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레너드 번스타인’입니다. 
지휘, 작곡, 피아노연주 뿐만 아니라 대학 강연, 저술 활동 등 많은 분야에서 초인적으로, 그것도 야물딱지게 활동했습니다. 1958년 뉴욕 필하모닉(이하 뉴욕필)에 음악 감독으로 부임하고 1969년 물러났습니다. 물러났지만 계관지휘자로 추대되어 언제든지 원하면 지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그가 더 이상 뉴욕필의 지휘대에 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후임자로 들어선, 이번 호에 소개할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 때문이었습니다.
 
천재들도 사람인지라
유명지휘자들의 이야기는 곧 천재예술가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도 일반인들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속 좁은 면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피에르 불레즈’는 ‘레너드 번스타인’ 지우기에 나선 겁니다. 번스타인이 뉴욕필을 지휘할 수 없도록 완전 봉쇄했다고 전해집니다.
 
독선적인 ‘피에르 불레즈’
다니엘 바렌보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못지않게 사람 좋아 보이는‘피에르 불레즈’는 보기와는 달리 자기주장이 대단히 강해 매우 독선적인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실제로 그의 얼굴을 보면 곧이곧대로 정도를 걸어가는 ‘바른생활 아저씨’로 보입니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의 제자이며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스승을 야멸차게 비판했을 뿐만 아니라, <쇤베르크는 죽었다>라는 그가 쓴 글에서는 ‘...12음 기법 외에는 음색과 음의 길이 등 다른 요소들이 구시대적이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안톤 베베른’도 리듬의 사용에 있어서 혁신성이 없다고 비판할 정도입니다.
 
지휘자이기 전에 현대음악 작곡가
현대음악 작곡가로 활동하던 그가 지휘를 하게 된 계기는 현대음악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자함이었답니다. ‘피에르 불레즈’는 12음주의, 음렬주의, 총렬주의에 입각한 무조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었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는 총렬음악에서 벗어나 시(샤르, 미쇼 등), 그림(몬드리안, 칸딘스키)을 곡에 녹여 넣는 대단히 독창적인 시도로 작곡을 하게 됩니다.
 
지휘자로서 베를린 진출
1993년 ‘피에르 불레즈’는 처음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시작하는데 주 레퍼토리가 현대음악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독일은 아방가르드적인 미술, 재즈, 예술 전반에 걸쳐 정부가 밀어줄 뿐만 아니라 즐기는 애호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지휘자 ‘피에르 불레즈’
그는 지휘대에 서서 청중을 향해 간단히 목례를 하곤 바로 연주를 시작합니다. 그의 특징을 세 가지로 말해보자면 일단 웃음기가 하나도 없고, 낭만을 위해 최소한의 기름기조차 허용하지 않으며,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지휘합니다. 그가 연주하는 음악들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져야 마땅하건만 절제와 절도가 가져다주는 카리스마가 그동안 지휘자 이야기에 등장했던 그 어떤 지휘자보다도 월등합니다. 1993년 3월 ‘피에르 불레즈’는 스트라빈스키, 베베른, 드뷔시 등의 작곡가들 작품을 지휘했는데 그의 절도 있는 지휘 폼은 올림픽경기 중 체조경기를 떠올리게 하는 경쾌함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갈수록 난해한(결국은 그가 벼르던) 곡들도 연주했지만, 결국 저는 그의 맹렬한 팬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지휘한 음악 중 제가 들었던 최고의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였습니다.
 
뉴욕필 이후의 활동
뉴욕필에서 그는 고집스럽게 현대음악 위주로 공연을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고전, 낭만시대 작품을 끼워 넣는 방식이었으므로 결국은 사임하는데 이릅니다. ‘피에르 불레즈’가 사임하는 때를 맞춰 프랑스 정부는 그가 고국으로 돌아와 마음 놓고 활동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당시 조르주 퐁피두 프랑스 대통령이 전권을 위임해주겠다며 적극 권유했다고 알려집니다. 그리하여 1977년부터 2016년 1월 5일 92세로 타계할 때까지 파리 퐁피두센터 소속 프랑스 국립음향음악연구소(IRCAM)에서 생의 후반부를 장식합니다.
 
우연일까?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우연히 레코드판 사이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홀의 1993년 3월 프로그램을 하나 찾았습니다. 훑어보니 3월 한 달 내내, 거의 매일 대강당과 소강당(실내악 전문 홀)에서 연주회가 열렸었더군요. 대강당에서는 ‘피에르 불레즈’가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6번의 공연을, 그리고 지난 7월호에 연재한 ‘쿠어트 마주어’와 뉴욕필이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에서’, 게다가 ‘이보 포고렐리치’의 피아노독주회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무대에 섰습니다. 프로그램을 보며 기억을 더듬어보니 1993년 3월에만 근 열 번의 음악회를 다녀왔으니 생각만으로도 그때의 벅찬 감동이 다시 살아납니다.

 

칠레에서 노익호
melquisedec.puentealto@gmail.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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