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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천마을, 도의 깨달음으로 가는 구궁구곡(九宮九曲)

2019년 9월호(119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0. 2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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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문화 탐방기 4]

감천마을, 도의 깨달음으로 가는 

구궁구곡(九宮九曲)

사진제공 - 안태정 문화예술평론가

 후천세계를 향한 경외감과 순응의 신앙촌
부산역을 지나 자갈치시장이 나왔다. 아침 시간이어서 그리 붐비지는 않았다. 사하구로 가는 도로는 오르막길이었다. 숨이 차오르는 언덕길을 올라 아미고개를 넘자, ‘감천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감정초등학교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먼저 마을버스 정류장 옆으로 난 언덕길로 달려가 감천마을 전경이 보이는 곳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감천마을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단계로 감천마을 전경이 보이는 언덕길에서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감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내려다보는 감천마을 전경이 멋있어서 많이 간다는 말을 들었지만 학기 중이라 수업에 방해될까 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는 하지 않았다.
언덕길에서 본 감천마을 전경은 눈에 익었다. 감천마을을 검색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이미지가 바로 감천마을 전경 사진이다. 그래서 인지 낯설지 않고 친근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한국의 산토리니’, ‘한국의 마츄피츄’로 널리 알려진 감천마을이 아닌 ‘지구촌’감천마을이었다. 내가 내려다 본 감천마을은 우주인이 우주에서 바라본 아름답기 그지없는 지구촌이었다. 왜 이런 느낌을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2년 전 일본 큐슈 나가사키에 갔을 때 아사카 진자(八板神社) 언덕에서 바라봤던 산동네가 연상되었다. 가파른 계곡에 길을 따라 집들이 쭉 들어섰고 급경사 언덕은 돌 석축을 쌓고 양쪽 계단을 만들어 완급을 조절했던 산동네가 떠오른 것이다. 그 이유는 어떻게 가파른 언덕에 계단을 만들어 터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살고 있다는 것에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그 집들은 거택(巨宅)이었고 골 따라서 내려올수록 길 양쪽 집들은 소(小)주택이었다. 계단식 택지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질서정연한 주택 배치로 일본 골목의 특징인‘질서의 미학’을 경험한 적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 달동네 골목은 삶의 절박함을 담고 있어 ‘무질서’의 미학을 맛볼 수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감천마을의 골목은 정반대이다. 독특한 골목 ‘질서’의 미학을 볼 수 있었다. 나가사키 산동네 골목에서 맛본 ‘질서의 미학’과는 또 다른 ‘질서’의 미학이었다. 감천마을 골목 ‘질서의 미학’에는 모종의 신기(新奇, 새롭고 기이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순히 가지런하게 정렬된 달동네, 그리고 시선을 끄는 밝은 색깔의 질서 등 외적 경관으로 감지되는 단순한 ‘신기’(新奇)는 아니었다.
감천마을 탐사 후, 콜란 엘러스의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더 퀘스트)≫를 읽게 되었는데, 감천마을의 ‘질서의 미학’에서 발견한 신기(新奇)는 조망효과 때문이라는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감천마을 입구에서부터 체험하는 조망은 장소에 대한 인간 고유의 반응을 감지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눈앞에 펼쳐지는 골목 질서의 미학에서 초월적 장소로서의 광대함을 느끼게 되면서 경외감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불어 경외감만 갖는 게 아니라 순응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초식동물들이 무리지어 살아야만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데 유리하고 자기영역에서 생산되는 자원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에 순응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감천마을은 공간 자체가 경외감과 그에 따르는 순응이 교차되는 장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천마을 주민들의 종교적 체험과 연관된 도의 수행 장소이자 공간이 되는 것이다. 감천마을의 작은 집들이 계단을 이루면서 형성한 태극도의 신앙촌은 하나로 결집한 신앙으로 현재적 시간과 공간이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들의 육체는 태극도의 진리와의 경계가 무너지고 신비롭게 하나가 되는 합일의 공간을 체험하게 한다. 참기 힘들 정도로 힘든 삶이고, 그를 둘러싼 열악한 공간이다. 하지만 커다란 태극도의 공간에 몰입되는 순간, 어느 덧 깨끗이 사라지고 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되고 변화시켰다. 그래서 부산시가 제시한 영도 지역을 거부하고, 천마산과 옥녀봉이 있는 감천동을 선택한 것도 이런 종교적 이유에서였다.
 
2 감천, 도의 궁극인 구궁구곡(九宮九曲)의 현대적 해석
1955년 부산 중구 보수동 태극도인의 신앙촌은 부산역 주변 대화재로 판자촌 철거를 통한 도시재생 사업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태극도인 1,000여 호가 이주할 부지를 부산시에서 영도를 제안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천장길방(하늘이 감추어 놓은 길한 땅)인 감천으로 이주를 독자적으로 결정했다. ‘감천’은 ‘감내’로 ‘감’은 ‘신’을 의미하고 ‘내’는 ‘물’을 의미한다.
 
태극도인 대부분은 한국전쟁으로 부산으로 남하한 피난민으로 날품팔이, 행상으로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형편이었다. 부산시로부터 자재 수송 지원을 받았을 뿐 산언덕 계단식 택지 조성 및 건축을 직접 했다. 태극도인들이 충남 안면도, 전북 정읍 천수만 24만평 간척 경험이 있기에 가능했다. 폭풍과 장마에 계단식 택지와 판자 집이 무너지고 날아가 버리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하는 등 태극도인들의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주 ‘조정산’은 매일 비바람을 무릅쓰고 작업현장에 함께 하면서 도인들을 격려했다. 감천마을로의 이주사업이 끝났을 때, 도인들에게 “주희의 무이구곡과 송시열의 화양구곡이 아무리 좋다한들 어찌 나의 감천 구곡만 하랴.”고 말했다 한다.
 
원래 우리나라 구곡은 중국의 무이구곡처럼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갈 만한 장소가 거의 없는 관계로 우리만의 풍류의식이 결합되어 우리 자연에 맞춰 재해석되므로 관념적 공간이 되었다. 구곡은 자연에서 도를 체득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감천마을의 구감은 태극도의 진리를 체득하기 위한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모습으로 한국의 ‘산토리니’, 한국의 ‘마츄피츄’라고 명명하는 등 부산의 대표적 관광지가 되었다. ‘신’이라는 변하지 않은 진리는 사라지고‘물’이라는 변화하는 현실세계만 부각되는 부조화의 문화마을이 되었다.

 

 

 

 

 

 

 

 

 

 

이성진 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duruhana@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19>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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