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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미국 정착기 (2)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9. 12. 2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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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인]

좌충우돌 미국 정착기 (2)

 

 20년 전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하기까지의 삶의 이야기를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사는 ‘캐빈 리’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에 보내왔습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여러 개인적 상황 속에서 이민행을 결정했을 텐데, ‘캐빈 리’의 삶을 통해 실제 이민자의 삶이 어떠한지, 어떻게 난관들을 극복해갔는지를 독자들에게 들려주려 합니다. 이 글은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청각장애의 삶
 잡화 가게에서 두 달을 일하다, 가게 주인이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저는 다시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뭔가 일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원하는 직업은 구할 수가 없어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2001년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큰딸은 일을 나갔고 작은 딸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은 가운데, 혼자 거실에 앉아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이었습니다. 뾰족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영어 공부라도 할까하고 TV를 켰습니다. 화면엔 비행기가 큰 빌딩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빌딩은 곧 버섯구름 같은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습니다. ‘이게 무슨 장면일까?’ 궁금했지만, 아나운서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죠. 그래서 나름 추측해, 영화의 한 장면을 특별히 방영해 주나보다 생각했는데, 비슷한 장면이 다시 나왔습니다. 또 다른 비행기가 옆의 다른 빌딩을 덮치고 있었습니다. 영화 장면 치고는 너무 많이 방송해 주는 것이 이상해, 다른 채널로 돌려봤지만 이상하게 그곳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달리 알아볼 방법이 없어 그냥 텔레비전만 보고 있는데, 밖이 시끌벅적했습니다. 둘째 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아빠 뉴욕 쌍둥이 빌딩이 비행기에 공격당했대!”하고 소리쳤습니다. 그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죠. 둘째 딸애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워서인지 텔레비전을 보며 사건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아르바이트에 간다며 옷을 갈아입고 “아빠, 빠이~”하고 횡 하니 나가버렸습니다. 귀가 있어도 영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저는 마치 청각장애인 같았죠. 
 ‘이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더욱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한국의 학교후배가 인조 보석류를 수출하는데, 나더러 귀걸이를 팔아보라고 권했습니다. 귀걸이는 부피가 작아 보관이나 운반도 간단하고 판매도 쉬울 듯 해 귀가 솔깃해졌죠. 물건을 팔려면 사업자등록을 하기 위해 세무서에서 개인세금납세번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보통 미국사람들은 소셜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개인세금납세번호지만, 저는 소셜번호가 없으니 개인세금납세번호를 받아야 사업자 등록을 낼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개인세금납세번호를 받는 사람들은 거의 99%가 불법체류자들이라는 겁니다. 이민국에서 개인세금납세번호를 받은 사람들만 추적하면 불법 체류자 색출이 엄청 쉬울 텐데, 세무서와 이민국 간에 이 내용이 전혀 공유되지 않습니다. 아마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는 돈을 최대한 양성화시키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여간 재미있는 미국입니다. 한국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겠죠. 인조보석 귀걸이라 가격은 한 쌍 당 대략 3~4불 정도입니다. 흑인동네에서 잘 팔릴 것 같아, 집에서 컴퓨터로 명함과 송장을 만들어 007가방에 몇 가지 품목을 넣어 흑인 밀집지역의 보석가게를 찾아갔습니다. 샘플을 보여주니 다들 혹합니다. 현금 박치기로 한 쌍 당 7~8불에 팔았습니다. 잘 팔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은 남는데 그 남는 돈이 전부 재고비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당장에 생활비가 급한데 말입니다. 

 플러밍(plumbing, 배관일)에 도전하다
 저녁 8시 30분인데도 밖이 환합니다. ‘썸머 타임’에다가 해가 제일 긴 6월 초인지라, 8시 50분쯤 해가 지는 것 같았습니다.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귀걸이 장사는 도움이 안 되는 가운데, 아내에게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여직원의 아빠가 60세인데, 플러밍(배관일)이라는 것을 배워서 한 달에 만 불씩이나 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불이면 정말 꿈의 숫자였습니다. 동네 영어신문의 구인, 구직난을 보니 플러머 모집광고가 엄청 많았습니다. “야~ 이거다”싶어 가슴이 쿵쿵 뛰었죠. 신문에 난 광고 중 맨 윗줄에 있는 회사에 용기를 내어 전화를 했습니다. 상대방이 영어로 마구 떠드는데, 열심히 들어보니 플러밍 경력이 있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No”라고 했더니 “I don’t need.”하며 딱 끊어버립니다. 20개 정도 되는 회사를 하나씩 연락해 봤지만 결국 경력이었습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는데 누군가가 산호세 시티 칼리지(San Jose city collage)에 플러밍 학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숨에 학교로 달려가, 물어물어 교학과 같은 데를 찾아가니 나이가 지긋하게 든 여자 분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때가 마침 2001년 2월이라 3월부터 강의가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저는 H1 비자를 소유하고 있어 거주자 학비를 적용해 준다고 하지 뭡니까.(거주자 학비는 유학생 학비의 1/10 수준이라 거의 학비 부담이 없음) 다만 내가 외국에서 학교를 나왔으므로 학습 능력이 되는지 영어하고 수학시험은 봐야 한다고 하면서 시험일과 강의실 번호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험을 보러갔는데 수학은 초등학교 6학년쯤 수준이고, 영어는 중3 수준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물론 합격! 
 그렇게 해서 플러밍 학과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수업 과목을 플러밍과 전기, 두 개 과를 선택했는데, 공부하며 취직이 잘되는 쪽으로 선택하려고 나름 머리를 굴린 것입니다. 일주일에 2회씩, 저녁 5시부터 시작해 9시 경에 수업이 끝났습니다. 처음 강의가 시작되던 날, 선생님이 자기를 소개 하고 수업계획을 자세히 적은 프린트를 한 장씩 나누어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눈치로 알아 듣겠는데, 그 다음부터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어떤 책으로 공부 할 것인지 설명하는 것 같아, 얼른 그 책 이름을 적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전부 600불의 거금을 주고 책을 샀습니다. 먹고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에 열심히 예습해 갔지만, 워낙 생소한 과목에다 영어로 되어 있으니 무슨 소린지 도무지 몰랐습니다. 그냥 문장을 외우다시피 하니, 선생님의 강의가 조금씩 귀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집에 와서 배운 것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봐야 조금 이해가 가더군요. 전기 과목은 고등학교시절 실과 시간에 배운 게 있어서 조금 나았지만, 플러밍은 예습, 복습을 죽어라 해도 영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학기만 더 배우면 확실히 달라질 것 같은데, 계속 공부만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팍팍했습니다. 결국 한학기만 마치고 플러밍 회사에 또 전화를 했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답변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닌 것은 경력으로 봐 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말짱 도루묵이다 싶었는데, 마침 한국 사람이 경영하는 플러밍 회사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매번 땅만 파라지 뭡니까? 플러밍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았죠. 그래도 가끔 플러밍 일에 보조할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보고 물으며, 더 배우려고 발광을 했습니다. 이럭저럭 6개월이 지나면서 플러밍이 뭔지 약간의 눈치를 챘지만, 이 회사에서는 급료가 문제였습니다. 일주일에 3~4번 출근하고 하루에 100불정도 받으니 한 달 일해도 고작 1200~1500불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 한국회사에서 어떤 플러밍 회사가 좋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다시 회사를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캐빈 리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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