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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인심

2019년 11월호(12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 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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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문화 탐방기 5]

동네 인심

‘인천 중구 제물량로 335번길 50-2’ 영화〈고양이를 부탁해〉주인공 지영이의 집 주소입니다. 영화에서 지영이의 집으로 들어가는 겨우 한 사람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은 자동차가 드나들 수 있는 3미터 폭의 소방도로가 되었습니다. 2012년 가을 ‘골목을 보라’ 인천 2차 답사 때 안내자 박현주 선생님(당시 인천 화도진 도서관 과장)이 정재은 감독에게 이 집을 영화 속 지영이의 집 촬영장소로 추천했다고 합니다.
 
촬영당시 나왔던 인천부영철도도 철거되어 사라졌고, 굴막도 재정비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어 촬영장소를 찾기 힘듭니다. 그래도 만석고가도로가 있어서 촬영지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박현주 선생님이 지영이 집 촬영지를 정확하게 알려줬습니다. 

영화〈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지영이의 집만 붕괴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원래 지영이의 집은 이 곳 골목에 지은 10평 내외의 소형집이기 때문에 옆집 벽을 이용해 집을 짓는 맞벽집입니다. 그래서 한 집이 무너지면 옆집도 도미노 식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의지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 동네 주민들에게 영화처럼 집이 무너질 정도인데 그냥 놔둘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공사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웃 판잣집이 무너질 정도로 무관심하게 방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영화에서 골목 이웃들은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그저 몰려와 걱정만 할 뿐이고 경찰과 소방관이 무너진 집을 처리합니다. 냉정한 이웃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그 장면을 본 동네주민들은 정작 강한 불만을 즉각 나타내었다고 합니다. 비록 가난해 비좁은 골목집에 살지만 그에 비해 내가 사는 골목집, 그리고 집이 속한 골목 동네에 대한 애착은 매우 강하다고 말합니다. 힘든 시절을 오랜 시간동안 함께 보냈기에 이웃 간의 유대감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배려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고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골목 동네 인심’이라고 합니다. 

투기 대상인 동네와는 사뭇 다른 동네 인심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름 한 더위에 집 문을 열고 선풍기를 켜놓고 있어도 더웠습니다. 그리고 부엌에서 밥을 하면 열기가 집 안팎으로 들 퍼져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골목 구석에는 공동 부엌이 있어 아궁이에 불을 지펴 솥에서는 물이 끓도록 했습니다. 항상 사용할 수 있도록 말이죠. 한 집에서 일당을 풍성하게 받은 날은 닭을 삶아 나눠 먹고, 더우면 국수를 삶아 시원한 냉국에, 또 쉬는 날 남자 어른들은 개장국을 끓여 먹는 등 나눔과 베품의 동네인심이 살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2년 전 겨울, 건축가 백문기 선생님과 함께 집을 건축할 땅을 찾아 다녔는데, 지영이 집터를 보더니 입지가 아주 좋다고 강력 추천했습니다. 집터 앞으로 옆으로도 길이 나 있어 목이 좋고 전망도 아주 좋은 명당이라고 하면서요. 저녁에 아내와 함께 가 보았습니다. 마침 만석고가도로 넘어 북성포구 일대의 일몰과 가로등이 켜지는 밤에 다가오는 정취는 거의 몽환적입니다. 

백문기 선생님과는 다음과 같은 5가지 설계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인천을 담고 있는 땅에 짓는다. 
둘째, 건축주의 학문과 심성을 품은 집을 짓는다. 
셋째, 주변 경관을 존중하면서 겸손하고 소박한 집을 짓는다. 
넷째, 인천을 상징하는 소재를 사용하고 일부 공간은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다섯째, 건축비가 최소 소요되는 집을 건축한다. 그리고 건축주는 자신이 짓고자 하는 집에 관한 철학과 꿈을 글로 써서 설계자가 이를 반영하도록 한다. 단시간 내에 설계하고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2~3년 충분한 의사소통을 한 후, 집을 짓는다. 

즉각 주변 부동산을 방문해 매입 타진을 했습니다. 부동산중개업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보통 집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40~50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만석동 일대 집들은 보통 10평~20평 이내이기 때문에 여러 채를 매입해야만 신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개인소유 땅도 있지만, 국유지나 시유지, 구유지가 혼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인천 중구 제물량로 335번길 50-2’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 옥지영의 골목집은 빈터로 남아 있습니다. 

골드헤이건은 그의 저서《공간혁명》에서 장소애(場所愛)가 많은 사람은 내가 사는 집 그리고 집이 속한 동네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장소에 사는 사람은 이웃 간의 유대감뿐만 아니라 이웃에 대한 배려를 가장 큰 미덕으로 삼습니다. 우리는 이 미덕을 동네인심이라고 합니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투기 대상 이전의 골목 동네를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서 동네의 생활 패턴, 동네인심을 살필 수 있습니다. 장소 위치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우리 세대는 집을 사서 가족이 한 곳에서 편하게 사는 것을 최고로 알고 살았습니다. 교통, 교육, 의료, 쇼핑 등 각종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는 곳에 집을 선택합니다. 경제적 여건, 사회적 위상 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감추거나 가릴 것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합니다. 이런 집들이 모여 동네를 이룹니다. 그렇지만 안정을 주고, 보호막이 되는 생활공동체는 없습니다. 그래서 동네인심은 사라집니다.

반면 제 부모 세대는 집을 짓고 가족이 한 곳에 정착해 생활하는 것을 최고로 알고 살았습니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위상 등이 이질적인 사람들보다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모여 살았고, 우리 집이나 옆집이나 사는 것은 거의 같았습니다. 감추거나 가릴 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집들이 모여 동네를 이룹니다. 그래서 안정을 주고, 보호막이 되는 생활공동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성진 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duruhana@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1>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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