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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디아파라과이에서 시작한 인생 2막

2020년 5월호(12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6. 3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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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디아 파라과이에서 시작한 인생 2막

 

 은퇴해서 코이카 자문단으로 출국하기까지
 “부엔 디아” “께딸” 파라과이에서 아침에 출근하면 서로 주고 받는 인사말입니다.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라는 아침 인사를 줄여서 “부엔 디아”라 하고, “께딸”은 “안녕?”정도의 의미입니다. 지구 반대편 남미의 내륙국이면서 남미의 심장이라고 일컫는 파라과이로 가게 된 것은 정말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습니다. 저는 2019년 2월 28일 초등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3~6월까지 가사 돕기, 국내외 여행, 독서, 텃밭 농사, 도봉산 산책 등을 하며 인생 2막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마치 한 줄기 강물에서 한없이 넓은 바다를 만나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받은 조언은 안정되고 익숙한 것에서 결별하여 자기를 찾는 모험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가 주관하는 제21기 자문단이었습니다. 마침 초등교육 전공자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파라과이이며 파견 기간은 1년이라는 것을 알고, 아내의 동의를 얻어 초등교육 자문단으로 신청했는데 작년 11월 6일 최종 합격되어 11월 25일~12월 6일 국내 교육을 받고 12월 18일 파라과이로 출국하였습니다.

 

 

 


 파라과이에서 일시귀국하기까지
 뉴욕과 상파울로를 경유하여 약 36시간만에 12월 19일 파라과이 아순시온공항에 도착하니 여기는 완전히 한여름 날씨였습니다.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이고, 시차도 정확히 12시간 차이가 났습니다. 크리스마스 다음날 교육부 초등교육국을 방문하여 제 협력파트너를 만나고 사무실도 둘러보았습니다. 12월 27일부터 31일까지 부서 직원과 인사하고, 1년간 월세로 주거지 계약을 마쳤습니다.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고, 한국 교민의 도움을 받아서 집을 구했습니다. 교육부까지 걸어서 15분 이내이고, 주변에 위험지역이 없으며, 마트가 가까이 있는 곳으로 정하고 나니 한결 안정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2020년 1월이 되었죠. 그런데 교육부 초등교육국 직원들은 대부분 1월 한 달 간 여름방학 휴가를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실에는 사무직원 1명과 당번으로 출근하는 직원 1명이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하루도 쉬지 않고 출근하여 파라과이 초등교육 현황 파악을 위해 스페인어로 된 교육부 조직법, 초등교육과정, 파라과이 교육 통계 등을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하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어느덧 2월이 되자 모든 직원이 출근했고, 저는 국장, 과장, 팀장과 회의를 하며 제가 할 일을 찾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자문관이 가면 그 나라에서 자문관에게 이러저러한 일을 하는데 자문을 해달라고 하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파라과이에서는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내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회의도 하자고 하지 않습니다. 만약 제가 소극적으로 그냥 기다리고만 있는다면 그러다가 1년을 마치고 올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별 수 있나요? 제가 현황 파악을 하고 문제점을 찾아 제시하고 회의를 하자고 독촉할 수밖에요. 이런 우여곡절을 통해 저는 초등교육국에서 2년짜리 프로그램으로 추진하고 있는 AHORA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AHORA’는 스페인어로 ‘Acciones y Herramientas ORientadas a los Aprendizajes’인데, 영어로 번역하면 ‘Actions and Tools Ordered to Learning’, 즉 ‘학습을 향한 행동과 도구’로 교실에서 학생의 학습을 촉진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입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는 공립초등학생의 국어(스페인어)와 수학 성적이 낮은 편이라 이를 개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죠.


 실제 학교 현장을 살펴보기 위해 3월 2일부터 6일까지 ‘알토 파라과이’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알토 파라과이는 파라과이 북쪽 끝에 있는 지역으로 아순시온에서 약 700km 떨어져 있습니다. 차로 10시간 넘게 걸리는데 가는 동안 산이나 언덕은 없고 오직 대평원에서 드문드문 풀을 뜯는 소나 말, 양들만 보였습니다. 이런 곳을 ‘차코’라고 하는데 여름에 섭씨 55도까지 올라가고 메말라서 사람이 살기 힘든 광야 같은 곳입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한 초등학교에서 약 30명의 교장, 교사들이 모여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정말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격려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으며, 학생들에게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보다 학교에 빠지지 않고 기본적인 학업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줘야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번 출장은 ‘과연 이런 현실에 처해 있는 그들에게 자문관으로서 어떤 조언을 할 것인지’ 스스로 자문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아순시온에 돌아와서 출장보고서와 자문 의견을 제출하고 2차 출장을 준비하던 중 3월 10일 마침내 파라과이에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코이카 사무실 지침에 따라 저는 3월 11일부터 재택근무를 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정부에서는 24시간 통행금지령까지 내려서 꼼짝 못하고 집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식료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는 것과 약국 및 은행에 가는 것은 허용되었습니다. 아순시온 시민들은 차분하게 정부 지침에 따랐으며 시내는 평온한 가운데 정적만 흘렀습니다. 저는 코이카 사무실에서 매일 보내주는 행동 지침에 따라 일시귀국할 준비를 했고 3월 26일 저를 포함한 60여명의 모든 코이카 봉사단원들이 일시귀국을 위해 아순시온 공항에서 출국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국과 다른 파라과이 초등 교육
 한국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1학년에 입학해서 6학년 졸업할 때까지 매학년도마다 한 학년씩 올라갑니다. 파라과이 초등학교는 이와 좀 다릅니다. 그것은 ‘주기’(Ciclo, 영어로는 Cycle)라는 제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주기(1°Ciclo)는 1~3학년, 둘째 주기(2°Ciclo)는 4~6학년입니다. 참고로 셋째 주기(3°Ciclo)는 한국의 중학교 과정에 해당합니다. 


 그럼 왜 이런 제도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진급(Promoción)’ 제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제도 역시 한국의 초등학교에는 없는 것이죠. ‘진급’이란 첫째 주기에서 둘째 주기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파라과이에서 2014년에 제정한 규정 제1525호:조기교육과 기본학교교육 수준의 학생 진급 기준 설정에 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3학년 또는 6학년 학생이 일정한 기준의 성적에 도달하지 못하면 진급할 수 없습니다. 낙제가 되는 것이죠. 


 이런 학생을 구제하기 위해 보충학습, 보완 평가 등의 장치가 있지만,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 낙제생이 2.86%에 이릅니다. 걔중에는 아예 학교에서 탈락하는(일종의 자퇴) 학생들도 있는데 역시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2016년에 12%에 달합니다. 말하자면 제대로 졸업하는 학생 비율이 88%인 셈입니다. 그것도 지역차가 있어서 도시 학교는 91%, 시골 학교는 84%의 졸업률을 나타냅니다.
언젠가 모든 학생이 진급을 해서 더 이상 진급제도가 필요없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 어서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래봅니다.


 재입국을 준비하며
 기왕에 한국에 왔으니 재입국하기 전까지 자문에 필요한 자료를 부지런히 준비하려고 합니다. 스페인어도 꾸준히 연마해야겠지요. 그런데 솔직히 너무 잘 잊어버려서 언어 배우기가 만만치 않군요. 잠시 한국에서 그리운 가족과 재회하고, 자문에 실제로 필요한 자료들을 콕 집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어서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파라과이가 안정되어 재입국하게 되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자문 활동을 펼치고 자문 활동을 마친 후에는 귀로에 잠시나마 남미 여행을 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챠오!”(안녕)

 

서울시 강북구 허인수
코이카 21기 자문단, 파라과이 파견

blog.daum.net/170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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