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공동소송플랫폼 화난사람들(www.angrypeople.co.kr)에서 홍보/마케팅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어떻게 화난사람들이라는 사회적 기업 성격의 스타트업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물으세요. 조금은 남달랐던 저의 행보 중, 이 글의 제목이 된 스웨덴에서의 시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행복 리포트 상위권 스웨덴으로
저는 한국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영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졸업 후 작은 영화홍보대행사 두 곳을 거쳐 현재의 CJ ENM에서 한국 영화를 해외에 수출하는 팀에서 일을 했습니다. 네, 맞아요. 이번에 아카데미 시상식을 들썩이게 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팀을 작년 깐느 국제 영화제에서부터 의전했던 팀이 제가 예전에 일하던 팀입니다. 저는 회사 생활 5년차에 접어들어, 돌연 회사를 관두고 스웨덴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서른의 나이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스웨덴으로 석사를 따러 간다니, 부모님께서 엄청 걱정하셨죠. 스웨덴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복합적이었습니다.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 아시나요? 제가 유학을 준비하던 때에 마침 그 소설이 나와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저 역시 당시 한국이 너무 힘들어서 스웨덴이라는 다른 곳에서 잠시 살아보고 싶었던 마음도 절실했습니다. 스웨덴의 사회복지정책도 궁금했지만, 정말 세계 행복 리포트(World Happiness Report)에서 말하는 것처럼 늘 10위권에 들 정도로 행복한 나라인지도 궁금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사회복지 정책 공부를 하면서, 직접 살아보기까지 한다면 어느 정도 나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하면서도 무모한 호기심의 힘으로 국제 석사프로그램(전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는 석사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예테보리 대학교(University of Gothenburg)의 사회복지 국제 석사프로그램 중 하나인 사회복지와 인권(Social Welfare and Human Rights) 과정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북유럽의 겨울은 일조시간이 매우 짧은데, 제가 사는 예테보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겨울에는 오후 3시만 되면 칠흑처럼 깜깜해졌습니다. 때문에 스웨덴에서는 겨울철이면 모두들 비타민 D를 철저하게 챙겨먹으며 계절성 우울증을 예방하고, 너무 쳐져 있지 않기 위해 커피를 하루에 대여섯 잔 마시거나, 에너지 음료를 자주 마시는 사람들도 흔합니다. 이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여기서 논의하지 않을게요.
셈라는 그냥 셈라일 때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스웨덴에 있는 동안 싫어서 떠난 한국의 그리운 점들을 마음속에 하나하나 떠올리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점점 프랑스, 일본 등 디저트 강국에서 파티쉐가 되는 과정을 밟은 사람들이 오픈한 멋진 베이커리와 카페들이 많아지고 맛볼 수 있는 디저트들도 다양해진 편이죠. 반면 스웨덴 사람들은 굳이 지금의 카페 디저트 메뉴를 바꾸거나 추가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더라고요.
일례로 제가 스웨덴 디저트 중에 좋아하는 셈라(Semla)라는 간식이 있어요. 서울에도 있는 Fika라는 카페에서는 셈라가 1년내내 파는 간식이지만, 스웨덴에서는 Fettisdagen(Fat Tuesday라고 불리며, 크리스천 전통의 ‘재의 수요일’과 ‘참회의 월요일’ 사이에 위치, 부활전 전 7번째 화요일)즈음에 베이커리와 슈퍼마켓에서 판매됩니다.
전 가끔 셈라가 한국에서 마카롱만큼 유명한 디저트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셈라의 예가 한국과 스웨덴의 차이 중 하나를 보여준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웨덴에서는 매년 셈라 만들기 경연대회가 열리는데, 여기서 심사위원들이 경연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얼마나 더 맛있고 특출난 셈라가 나오는 게 아니라고 하네요. 오히려 가장 전통적인 방법에 충실한 셈라를 뽑는 데에 목표가 있다고 합니다. 저는 스웨덴 친구들에게 셈라 경연대회 이야기를 듣고는 대답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야. 한국인이 셈라를 좋아했다면, 이미 초코 셈라, 생딸기를 넣은 셈라, 녹차 셈라 등등 다양한 맛의 셈라가 나왔을 텐데…”라고요. 스웨덴 태생이거나, 스웨덴에 좀 오래 살아본 이민 2세대 친구들은 한결같이 제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습니다. “셈라는 그냥 셈라일 때 가장 맛있는 거야.”
스웨덴의 딸기 케이크 구하는 법
유독 추웠던 2016년 겨울, 정말 눈물나게 생크림 딸기 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예테보리 시내의 많은 카페를 갔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스웨덴 전통 디저트인 셈라도 1년내내 찾아보기 힘든 스웨덴 카페에서 제가 먹고 싶었던 생크림 딸기 케이크를 찾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스웨덴 친구에게 했더니, “아닌데, 딸기 생크림 케이크 우리도 흔히 먹어. 내가 그걸 어디서 먹었더라?”하고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났습니다. 저는 기대에 차서 친구에게 물었죠. “혹시 생각났어? 어디서 먹었는지?”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아… 그게… 내가 그 케이크를 최근에 먹은 건 친구네 집에서였어. 친구 어머니가 구워주었더라고.” 아차 싶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베이킹을 하는 것이 익숙한 스웨덴에서 결국 딸기 생크림 케이크는 직접 구워 먹어야 하는 것이었구나 싶었죠. 돈보다는 시간이 풍족한 스웨덴 사람들다운 딸기 쇼트케이크를 구하는 방법이구나 싶었습니다.
이케아의 나라 스웨덴
한국에 돌아온 다음 가끔 생각합니다. 스웨덴 생활 어땠냐고 물어보면, 대뜸 저는 ‘심심하고 지루한 거 얼마나 견딜 수 있으세요?’ 라고 질문한 상대방에게 되묻곤 했거든요. 사실 다이나믹하고 늘 변화무쌍하고 재미있는 곳은 단연 한국입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한국에서도 스웨덴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시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 개인에 대한 존중-도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스웨덴에서의 저와 한국에서의 저를 비교한다면 단연 한국에서는 스웨덴에서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요리에 쓴다는 점이겠지요? 혹시 이케아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소비자들은 자신이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을 완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믿게 되는 일종의 인지적 편견인데요. 무엇이든 본인의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스웨덴은 가히 이케아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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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팀장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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