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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4)

2020년 5월호(127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7. 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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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문화의 황혼에서 새 문화의 여명으로 33]

 

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4)

 

2020년 초, 전세계를 강타한 우한폐렴 사태는 완전히 새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방역방식이 결과적으로 가장 적합하고 최고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가운데 말입니다. 초기에 많은 희생을 내었던 유럽, 특히 독일이 한국식을 아주 강력하게 받아들임으로 진정세를 보이며 약간 숨을 돌리고 있습니다. 또 미국이 90만 명의 확진자와 5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여 최대의 피해국이 되었으며, 일본의 도쿄는 제2의 뉴욕이 되어 곧 의료붕괴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조용했던 아프리카와 중남미에서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 예상됩니다. 이 가운데 매일 확진자 한 자리수, 사망자 0명 증가를 기록한 한국은 선방하고 있다고 세계에서 칭찬을 받으며 각국에서 문의가 쇄도하여 한국산 진단키트, 진단봉, 마스크 등에 대한 수출요구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겨진 과제와 우리가 만날 도전은 만만치 않고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첫째, 코로나는 지금까지도 벌써 4천 가지 이상의 RNA변종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이번 가을과 겨울이 되면 엄청나게 많은 변종들로 강력하게 무장하고 다시 침투할 것이 예상됩니다. 그동안 애써서 선방했던 것이 한방에 무너질 수 있기에 강력하고 철저하게 대비해야 합니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경제,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정치문제입니다. 코로나 이후의 경제살리기에 한반도, 한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선방할 것으로 외부의 지표들은 예상하긴 합니다. 그럼에도 도무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정권과 지도자들의 이상한 정체성에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공산주의의 실체를 삶으로 체험한 사람이 4·15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태구민’입니다. 그에 비해 대부분 공산주의를 책으로만 이론적으로 학습하며 공상적으로 신봉하는 가운데 젊은 시절을 데모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실제 사장들이 얼마나 어렵게 돈을 버는지를 결코 모르는 가운데, 단지 전 정권의 부정과 무기력을 기회로 순식간에 세력을 장악한 이번 정권의 사람들입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이들이 정권을 장악한 후에 창조적인 무언가를 생산해낸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단지 그 이전에 국민들이 피땀 흘려 만든 자산들에 세금을 과도하게 때려서 얻어낸 것을 사용할 뿐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익숙한 공산주의 특유의 선전선동전을 따라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상적 경제학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해괴한 정책으로 국가경제를 수렁에 빠트렸습니다. 그래서 이 정권이 시작한 지 3년이 채 되기 전인 2020년 1월 초에도 각 영역에서 IMF 때보다 더 힘들어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 터져 나오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방역 한 번 잘했다고, 마치 이 정권이 모든 것을 잘한 줄로 착각하며 세계의 모든 칭찬을 혼자 다 받는 것 같습니다. 또 이번 국회의원선거에도 국민들이 여당을 찍은 이유는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야당이 워낙 못하고 구태의연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여론조사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것을 솔직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겸손한 집단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 경영이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는 집단이요, 코로나 이전에도 경제를 망쳐놓은 현정권이 이후에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경제를 살리는데 실패할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셋째, 더 큰 불길한 움직임이 남한의 한계를 넘어선 두 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건강이상설이 매우 확실하게 보인다는 것, 그리고 중국공산당을 향하여 전세계가 나서서 성토하고 소송을 제기하여 배상금을 받아내려고 한다는 겁니다. 중국공산당은 서구유럽문화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합니다. 즉 그들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절대 섞일 수 없는 것을 동시에 포괄하려는 말도 안 되는 어리석은 실험을 하는 무지막지한 집단일 뿐입니다. 좌파이든, 우파나-이든, 정치계는 거의 대부분 말종들이 모인 집단에 불과하지만, 중국, 남한, 베트남의 좌파가 더 어리석고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방금 말씀드린 말도 되지 않는 정치적 이상을 무기 삼아 엄청난 물질욕과 항구적 지배욕을 누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실질적 위기사태에 대해 우리는 정말 잘 대응할 수 있을까요? 또 좁게는 중국에 대한 소송에 우리도 나서야 할까요? 넓게는 전세계가 중국을 왕따 시키는 가운데 아시아의 정세는 어떻게 변화될 것이고 거기에 우리는 잘 대비되었을까요? 살벌한 소련 공산주의 시절에도 국경선을 넓게 마주하고 있었던 핀란드가, 독립을 잃었던 주위의 발트해 3국에 비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놀라운 비결을 우리는 배울 수 있을까요? 1) 
넷째, 우한폐렴 이후 전세계의 문화(명)는 완전히 다르게 변해버릴 것이지만, 현재로는 어떻게 될지 그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아주 오래된 이스라엘의 예언자 이사야는 매우 특이한 예언을 합니다. 그것은 한 나라가 저주받아 심판받은 항목 가운데 제일 먼저 지도자(력)이 붕괴될 것이라고 선포한 겁니다(이사야서 3:1-12). 즉 어린아이들이 지도자가 될 것이며, 옷(인격 아닌 껍질, 학력)을 잘 입었으니 지도자로 추대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려고 좋은 옷까지 벗어버리고 도망간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도무지 뚫고 나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하고 복잡한 도전은 한반도, 한민족이 오히려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된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이제 우리는 할 때가 되었습니다. 2020년 2월호부터 계속 ‘21세기초, 극도로 놀랍고 환상적 기회를 얻은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매우 역설적이고 도전적 주제를 다루어오고 있습니다. 다음은 이미 다룬 내용입니다 : 
  A. 한반도 한민족에게 매우 유리한 네 가지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1) 유럽문화(명)의 위기의 시대 (문명(화)사적 관점) 
    2) 동아시아의 패권시대 (정치, 국제관계의 관점 2020년 2월호)
    3) 포스트-세속주의 시대Post-secularism era(종교, 철학, 사상의 관점)
    4) 80억의 지구인에게 드디어 도래한 우주시대(2020년 3월호)
 B. 한반도 한민족의 약점이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1)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으로 둘러싸임 → ‘아사비아 이론’을 따라서 잘 준비
       하고 훈련하면 모든 위협을 극복하고 힘의 중심이 될 수 있음
    2) 오랫동안 공격당하고 지배당한 역사적 경험 → 고통받는 자를 돕고 
       섬기는 능력으로 전환(2020년 4월호)

  이번 2020년 5월호에 다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3) 지정학적 이중도전(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세계적 힘의 충돌중심) →  
      새로운 세계문화(명)의 창조와 우주로 그 힘을 돌리기   
   4) 적은 인구수 → 일당 삼백 이상의 정신적, 종교적, 실질적 능력을 가진 
       개개인 되기 
 C. 우리만 가진 유일한 장점들을 살릴 때다(2020년 6월호)
 3) 지정학적 이중도전(남북으로 분단된 한반도, 세계적 힘의 충돌중심)    
    → 새로운 세계문화(명)의 창조와 우주로 그 힘을 돌리기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이중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2)
첫째, 남북 분단이 대륙세력도 해양세력도 함부로 먹어버릴 수 없는 사이즈의 한반도 자체 안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은 우선 한반도의 독립을 우리가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라 소련과 미국이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고 압박하여 수동적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더 멀리 과거로 나아가 조선왕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세계역사와 비교해 볼 때 조선왕조는 정상적이라면 13대로 이어진 왕권이 250년 정도 지속되다가 바뀌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고 두 배나 길어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완전히 다른 정권이 들어섰어야 하는 겁니다. 정권이 지나치게 길어질 경우에 정치적 타락과 정치에 대한 피로감, 새롭게 변혁할 능력의 부족 등으로 그 나라 전체가 고통을 겪습니다. 더더구나 조선은 유교라는 상대종교를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로 섬겼기 때문에, 문화를 전수해준 일본에게 우리가 도리어 속국이 되는, 정말 치욕스러운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조선시대 동안 중국과 일본은 두 번 정도의 왕권, 정권교체가 일어난 것에 비하면, 조선 오백년 역사는 지나친 것이었고, 여기서 모든 정치적 난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과거 역사들을 통해 우리의 소원과는 관계없이 수동적으로 남북으로 나누어져서 우리는 세계가 주목하는 대결의 긴장 속에 살아온 겁니다. 1989년 이후로 서구에서는 실패해 무너진 공산주의가 특이하게도 동양 4개국에서는 무너지지 않고 건재하고 있습니다: 베트남공산주의, 중국의 황제공산주의, 북한의 왕조공산주의, 남한의 사회주의. 이들은 두 가지 착각 속에 살면서 그 백성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무리들입니다. 첫째는 서구에서는 실패한 것으로 확실히 폐기된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절대 버리지 않고 거기에 동양의 전통적인 군주적 정체를 섞어서 써도 된다는 착각입니다. 둘째는 베트남, 중국, 남한의 좌파들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섞어서 쓸 수 있다고 더 크게 착각한 겁니다. 차라리 북한의 왕조공산주의가 이 점에서는 공산주의 순수한 점을 유지하였기에 나았을 수도 있다고 역설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둘째,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패권 이동의 중심지에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놓였다는 겁니다. 지난 5백여 년 동안 베네치아 → 네덜란드 → 영국 → 미국으로 패권이 자연스럽게 혹은 긴장가운데 서진하는 패턴을 가지며 이동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21세기가 되어서 패권이 다시 서진하여 도착할 곳은 동양이고, 이때까지의 서양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동양세계에게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패권의 이동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처한 더 큰 맥락인 서로 ‘상이한 문화(명)가 충돌하느냐 아니면 승화, 발전하느냐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럴 때에 서양문화(명)와 그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혹은 동양문화(명)의 체제로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 것처럼 보기 쉽습니다. 즉 점점 세속화되고 물질화되어가는 삭막한 서양문화(명)냐, 아니면 불교, 유교, 도교와 같은 상대종교를 바탕으로 하는 정신문화(명)를 가지지만, 그것이 물질문명과 어떤 연결점도 찾지 못하는 이원론적 동양문화(명)를 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닙니다. 또 이 둘을 잘 종합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관점 또한 매우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사실 이 두 문화(명)형태는 물과 기름과 같아서 결코 섞일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티브잡스와 같은 서양사람들이 선이나 요가를 하며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 혁신적인 경영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선의 세계에 들어가서 평정을 얻는 것은 좋지만, 격렬한 세계에 다시 뛰어들어 그 격렬함을 끌어올리기가 너무 힘들고 두 세계의 괴리를 뛰어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실험적 보고까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우리 주위의 두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이런 문제를 처리하는 데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 앞서 일본이 ‘화혼양재’의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지난 150여년 동안 열심히 배운 서구는 그 정신문화(명)는 쏙 빼버린 물질문화(명) 위주였습니다. 일본문화(명)의 속은 여전히 오래되고 정체된 일본적인 것을 그대로 간직했기에 새로운 문화(명)를 창조하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와 그들(적어도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 자랑하는 것이 일본무장을 불허하는 헌법9조가 그 예입니다. 이 조항은 사실 천황제 유지에 대한 조건으로 정복군인 맥아더와의 교섭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형적인 외교적 성과물에 불과합니다.
중국 본토는 동양문화(명)를 버리고 철저히 서구의 물질주의 문명의 전형인 공산주의를 받아들였지만, 1989년 서구의 공산주의가 무너질 때 같이 무너질 절호의 기회를 놓친 불행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양 3국에 존재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 겸 자본주의’라는 기형적 체제의 전형을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공산당이 집단적으로 지배욕,성욕, 물질욕은 있는 대로 다 부리는 체제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동양에 존재했던 정신문화의 전통인 유교, 불교, 도교는 비록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세속적 물질적 욕망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초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조차 내던져 탐욕을 막을 길이 없이 타락하여, 가장 저주스러운 문화(명)를 만들었습니다. 그 실제적 결과로 중국은 우한폐렴을 전세계적으로 퍼트릴 뿐 아니라 끊임없이 사실을 속이는 공산주의의 특이한 전략을 계속 쓰는 가운데, 온 세상에서 ‘불가촉천민 pariah people’이 되었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첫째, 한반도, 한민족 내부에서 발생하는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먼저 남한에서 통일된 문화(명)를 만드는 겁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로 한국인들이 그야말로 매우 스마트해졌습니다. 여당에 투표한 사람들 중에서 70% 이상이, 현정권이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밀어붙였던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정책’을 반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반도, 한민족이 경직된(좌파적 혹은 우파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서, 핀란드와 같이 매우 실용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능력이 국민 전체에서 생긴다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이지만, 부끄럽고 서글프고 부정적이지만 매우 놀랄만한 정치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두 사람이 국민의 요구에 의해서 하야했으며, 한 사람은 망명했고 그 가운데 죽었으며, 한 사람은 저격당했으며, 한 사람은 자살했으며, 두 사람은 감옥에 간 후에 지금도 끊임없이 벌금이 추징되고, 다른 두 사람은 지금도 감옥에 있습니다. 즉 한반도, 한민족은 자신이 선택한 그 어떤 대통령이라도 잘못을 저지른다면 퇴임 이후에 이렇게 처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특히 전제와 독재가 매우 흔한 동양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사례입니다.
이어서 이제는 그동안 쌓았던 이런 놀라운 능력을 김정은의 유고와 같은 상황 속에서 북한과의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 발휘할 때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모든 민족이 더불어 일구었던 자본을 독식하는 경향을 가진 우파, 혹은 끝없이 편을 갈라서 서로 싸우게 만드는 전형적인 공산주의적 전략을 쓰는 무능한 좌파, 모두를 다시는 정치권에서 자리할 수 없도록 퇴출할 때가 되었습니다. 즉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주의 중에 하나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의 거대한 가족적 민족이라는 상대적 민족주의의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절대적 민족주의’혹은 ‘민족지상주의’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일본이나 독일에서 신물나게 겪었습니다. 이것 대신에 각 민족은 각 지역에서 한 가족으로 살 수 있는 절대적 권리를 가진다는 상대적 민족주의의 길을 우리가 가장 먼저 열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상대적 민족주의에 방해되는 것이 바로 좌파나 사회주의입니다. 좌파가 가는 곳에서는 언제든지 싸움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패가르기가 이들의 전형적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라도 패를 갈라서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이 이들의 전형적 역사입니다. 좌파의 주도하에 발생한 노동조합은 그 자체로 패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만약에 기업 속에서 사장이 신속한 결정을 할 권리를 가지지만 동시에 직원을 정말 자신의 가족 이상으로 챙긴다면, 노동조합이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문제는 체재와 시스템이 아니라, 같이 사는 사장과 사원이라는 인간 자체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상대적 민족주의가 자리 잡으려면 모든 민족이 가족과 같이 여겨져야 하는데, 지금 오천만의 한민족은 이것을 연습할 정말 좋은 사이즈가 아닌가요?   

둘째, 한민족, 한반도 외부의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까요? 
즉 패권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이동하는 문제와 함께 더 크게는 서양문화(명)와 동양문화(명)의 투쟁, 종합이 아닌 새로운 제3의 문화(명)를 창조하는 도전 말입니다. 미국은 뿌리 없는 이민자들의 나라입니다. 그렇기에 개개인의 정신적 능력이 약할 수밖에 없으며, 유럽문화(명)의 정신적 차원이 매우 약하게 전수되었고, 또 미국인의 정체성 자체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우한폐렴 사태를 통해 초강대국 미국이 얼마나 우왕좌왕하며 허망하게 쓰러질 수도 있는 나라인지를 놀라는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국이 서쪽으로 흘러서 동양으로 옮겨지는 패권을 막으려고 해도, 이런 이유 때문에 잘되지 않을 것입니다. 더더구나 패권의 이동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명)의 창조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에서 미국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것 같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중국공산당도, 일본도 심지어 대만도 그 역할을 할 것 같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다음의 두 가지 대안은 폐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1) 동양문화(명)와 서양문화(명)의 단순한 종합이나, 2) 동양문화(명)의 시대를 새롭게 열 것이라는 헛된 이데올로기적 주장을 하는 것 말입니다.

이제 두 문화(명) 모두 그 제한성, 상대성 때문에 뒷전으로 물러나게 하면서, 동시에 제3의 문화(명)을 형성할 책임이 한반도, 한민족에게 주어졌습니다. 이 [서양문화(명)의 황혼과 새문화(명)의 여명에서]라는 시리즈에서 계속 차근차근히 말씀드려온 바와 같습니다. 먼저 세계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동쪽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서서히 절대신을 없애버리는 과정을 동양인들은 밟아왔습니다 : 다신교(메소포타미아) → 만신교(인도서부) → 인간이 신이 된다(불교, 인도동부) → 신이 불필요한 인간만이 있는 세상과 그 종교인 유교와 도교(중국). 이제 그 과정을 거꾸로 역추적하여 세상의 배꼽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또 정반대로 세상의 배꼽에서 서쪽으로 이동해 간 인류는 그리스에서 로마로 이어지면서 또 다른 차원의 세속화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배꼽에서는 종교에 있어서 혁명적이고 폭발적 변화가 일어나서 전혀 새로운 문화(명)를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족, 혈통, 문화, 언어를 초월하여 온 세상이 하나의 거대한 정신적, 영적 실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그렇지만 서방으로 진로를 잡은 이 길과 운동이 라틴민족 속에서 로마교와 개신교, 그리고 슬라브족 속에서의 동방교로 제한되면서, 모두 종교와 세속(물질)의 이원론과 그 결과로서의 위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5백여년의 서구유럽문화(명)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물질주의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한반도, 한민족은 세계가 정말 하나가 되고, 각 민족이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안정적으로 살며, 경쟁적으로 우주시대를 개척할 제3의 문화(명)를 일으키기를 원한다면 이제 이 길을 바로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즉
  1) 물질과 종교의 이원론과 위선을 극복하며,
  2) 물질과 세상을 다스리지만 물질과 세상을 초월하며,
  3) 이제 80억 인구의 총역량을 모아서 드넓은 우주로 퍼져나갈 능력을
      폭발적으로 배양할 문화(명)를 여는 길 말입니다.


1) J.Diamond, Upheaval, 2019, pp.57-99. 2차대전 전에 소련이 독일과의 일전을 준비하면서 발트해 3국과 핀란드의 영토를 할양할 것을 요구했을 때입니다. 그런데 핀란드 공산당은 이념을 초월해서 자국의 다른 우파정당과 연합하여 소련군과 싸웠던 놀라운 기록이 있습니다. 남한 좌파는 이럴 수 있을까요? 과거 북한에 가서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던 남한 노동당 박헌영의 행적을 보니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또 스탈린은 2차대전 이후에 왜 핀란드를 병합해서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지 않느냐는 주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 “나에게 (서구와 소련에 매우 유연하고 절충주의적 정책을 잘 취하는 핀란드 대통령인) 파사키비가 있는데, 왜 핀란드 공산당이 필요하지?”(When I have Paasikivi, why would I need the Finnish Communist Party? p.86) 우리는 지난 70여 년 동안 이런 유연하고 절충주의적 정책을 취할 정치적 전통과 사람을 길러낼 역량을 쌓았을까요? 만약 없다면 더욱더 솔직히 시인하며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2) Tim Marshall, Prisoners of Geography, 2016, “Korea and Japan” pp.207-227.

 

 

행복한 동네문화 만들기 운동장(長) 송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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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7>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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