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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내려오는 따뜻한 보금자리 양평 ‘신망원’ 망원지킴이 박명희 원장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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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회복지법인 신망원 이야기]

3대째 내려오는 따뜻한 보금자리 
양평 ‘신망원’ 망원지킴이 박명희 원장

 

5월 중순, 날씨가 유리알처럼 청명하고, 신선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봄 날씨의 끝판 왕을 말해주고 있는 양평의 조용한 커피숍에서 ‘신망원’의 3대 박명희 원장님을 만났습니다. 목소리부터 따뜻함이 묻어나더군요. 아이들의 마음 편한 쉼터가 되기까지 68년의 역사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신망원 외부 전경

 

3대째 신망원을 이어오기까지
1952년 박상진 목사님이 전쟁고아들을 모으며 처음 시작한 곳은 전남 나주로 신망원의 첫 출발이었습니다. 그 후, 1960년도부터는 서울 대방동에 위치했고, 1970년 목사님이 소천하면서 큰 아들인 박용택 장로님이 이어받으셨죠. 이분은 저희 친정아버지와 무척 가까운 친구 분이셨기에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영어를 잘하셨던 박용택 장로님께 중학교 시절 영어 스피치 대회 도움을 받기 위해 마침 같은 동네에 위치했던 신망원을 찾은 것이 저와는 첫 인연이었습니다. 그때 “명희는 사회복지를 하면 잘하겠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이 간호사, 영어교사를 꿈꾸던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죠. 88년도 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대통령임기 때 혐오시설 지방이전 명령을 내렸습니다. 올림픽을 하는데 고아원, 장애인, 노숙인 시설들은 다 지방으로 옮기라는 것이었죠. 박용택 장로님은 전국을 다 돌며 장소를 물색하다가 지금의 양평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이곳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50대 중반의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장로님과 가까웠던 친구 분들이 박용택 장로님의 첫째 아들과 저를 연결시키면서 급기야 만남을 주선해주셨습니다. 만난 지 2주 만에 제가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을 했지요.(웃음) 
결혼 후, 원장으로 계셨던 시어머니 밑에서 일을 배우다가 갑자기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2009년 9월 1일자로 제가 원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저에게 맡아줬으면 했을 때, 처음부터 바로 “예”라고 대답하지 못했어요. 도리어 건강이 악화된 시어머니께 “어머님! 이번 기회에 신망원을 정리하시고, 이젠 편히 사세요.”라고 했으니까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60년간 초대 원장님이셨던 시할아버지부터 존경하는 아버님, 어머님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이어온 일인지 알기에 쉽게 접으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이 미치더군요. 이 일을 하기위해선 책임감과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었으니까요. 고민 끝에 허락을 했던 것이죠.


신망원에 오게 되는 사연들
예전에는 부모가 입양기관을 찾아가 아이를 못 키우겠다, 입양을 보내 달라 하면 끝이었지만, 2012년 8월 ‘입양특례법’이 생긴 이후에는 출생신고를 해야 입양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013년 이후로는 베이비 박스 안에 유기된 아이들이 많이 들어옵니다. 원래 베이비 박스를 만드신 분은 신생아가 아무 곳에 방치되어 사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안전망으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베이비 박스를 너무 쉽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10대를 포함한 미혼모들, 가정불화,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아동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으면 큰 고민이나 죄책감 없이 베이비박스에 유기하고 있어 너무 안타깝죠. 박스 안에 신생아와 생년월일 정도라도 기록한 쪽지가 있으면 그나마 알 수 있지만 없는 경우도 많아, 이럴 때에는 그 아이에 관한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도 없습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60여명의 베이비 박스 아이들이 들어왔고, 너무나 감사하게 입양으로 잘 연계 되어 2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가정을 찾았고, 3~4명 정도는 원래 가정으로 돌아갔어요. 그 외에도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부모의 건강이 좋지 않아 아이를 키울 수 없거나, 학대 받는 아이들도 주위의 관심으로 신망원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망원의 운영철학, ‘믿고, 기대하고, 기다리기’
아이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줘야 하는 것들, 예를 들어 먹는 것, 물질적인 것 등은 예전에 비해 제도적 지원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망원의 운영철학이자 저의 모토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항상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고 ‘믿고, 기대하고, 기다리기’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매번 이 점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고 과장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 아이들과 대화할 때, 반응할 때 보여주는 눈빛 하나하나, 말투에서 아이들은 그대로 다 느끼기 때문에 진심으로 아이를 대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내가 여기 있기 때문에 나는 이거 안돼’라고 생각해서 쉽게 포기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도록 아이들을 늘 격려하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들은 최대한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첼로 레슨하는 모습


신망원을 운영하며 겪은 안타까운 일들 그리고 기대
아이들이 넘지 않아야 하는 선을 넘어서 본인이 여기를 벗어날 수밖에 없을 때 정말 안타깝습니다. 신망원에서 잘 지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만기퇴소를 하면 다행이지만, 도중에 사고를 쳐서 소년원에 간다든지, 반복적인 문제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내야하는 경우(전원)도 있습니다. 순간의 위기를 잘 견디지 못하고 나중에 본인이 후회할 일을 만들었을 때 정말 속상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사고를 치고 신망원을 나간다 하더라도 제 마음속에서는 그 아이를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나까지 포기하면 아이들이 완전 포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혼내기도 하고, 책망도 합니다. 정상적으로 퇴소해서 외부 활동을 잘 하면 찾아가서 지켜보고 응원을 꼭 해주고 옵니다. 비록 이제는 신망원 소속이 아니지만 격려해주고 싶은 마음에 제 발걸음이 향하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다 커서 신망원을 떠나 독립하더라도 어버이날에는 카톡과 전화도 오고, 선물도 보내옵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줄 때 너무 기특하고 제 개인적으로는 행복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뿌듯할 때는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찾았을 때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모 대학병원 간호사로 취업이 되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지원해서 가기도 하는 등의 소식을 들을 때 말이죠. 

‘망원이’ 축제
매년 5월 둘째 주에는 망원이 축제가 있습니다. ‘망원이’축제는 일 년 내내 우리가 도움을 받는데 그날 하루는 우리가 보답하는 의미로 모든 음식과 놀 거리를 다 준비를 해서 외부에 계신 분들을 초대하는 날이에요. 신망원을 퇴소한 아이들, 학교 선생님들, 지역 동네분들, 후원자님, 봉사자님, 아이들 연고자들 등 모두 초청해서 잔치를 하는 것이죠. 평소 까칠했던 사춘기 큰아이들도 이날만큼은 무장해제가 됩니다. 우리가 다 준비하고 초청하니까 이날만은 아이들의 자존감도 높아지는 것 같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도 굉장히 행복해하고 우리가 줄 수 있다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요. 그런데 이리 좋은 ‘망원이’ 축제를 코로나 19로 올해는 취소하게 되었답니다. 


제일 큰 이슈 
아이들이 신망원에 있을 때는 그나마 제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어 안심이 되지만, 퇴소 후 자립하는 것이 굉장히 큰 이슈예요. 여기서 18년을 잘 키워도 밖에 나가서 사회적 고립감, 경제적 어려움, 배신당하고, 범죄에 이용당하고, 여자아이들의 경우 미혼모가 되면서 1년도 채 안되어 굉장히 망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신망원을 나가기 전이나 나가서도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회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해 좋은 분들과 연결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전화 통화도 하고, 만나서 밥도 사주고, 관심을 가져주도록 이런 분들에게 당부를 드리지요. 아이들에게는 또 한 명의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생기는 거잖아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선물을 사주는 것을 마냥 좋아하지만, 컸을 때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고마움과 감사를 표현하거든요.


신망원을 운영하며 갖는 의미
아이들을 애정과 진심 어린 마음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대하는 경우를 볼 때면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원장과 시설 아이들의 이런 관계가 아니라, 가족처럼 지내거든요. 아이들이 때로는 이해가 안 되고, ‘왜 저러지?’하며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밉지는 않습니다. 이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믿어주고, 계속 기대하며 기다려 주고, 포기하지 않으니까 직원들이 좀 힘들어 하기도 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을 때가 있지만, 어떤 시점이 됐을 때 아이들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면 저는 그때 다시 힘을 얻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밉지 않고, 계속 기대하게 되고, 아이들이 나아지면 모든 힘들었던 것들, 속상했던 것들이 바보처럼 다 잊혀지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고 고마웠다고 할 때가 있어요. 비록 제 속으로 낳지 않았지만, 이렇게 한 인격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
지금 있는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 뿐 아니라, 사회에서는 아동시설이 더 다양한 기능을 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시보호소, 지역아동센터 역할을 하는 곳도 있고요. 우리 신망원도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더욱 고민하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보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잘할 수 있는 특화된 것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자 과제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도리어 부모들에게 매 맞고 오는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엄마! OO를 우리 집에 데려왔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할 때 너무 웃기기도 한다는 박명희 원장님의 말이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이 안전하다 느끼고 있는 거니까요. 신망원에 있는 아이들의 행복한 소리가 밖에서도 잘 울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진심으로 가져봅니다.

 

사회복지법인 신망원 박명희 원장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1길 142번길 60
031-772-6244,  www.shinmang.or.k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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