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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장왕’과 ‘고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1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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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19] 

‘보장왕’과 ‘고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역사 속 마지막 왕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보통 신라의 경순왕, 고려의 공양왕, 대한제국의 순종을 떠올리지만 모두 다른 나라에 순순히 나라를 넘겨준 왕입니다. 고조선의 마지막 왕은 잘 모르는데 나라와 함께 목숨을 바친 ‘우거왕’입니다. 그럼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과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은 어땠을까요? 마지막 왕에 대해선 역사적 평가가 박한데 두 왕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고종 황제

 첫째, 마지막 왕입니다. 보장왕은 전고려(=고구려)의 마지막 왕이고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왕이자 대한제국의 건국자이기도 합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황제에서 밀려나 순종이 뒤를 이었지만 대한제국 실질적인 황제는 고종이었지요.

 둘째, 2인자였습니다. 둘 다 왕이었지만 1인자가 아닌 2인자 취급을 당하였답니다. 보장왕(642~668)은 642년 영류왕을 죽이고 권력을 잡은 연개소문에 의해 옹립되어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지 못했어요. 665년 연개소문은 죽었지만 그의 세 아들이 권력을 나눠 가졌습니다. 결국 연개소문의 아들끼리 서로 싸우다 668년 전고려는 멸망했답니다.
 고종(1863~1907)은 강화도령 철종의 뒤를 이어 1863년 즉위하였습니다. 1852년에 태어난 고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의 나이는 12살이었어요.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하였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행사했습니다. 21살 때인 1873년 친정을 시작하면서 권력은 왕비 민씨와 그의 척족들에게 넘어갔지요. 1894년 일본은 자객을 보내 명성황후를 시해했습니다. 이후 일본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압박에 시달리다 황위에서 쫓겨나고 대한제국도 1910년에 멸망했어요.

 셋째,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습니다. 668년 전고려는 멸망했어요. 당나라는 보장왕을 요동도독 조선군왕에 임명하여 전고려 유민들을 다독이게 하였지요. 그러나 보장왕은 오히려 전고려 유민을 규합하고 말갈과 연결하여 전고려 부흥을 꾀하였습니다. 하지만 일이 발각되어 681년 사천성의 공주로 유배되어 682년에 죽었어요.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하여 일제가 강압적으로 체결한 을사늑약에 대한 부당성을 알리고자 했으나 외면당했습니다. 만국의 평화는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평화였고 약소국에는 해당되지 않았어요. 일제는 헤이그 밀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조가 다음 황위를 이었습니다. 1910년 나라를 빼앗겼지만 1912년 고종은 의병장 임병찬에게 밀지를 보내 거병토록 하였지요. 1919년 끝내 나라를 되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넷째, 자신의 나라를 계승한 나라가 들어섰습니다. 전고려가 멸망한 후 전고려를 계승한 발해가 세워졌어요. 발해의 건국 연대는 698년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지요. 우리나라의 건국연대는 모두 우리 쪽 기록에 근거한 것입니다. 발해만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고 우리 기록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13세기 이승휴가 지은 <<제왕운기>>에는 684년 발해가 건국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전고려가 멸망한 이후 사람들은 전고려가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전고려 왕족 ‘안승’은 한성에 ‘고려’를 세우고 나중에는 전북 익산에 신라의 도움을 받아 보덕국을 세웠지요. 옛 전고려 땅에서도 부흥운동이 일어났고 부흥운동이 성공하면 보장왕을 다시 맞이하여 전고려를 다시 세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682년 보장왕이 죽고 말았습니다. 전고려를 다시 세우는 게 어렵게 돼버렸어요. 신라도 보덕국의 가치가 사라졌다 생각하고 683년 안승을 경주로 불러들였지요. 전고려 부흥운동을 꿈꾸었던 세력들은 이제 새로운 나라를 세워 전고려를 계승하고자 하였습니다. 682년 보장왕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684년 발해가 건국되었습니다. 발해는 자신을 ‘고려’라고도 하고 발해왕을 ‘고려국왕’이라고도 했지요. 
 고종이 죽은 1919년 장례기간 중인 3월 1일 거국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운동이 성공했다면 공화국보다는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순종이 황위에 올랐을 것입니다. 3.1운동의 실패는 고종의 죽음과 함께 대한제국의 진정한 멸망이었어요. 하지만 대한제국의 ‘대한’은 멸망하지 않았답니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는 의미에서 임시정부의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했습니다. 

 경순왕은 천 년의 신라를 한 번도 싸워보지 않고 왕건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려왕조 500년, 조선왕조 500년, 천 년 동안 칭송을 받았지요. 역사 속 마지막 왕 가운데 본 받을만한 왕이 있을까요? 보장왕과 고종도 나라를 망하게 한 역사의 책임을 피할 수 없지만 마지막 왕으로 나라를 되찾으려고 한 노력까지 평가절하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발해를 낳게 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낳게 한 밑거름이 되었으니까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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