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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 되지 않은 우리의 인생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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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수연의 인생 단상 1]

계획대로 되지 않은 우리의 인생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열두 살 사춘기 때 TV에서 본 로맨틱코미디 장르인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입니다. 지하철역 내 창구에서 토큰을 바꿔주는 일을 하는 여주인공이 어느 날 짝사랑하던 남자의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그 이후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지만 결국 행복을 찾게 되는 이야기인데, 결말 부분에 여주인공이 어릴 적 들었던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고 언급하지요.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릴 때 접했던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방학이 되면 제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바로 ‘시간계획표’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실행을 하기에 앞서 그렇게 계획표를 짜는 일은 마치 습관처럼 자리잡게 되었죠. 그런데 과연 방학기간 동안 시간계획표대로 살았던 날은 며칠이나 될까요? 아마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며칠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계획세우기를 즐겨 했던 것 같습니다. 계획을 하다보면, 이미 그 목표를 이룬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요.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겠다는 일념으로 계획의 늪에 잘못 빠져, 계획만 하다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한 채 끝이 나버린 경우도 있었답니다. 과유불급이었죠.
 
 얼마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도 제 마음을 깊이 파고든 부분이 있었어요. 극중 아들인 기우가 아버지인 기택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묻습니다. 기택 역을 맡은 송강호는 대답합니다.“나에게 계획이 다 있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계획은 대부분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계획하는 삶을  포기한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마지막까지 계획에 기반한 행동을 합니다. “아버지, 제게 다 계획이 있어요.”라고 하며 말이죠. 영화를 보고, 스스로에게 자문해 봅니다. ‘나는 계획하는 삶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계획에는 나만의 목표가 들어있고, 의지가 들어있고, 열정이 들어있고, 책임도 들어있습니다. 사실 계획대로 실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해본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계획대로 한다고 해서 항상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 또한 아닙니다. 살다 보면 영화처럼 거의 대부분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느낄 수 있죠. 그래도 저는 선계획, 후실행을 선호합니다. 무계획으로 시작해서 느끼는 좌절감과 후회보다 계획에서 실패했을 때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받아들이는 것이 상대적으로 나은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실패에서 오는 상실감과 막막함은 언제나 다루기 힘든 숙제입니다. 얼마 전에도 목표했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낙담했답니다.
 이렇게 원하는대로, 계획한대로 흘러가지 않아 마음이 답답하고, 우울해질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예전 같으면 그 심란한 마음의 소용돌이에 갇혀 스스로를 탓하며 우울의 하강나선으로 무한히 내려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나만의 방법으로 말이죠.


 먼저 제가 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책을 통해 생각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줄 만한 책을 골라 읽습니다. 책 속의 현자들은 저에게 마음을 다스리는 법과, 현재 무엇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인지 깨닫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이성의 칠판으로 나와 무언가를 새롭게 적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즘은 컨텐츠의 시대입니다. 책을 대신해줄 만한 다른 컨텐츠를 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제 경우 타인의 글을 읽거나, 동영상 또는 이미지 컨텐츠를 보게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외부 자극은 우울한 감정 속에 갇힌 내 마음을 다른 곳으로 끌어다 놓기에 좋은 수단이지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그 답답했던 그 감정 위를 덮어버리게 됩니다.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면 자리를 옮겨 몸을 움직이는 것 또한 효과적입니다. 운동을 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샤워를 하기도 합니다. 책이나 다른 컨텐츠를 통해 감정에서 이성으로 눈을 돌렸다면, 운동이나 샤워를 하면서 이성적인 생각에 온전히 집중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어떻게 하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을지, 잘못된 실수를 어떻게 만회할지에 대해 다시 실행을 위한 계획을 세우는 단계로 주로 활용한답니다. 


 마지막 방법으로는 반드시 무언가 아웃풋을 내도록 합니다. 즉 떠오른 생각을 글로 적거나, 실행계획표 안에 넣어서 즉시 실행을 유도하거나 하는 방식입니다. 일단 실행하는 것은 과거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현재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디뎠기 때문에, 이제 속도를 붙이는 일만 남은 것이니까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지만, 그래도 카오스의 세계에 덩그러니 놓이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각자의 삶을 계획해 보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어쩌면 인생은 계획의 무한반복일지도 모르니까요.

 

Life Designeer 주수연

brunch.co.kr/@lifedesigneer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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