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온라인 수업 단상

2020년 6월호(12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8. 10. 21:24

본문

[retrospective & prospective 28] 

온라인 수업 단상

 사회적 거리두기로 저녁 약속도 줄어들고 불필요한 만남을 자제하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안 보던 TV도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패널들이 함께 요약된 영화를 보면서 영화의 배경, 제작의 뒷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이다. 오늘 소개된 영화는 예전에 본 적 있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 이라는 영화였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졌으나 어렸을 때 부모에게 받은 학대로 인해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윌 헌팅’과 그런 그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진심으로 다가가 진정한 멘토가 되어준 ‘숀 맥과이어’의 특별한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상처를 가진 제자와 그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승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일요일 아침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영화였다.

 

 

 집콕 생활이 주는 장점 중 하나는 본의 아니게 늘어난 시간으로 얼마든지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다. 나는 요즘 방방마다 서랍마다 정리를 하고 있다. 지난 2년간 쓰지 않은 물건들은 과감히 버리고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들은 나보다 잘 맞는 사람에게 또는 ‘아름다운 가게’로 보낸다. 추억이 깃든 오래된 물건들도 하나 둘 처분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컴퓨터 안에 있는 오래된 파일 정리인데 그 안에는 파일 채 쌓여있는 사진들도 있다.
 회사를 다니며 월요일마다 강의를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으니 제자들과의 추억도 그만큼 쌓여 컴퓨터 파일에 남아 있었는데, 사진 속의 제자들은 언젠가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이끌 꿈을 꾸고 있는 먼 훗날 나의 후배들이다. 나에게 강의를 들었던 꼬꼬마 제자들이 지금은 문화예술계에 대거 포진해 있다. 어릴 적 꿈이 대통령이었던 ‘보미’는 문화정책을 공부한 후 청년정치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중이고, ‘은희’는 장애인으로 구성된 공연기획사의 대표가 되어 시각장애인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을 기획하고 있고, ‘신욱’이는 세계적인 포이(저글링의 일종) 댄서가 되어 전 세계 페스티벌을 누비고 있다. 
 엊그제는 비올라를 전공하고 월드뮤직축제를 기획하던 ‘민정’이가 첫 독집앨범을 발표했는데 그 음반에 실릴 리뷰를 써달라고 부탁해 왔다. 글을 쓰기 전에 수록되어 있는 음악을 들어보니 평소 민정이의 성향이 그대로 묻어있는 밝고 상큼한 느낌의 크로스오버 뮤직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단번에 음반 리뷰를 보내주었다. 민정이의 저작권료 수입이 대박나길 바라며…

 평소 인간관계가 좋았던 사람이라도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자기 옆에 있어 줄 사람은 누구일지 쉽게 떠올리기는 어렵다. 그리고 그럴 때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면 어렵고 난처한 상황이 되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나는 2년 가까운 투병 생활을 통해 운이 좋게도 비교적 일찍, 어려울 때 내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경험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앞으로 내 삶에 큰 힘이 되고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데 그 고마웠던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제자들이다. 자주 집에 들러 혼자 있는 내가 외로울까봐 대화 상대가 되어주고 식사도 함께 해 주었다. 그래서 두렵거나 외롭지 않게 2년 가까운 투병 생활을 가슴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복직을 하고 쉬었던 강의를 다시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하면 어린 제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다.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맡은 강의에 최선을 다하여 학생들에게 도움 되는 강의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제공할 수 있는 문화예술계의 구인 소식들을 발 빠르게 알려주고 수업 시간에는 문화예술기관 입사에 도움 될 만한 이슈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도 만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문화예술계에 입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수가 넘쳐나는데 입직할 수 있는 신입사원의 수는 너무 적어서 경쟁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 경쟁률을 뚫기 위해 나와 나의 제자들은 열심히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학생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노트북 화면으로 조각보처럼 나타나는 얼굴들은 보았지만 실물을 본 적은 없다. 평소 이름과 얼굴을 비교적 빨리 외우는 나도 노트북으로 보이는 얼굴을 식별하는 건 좀 어렵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어느덧 온라인 수업도 적응하고 있는 요즘이다. 

 학창시절 스승의 한마디에 인생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 “너는 참 발음이 좋구나”하는 선생님의 한마디에 아나운서가 된 친구도 있고 음악 시간에 노래를 잘한다는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성악가가 된 친구도 있다. 비록 온라인 수업이지만, 그리고 이런 형태의 수업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재능을 가진 학생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윌 헌팅의 재능을 발견해준 숀 맥과이어 교수가 되고 싶다.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본부장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28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