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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의 역사가 아닌 계승의 역사

2020년 8월호(13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0. 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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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20]

 

단절의 역사가 아닌 
계승의 역사

 

우리나라의 첫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지요. 2천년 이상 존속한 고조선은 중국 한나라에 의해 기원전 108년에 멸망했습니다. 한나라는 이곳에 낙랑 등 한사군을 설치했어요. 우리 역사는 한사군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한편, 한사군을 몰아내면서 삼국시대를 맞이했다고 배워왔습니다.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의 설치라는 등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거지요.
1910년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한제국이 망했다 하고, 어떤 사람은 대한제국도 나라냐 하면서 조선이 망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이 망했든, 조선이 망했든 이 나라는 일제가 강제로 다스린 일제강점기로 들어갔어요. 대한제국(조선)-일제강점기라는 등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지요.
첫 나라 고조선이 기원전 108년에 멸망하고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들어서기까지 역사의 공백이 생겼고 그 공백 시기를 ‘한사군’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대한(제국)도 마찬가지로 1910년부터 해방이 되기까지 역사의 공백이 생겼고, 우리는 그 공백을 ‘일제강점기’라고 부르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우리 역사의 공백은 계속되었고 우리는 이 시기를 ‘미군정기’라고 부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첫 역사가 고조선-한사군일까요? 현재의 역사가 대한제국-일제강점기-미군정기일까요?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고조선 부흥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습니다. 부흥운동이 고조선의 부활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나중에 단군의 아들을 자처한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하였지요. 고구려의 건국연대에 대해서 《삼국사기》는 기원전 37년이라고 했지만 같은 책에서 신라 문무왕은 고구려가 800년 만에 멸망되었다고 했어요. 고구려를 멸망시킨 문무왕의 언급이라 무시할 수 없는 말이지요. 고구려가 668년에 멸망했으므로 멸망한 지 800년이 되었다고 하면 고구려의 건국연대는 기원전 1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2세기 즉 기원전 137년 전후가 됩니다. 고려 이승휴의 《제왕운기》에는 고구려의 건국연대로 기원전 37년을 언급하고, 또 다른 건국연대로 기원전 107년을 언급하고 있어요. 기원전 107년은 바로 고조선이 멸망한 기원전 108년 바로 다음 해입니다. 고조선이 멸망하자마자 이를 계승한 고구려가 들어선 것이지요.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의 설치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의 건국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2020년 오늘의 관점에서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1910년 당시를 살고 있던 사람은 1910년 8월 29일에 있던 나라가 없어졌다고 생각했을까요? 조약과 계약에 익숙한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소위 한일합방조약체결로 효력이 발생하여 그날로 나라가 없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과연 그 시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더구나 그 조약은 강압적으로 체결되었기 때문에 조약효력 자체도 문제였어요. 1910년 사람들은 나라가 망한 걸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습니다. 고종은 ‘임병찬’으로 하여금 거사를 도모하게 지시하기도 하였지요. 1919년 사람들이 외친 ‘대한독립만세’도 ‘대한제국독립만세’였어요. 왜냐하면 대한제국은 아직 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3.1운동으로 나라를 되찾았다면 그 나라는 다시 대한제국이었을 것입니다. 1919년 임시정부를 세울 때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고 해서 대한민국이라고 하였지요. 대한제국-일제강점기로 우리 역사의 공백이 생긴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대한민국임시정부로 이어져 왔어요.


우리나라는 5천년 동안 역사를 이어 왔습니다. 외세에 의해 나라가 망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나라가 망했다고 하여 결코 굴하지 않고 망한 나라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 왔답니다. 그러한 노력은 고조선부터 지금까지 한 때도 중단되지 않았지요.
우리 역사의 출발은 고조선의 멸망과 한사군의 설치가 아니라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의 건국으로 이해하고,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대한제국의 멸망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이란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렇다고 한사군과 일제강점기를 묻어 두자는 말이 아닙니다. 반성을 하더라도 우리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반성하자는 말이지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나라이름역사연구소 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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