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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힘들어’

2020년 8월호(13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0. 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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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힘들어’

 

주방에서 본 풍경

이사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살던 집이 나가야 어디를 알아보든지 할 텐데 집을 보러 오는 사람 맞이하는 것도 힘겨웠다. 미리 집에 도착해서 치우고 닦아도 고작 한번 휙 둘러보고 나가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몇 차례 피로가 쌓일 무렵 순식간에 매매가 성사되었다. 얼떨떨할 사이도 없이 이제는 우리가 이사 갈 곳을 찾아야 했다.


조금 넓혀서 두 아이에게 방을 하나씩 주자니 융자를 더 얻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몇 프로의 융자를 받느냐를 시작으로 아이들 학교를 고려해서 움직여야 하니 이사할 곳을 정하는 것도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주말에 몰아서 몇몇 집을 돌아보는 것도 일이다. 집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 제각각이고, 이 집 저 집마다 장단점을 따지니 선택이 쉽지 않다.


그래도 아내와 내가 생각하는 집에 대한 로망에 부합하는 집을 보게 되었다. 몇 군데 수리만 하면 바로 입주해도 될 것 같았다. 붙박이장은 그대로 사용키로 하고 사용하던 책장도 받기로 했다. 도배와 싱크대 교체를 외부에 맡기고 베란다 페인트는 내가 직접 진행했다. 6월 말은 손 없는 날이라 이사업체 선정하는 데도 바짝 신경이 쓰였다. 도배는 아는 곳에 맡기고 싱크대는 유명메이커 H업체를 먼저 알아봤는데 동네 인테리어와는 가격 차이가 컸다. 


먼저 주방의 수치를 재야해서 이사할 곳의 양해를 구해 인테리어 업자와 집을 방문했다. 코로나 시국이라 방문날짜와 시간을 정하는 것에도 애를 먹었다. 그나마 운이 좋게 이사 갈 곳의 거주자분이 4일 먼저 집을 비워주어 수리를 마치고 이사할 수 있었다. 물론 4일간은 부동산에 맡겨진 키를 얻어서 들고 나며 아직은 집주인이 내가 아닌 타인의 집이란 사실에 주의하면서 말이다.
페인트칠도 고됐지만 이사 전에 짐을 버리고 이사해서 짐을 정리하는 것은 끝이 없다.
이사 당일에는 전날부터 비가 퍼부어대서 걱정이었다. 당일엔 부슬비로 바뀌고 오후엔 멈춘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10년을 사용한 냉장고와 세탁기는 새로 바꾸기로 했는데, 사용하겠다는 집으로 깨끗이 닦아 보냈다. 가전제품을 구입하면 바로 오겠다는 생각이었는지, 다른 바쁜 일로 정신이 없었는지 대리점과 하이마트를 오가다 이사 직전에야 제품을 선정하고 주문했다. 결론은 이사 후 일주일을 기다려서야 새 제품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한여름에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공급하며 일주일을 지내야 했다. 세탁은 며칠 치를 모아 새로운 세탁기가 들어온 날에 빨래를 했다. 


치우고 닦고 쓸고 커튼도 달고 또 청소하고…
넓어져서 좋기는 한데 손 가는 곳은 훨씬 넓어졌다. 
버리고 나눈 짐도 많은데 책과 옷과 잡동사니들은 또 어디 있다가 나왔는지.
삶이 무질서하고 단순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아이가 다니던 학교가 조금 멀어졌다. 당분간은 차에 태워서 등하교를 시켜야 하고 1학기를 마치는 시점에서 전학시킬까 생각 중이다. 이사 당일에는 이 부동산 저 부동산으로 집을 팔고 사고 잔금을 정리하고 은행 업무 보느라 거금을 쥐고 서류를 들고 오가느라 정신없었다. 동사무소에서 이전신고를 마치고 아파트 주차 카드를 신청하며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니 이사 전후로 2주가 훌쩍 지나고 있다. 아내는 여전히 당근 마켓을 살피며 소소한 것을 사들이고 있다. 밥 차려 먹기가 힘들어 아이들과는 잦은 외식에 삼계탕으로 몸보신을 했다.


베란다 쪽으로는 수락산이, 주방에서는 북한산과 도봉산이 펼쳐진 것이 큰 위로와 힐링이다. 막힘없는 시야가 나와 아내의 로망이었다. 소박하지만 안정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 이전이라면 더욱 좋겠다. 옛 추억과의 작별과 새 터전에서의 적응에 힘쓰는 중이다.

 

기획자 프로듀서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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