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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싱 엔지니어’로 음악인의 길을 다시 걷다

2021년 7월호(14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7.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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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싱 엔지니어’로 음악인의 길을 다시 걷다

 

중딩, 기타 하나 들고 홍대 클럽에 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는 형으로부터 기타를 처음 배우게 되었습니다. 악기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기타를 배우면 배울수록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죠. 점점 기타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해 중학교에 들어가 밴드부 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밴드부 활동에 만족이 안되더군요. 한참 사춘기의 반항기가 시작될 중2 무렵, 학교는 뒷전이 되었고, 기타 하나 들고 홍대에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10년 전에는 홍대에 라이브 홀이 워낙 많았어요. 저는 여느 중학생과는 다른 세계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고 싶었습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기타를 맸죠. 홍대 클럽에서 만난 형들에게 음악을 배우고, 함께 공연도 했습니다. 홍대 클럽에서는 “저 꼬마가 음악을 하네!”라고 신기해했었죠.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도 마쳤습니다. 실용음악과에 입학하는 게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10시간 이상씩 연습을 했습니다. 18세에 실용음악으로 내로라하는 대학에 지원했는데,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홀로 연습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쟁쟁한 경쟁에 밀려 떨어졌어요. 불합격 소식에 상실감이 컸지만 재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일단 합격한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기타의 세계 속에서 현실의 눈을 뜨다
저는 한 시간이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함에 계속 기타를 쳤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기타였는데 점점 저를 옥죄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죠. 여전히 기타밖에 모르던 저는 군 입대를 하고, 제 나이 26세, 이제는 저만의 음악을 만들고 싶더군요. 장발머리에 기타를 들고 공연도 다니고 아는 분의 스튜디오에 가서 기타를 쳐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이 녹록치 않았어요. 기타의 세계에 빠져 있던 저는 점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고, 제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10년 이상을 연습이라는 노력으로 버티어왔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았죠. 주위에서는 “너 잘해, 조금만 더 하면 괜찮아질 거야 좀 더 참자”라는 말을 했지만, 저는 남이랑 비슷하다면 재능이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제 인생과 같았던 기타를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현실에 객관적이 되어 버린 저는 장발인 긴 머리를 확 잘랐습니다. 

믹싱 엔니지어로 음악인의 길을 다시 걷다 
기타만이 전부인 줄 알고 왔는데 막상 기타를 내려놓고 나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이 없었고, 음악에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었던 믹싱, 마스터링을 하는 엔지니어를 해보고 싶어 MixingArt라는 곳에서 믹싱, 마스터링 레슨을 받게 되었죠.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믹싱 엔지니어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기타를 손 놓은 것은 아니고요. 이제 기타는 취미로 하고 있는데 기타에서 좀 자유로워졌죠. 기타 연주가 귀로 듣고, 머리도 쓰고, 근본적으로는 손의 근육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믹싱 엔지니어는 오직 귀로만 듣고 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보컬과 악기가 만들어낸 것을 가지고 조합하고, 예쁘게 만들고, 포장해서 상품으로 딱 내놓는 것입니다. 최근 유행했던 드라마 ‘펜트하우스’OST 중 ‘Desire’라는 곡의 믹싱 작업을 하기도 했었죠. 무엇보다 믹싱 엔지니어를 하며 믹싱, 마스터링을 맡긴 아티스트가 자기가 생각한 사운드로 믹싱, 마스터링이 되었다고 만족할 때, 그 음악이 발매되어 듣는 사람들이 위로를 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프리랜서 믹싱 엔지니어로 살아가기에는 일정한 수입을 유지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현재는 대학에서 실용음악과 조교일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음악 분야에서 저의 능력을 키워 나가기 위해 작업실에서 믹싱, 마스터링에 필요한 컴퓨터, 스피커, 장비 등을 구비해 음악 연습과 작업을 하고 있고요. 또한, 레슨을 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믹싱, 마스터링이 되기 전의 파일인 멀티트랙 수십 곡 이상을, 실력 있는 거장 엔지니어가 작업한 결과물(우리가 음원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는 발매된 음원)에 최대한 비슷하게 만드는 연습을 하고요. 제 나름대로 해석하여 믹싱, 마스터링을 해보기도 한답니다. 일과 공부, 연습을 병행하면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기타만으로 음악을 했던 내 세계 속에서 나와 현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한편으론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정직한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싶은 꿈 
음악은 제 인생과 마찬가지입니다. 어제보다 음악을 잘하는 오늘의 저로 나아가려고 항상 노력하죠. 주위에서는 이왕 음악 엔지니어가 되기로 했다면 유명한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성공하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고가 되지 못하더라도 음악을 사랑하는 저와 뜻 맞는, 정직한 사람들과 진실되고 건강한 음악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더 깊은 공부도 하고, 엔지니어로서 자리를 잡으면 넓은 공간에서 녹음, 믹싱, 마스터링을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목표이지만, 계속해서 필요한 장비를 모으고 관련 지식을 쌓아가는 등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음악계에서 권위가 있는 그래미상을 받는 믹싱 엔지니어가 되고 싶습니다. 

믹싱 엔지니어 허인만

stagemaster@naver.com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1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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