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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의 딱 절반, 50대 다시 시작한 간호조무사

2021년 9월호(14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9. 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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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의 딱 절반,
 50대 다시 시작한 간호조무사

 

2019년 11월, 2년 동안 운영했던 편의점 재계약을 포기하며 새로운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찾아봤지만 나이가 벌써 50이 넘어가다보니 다들 부담스러워해 일 구하기가 쉽지 않았죠. 여러 번 시도 끝에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한 채 고용센터에서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게 되어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해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늦었기에 더 치열하게
처음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할 때에는 걱정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공부에서 손 뗀지 어언 30년이 흘러 다시 펜을 잡기까지 큰 결심이 필요했으니까요. 괜히 시작했다 한 번 실패하고, 두 번 실패하고… 이러면 주변에도 창피하니 가족에게만 살짝 이야기하고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학원에 가서 깜짝 놀랐던 것은 저처럼 새롭게 공부하러 온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여행 가이드를 하다, 에어로빅 강사를 하다, 다들 코로나로 일을 못하게 되거나, 집에서 아이 키우다가 온 사람들 등 직업도 정말 다양했습니다. 게다가 나이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온 20대부터 저보다 3~4살 많은 50대 후반 언니들까지 골고루 있었죠. 특히 50대가 10명 넘게(전체 정원의 25%정도) 있었는데 이 다양한 연령층 중에 가장 열심히 하는 분들은 바로 50대입니다. 20~40대까지 지내온 경험도 있고, 또 저처럼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도 크게 한 몫을 한 것 같습니다.
공부하는 책도 총 7권으로 엄청 두꺼운데 그 안에 총 20개가 넘는 과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영어 단어들이 잔뜩 있고, 해부학에는 뼈 그림과 함께 모든 뼈의 이름들이 쓰여있는데 도저히 못할 것 같았죠. 하지만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나는 강사님 숨 쉬는 것까지 모두 메모하리라!’ 다짐하고 포스트잇에 중요한 것은 따로 적으면서 메모를 열심히 했습니다.
내가 과연 이걸 끝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할 때 가족들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특히 딸에게 “엄마가 정말 이거 할 수 있을까?, 괜히 시작한 거 아닐까?, 나이 들어 공부하는 거 창피하지 않아?”라는 저의 고민에 “엄마! 그런 게 어디 있어~ 뭐가 창피해? 난 엄마가 자랑스러운데!” 이 말에 용기를 많이 얻었고 지금도 그 고마운 순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던 간호조무사 문제집

다시 생각해도 잘한 선택
공부를 시작할 때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중 어떤 것을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마침 대구에 간호조무사 일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위의 세 가지 자격증을 다 딴 후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장롱에 그냥 들어있다며 간호조무사를 추천하더군요. 그리고 간호조무사 학원에도 요양보호사를 하다 일이 힘들어서 오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는 물리적 힘듦뿐 아니라 요양보호사가 재가방문을 하는 경우, 어르신만 케어 하도록 교육 받고 방문을 함에도 불구하고, 어르신과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이 다른 집안일 부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많이 힘들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봐도 간호조무사를 선택한 것은 가장 잘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은 이론 740시간, 실습 780시간을 마쳐야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2020년 3월, 공부하기로 한 학원이 코로나로 미뤄져 4월에 수업을 시작하고, 그마저도 온라인으로 진행해서 공부하는 것이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학원생들과 교류하며 같이 스터디 모임을 할 수도 없고, 근육주사와 정맥주사를 놓거나, 치과임상실습을 위해 입안에 Suction(흡인) 하는 것 등 실습을 많이 했어야 했죠. 하지만 코로나로 잠깐씩 학원에 가서 실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5개월 동안 풀타임으로 병원에서 진행했던 780시간의 실습기간은 다행히 재미있었습니다. 전혀 모르는 곳에,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을 저 혼자 갔으면 쉽지 않았을 텐데 다행히 학원생들과 함께 하면서 서로 의지하며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실습 현장에 가 보니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더군요. 몸이 아픈 환자들이다보니 본인의 아픈 스트레스를 저희들에게 푸는 경우도 있고, 간호 공부하는 실습학생인걸 알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같이 실습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병원에 일하는 직원들과, 그리고 입원한 환자들과의 관계 등 정말 많은 사람이 엮인 일인데 편의점을 운영하며 다양한 연령의 아르바이트생들과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문제를 해결해왔던 과거의 경험이 지금의 내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아까워서 견뎠던 새로운 출근
지금 일하고 있는 주간보호센터에 처음 들어갔을 때 몸이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매일 아침에 출근할 때에는 ‘오늘 하루 견뎌보자’다짐하지만 저녁 퇴근길에는 ‘내일 그만둔다고 말할까?’이 고민을 매일매일 했었죠. 센터장에게 이런 속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지금 3일 일했는데 그만두면 아깝잖아요. 지금 4일 일했는데… 지금 일주일 일했는데… 그만두면 아까우니 3개월까지만 견뎌보세요. 모두들 3개월까지는 많이 힘들어하세요”하더라고요. 그렇게 1주일, 2주일 지나니 몸이 조금씩 적응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아는 것이 없어서 말을 할 수도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직원들과 대화도 하고, 어르신들이 치매가 있다 보니 힘들게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중에는 제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짠하게 마음이 가는 어르신도 있고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어르신들과 정이 들어 출근 하지 않는 주말에 생각나는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벌써 이곳에서 일한지도 5개월이 흘렀습니다. 센터장님 이야기대로 3개월이 지나니 아침저녁마다 그만둘까말까,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했던 고민들이 없어지더군요. 하지만 어르신들이 주간보호센터에서는 잘 계시다가도 집에서 집안을 엉망으로 해놓는 등 가족들을 힘들게 하며 상태가 안 좋아지면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는데, 이런 것에 마음이 참 힘듭니다. 그리고 요양원에 자리가 없어 대기하느라 이곳 주간보호센터에서 휠체어 타고 다니시다 요양원으로 옮기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그 어르신들이 요양원으로 가시고 나면 일주일정도는 그분들이 누워계셨던 자리, 앉아계셨던 자리가 계속 생각이 납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간호조무사에 도전한다고 하면 저는 백번이고 찬성하며 권하고 싶습니다. 일찍 친정엄마를 여의고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친정엄마를 생각하며 어르신들을 케어한다고 생각하니 몸은 좀 힘든데 마음이 참 편하고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에게 요양보호사 일도 뿌듯하고 좋긴 하지만, 몸이 힘드니 간호 공부를 해서 간호조무사를 했으면 좋겠다고 추천했습니다. 정년 나이가 따로 없고, 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할 수 있으니까요.

 

 

요양원 설립의 꿈
요양원 중에서 시설이 크지 않아도 가정집처럼 9명만 정원이 되는 요양원이 있는데, 마음이 맞는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몇 명이 모여 그런 요양원을 설립해서 운영하고 싶습니다. 현재 같이 일하는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들과 마음이 잘 맞아 이런 꿈을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실제로 주간보호센터 경험을 해보니 행정업무를 하는 사무실 직원들의 생각과 실제 실무를 하는 우리의 생각이 다를 경우 불필요한 일들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어르신들을 친정엄마, 친정아빠 대하듯 편하게 하지만, 그 모습이 자칫 행정직원들의 눈에는 함부로 대한다고 오해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지금 근무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뿐 아니라, 앞으로 다른 요양원에서도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가려 합니다. 

 

부평휴(休)실버케어센터
간호조무사 이순화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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