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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흘려보내기 운동을 시작하며

2021년 9월호(143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1. 9. 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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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농부 이야기 6]

 

농산물 흘려보내기 운동을 시작하며
(FM : Flowing Movement)

 

제가 농사를 짓는 평창군 방림면은 매해 때마다 고랭지 채소를 수확하느라 늘 바쁩니다. 농산물 시장으로 가는 대형 트럭들이 농로(農路)마다 줄지어 서있고, 조금이라도 수확이 늦을세라 수십 명의 인부들을 재촉하는 농부들의 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흔하게 보이는 또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확하고 밭에 남은 배추, 양배추, 브로콜리, 상추 등의 채소들입니다. 대부분 상품성이 떨어져 수확하지 않고 버려지는 것이 밭의 절반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렇게 버려지는 녀석들의 기준점은 ‘상품성’입니다. 배추로 예를 들면 흠이 전혀 없어야 하는 것이지요. 수확되는 녀석들과 되지 않는 녀석들은 맛의 차이가 크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흠이 있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것입니다. 작물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아주 작은 못난이 녀석들까지 버리지 않고 말려서 사용하는 버섯 재배 농가의 입장에서 보면 낯선 풍경입니다. 상품성 떨어지는 버섯을 완전 헐값(?)에 유통에 넘기는 모습이나 차라리 밭에 그냥 버리는 것이 손해 보지 않는 농가들의 모습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말이지요.

귀한 농산물을 왜 버려야하지?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여러 질문들이 들었습니다. 왜 농산물을 갈아엎어야만 할까? 상품성이 없는 농산물이거나 애써 키운 농산물이 제대로 팔리지 않고, 수확하면 할수록 마이너스가 되는 현실이더라도 그냥 버리지 않고 수확해서 정말 필요한 분들에게 나누면 안될까? 만약 이 농산물들을 흘러가게 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버려진 녀석들이 도리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해 주는 도구가 되지는 않을까? 더 나아가 누군가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데 누가 해야 하지? 혼자서는 안되는데 과연 사람들이 동참할까? 등등 생각들 말입니다.  

나부터 흘려보내기
그래서 먼저 결심한 것은, 다른 사람이 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닌, 내가 먼저 시범을 보이자! 그리고 농산물이 흘러갈 수 있는 다리 역할을 내가 하자! 라는 것입니다. 마침 버섯 수확을 하고 있었기에 제 값으로 판매하고 남은 버섯은 헐값으로 가져가는 유통에 주지 않고 전부 흘려보내자! 라고 작정을 했답니다. 작년 구정 명절을 맞아 기존 재배 동수보다 한 개 동을 더 늘렸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물량이 풍성해서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어려운 지역 어르신들 가정에 500kg 정도 나눌 수 있었답니다. 시기적으로도 엄동설한에 구정 명절을 앞두고 있던 때라 싱싱한 생물 버섯은 좋은 나눔의 작물이었고, 더구나 치아가 약한 어른들에게는 부드러운 버섯이 참 맛이 있었는지 무척 좋아하셨다는 말들을 전해 듣기도 했답니다. 사실 이런 나눔은 누군가가 함께 해주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버섯으로 시작된 1차 나눔도 마찬가지고요. 이곳에 와서 만난 농부들의 자발적 도움, 그리고 스스로 배달 라이더가 되어주신 각 마을의 부녀회장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곳곳으로 흘러가지 못했을 것이니까요. 


나도 동참할게요!
물건을 받으신 분들이 너무 맛있게, 감사하게 드셨다는 반응도 좋지만, 더 기쁜 일은 지역의 농부님들이 “나도 동참할게요!”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반응은 말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봄에 두 번째로 진행된 FM 품목은 버섯 외에 한 가지 더 늘어났답니다. 버섯+고춧가루(30kg) 정도로 지난번 나누지 못한 지역의 어르신들과, 김치를 만들어 어려운 분들의 도시락 반찬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시락 업체에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무더운 여름을 녹여줄 세 번째 FM은 또 다른 분들이 함께 동참해서 버섯+배추+주키니 호박+부추 등으로 매일 도시락 600여개를 만들어 노숙자들의 한 끼 식사를 해결해 주는 곳으로 흘려보낼 수 있었답니다. 앞으로 ‘나도’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점점 더 많은 FM 목록들이 늘어나고, 그럴수록 꼭 흘러가야 할 곳들도 더 많아지겠지요. 

 


방림에서 시작된 FM이 전 세계로 흘러가는 FM으로 
이제 시작된 농산물 흘려보내기에 함께 동참했던 분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기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팔지 못하는 농산물을 나누는 차원으로 시작하지만, 언젠가는 아예 재배를 시작할 때 흘려 보낼 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때가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심은 배추를 보며 이전에는 판매하다가 남으면 버리자는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은 버려지는 것이 아닌 ‘나눔 배추’라는 이름으로 동참하는 작은 노력들처럼 말이지요. 이제는 앞으로 계속될 이 FM운동에 어떤 분이 동참하게 될지, 어떻게 진행될지 기대가 됩니다.  

 

상상농부 한상기
010-4592-3488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43>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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