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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조각

2020년 8월호(13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0. 10. 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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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에 담긴 당신의 마음 이야기 2]

 

마음 한 조각

- 오늘의 나는 ‘나다움’을 잘 간직하고 있나요?
최근 타인의 기대와 시선 때문에 ‘나다움’을 잃어버렸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김민정입니다.” 
가장 화려해 보였으나 오히려 가장 힘들었던 시간 속 저를 한 문장으로 소개해보았습니다.
평범했던 대학생 김민정과 아나운서가 된 김민정은 분명 같은 김민정인데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진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메이크업을 받고 예쁜 옷을 입고 완벽한 모습으로 화면에 나오는 저를 부럽다 하는 후배, 멋지다 하는 친구들 그리고 자랑스러워하시던 부모님. 제가 하는 일이 멋져보일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좋아해주고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을 얻고 싶어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시청자 게시판에 ‘뚱뚱한, 비호감 아나운서’라는 글이 올라온 날부터 음식을 먹다 배가 조금만 부르다 싶으면 화장실에 달려가 먹은걸 게워냈습니다. 그땐 먹고 토하는 게 일상이었던 것 같아요. 더 예쁘고 방송도 잘하는 아나운서들과 비교당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자존감은 낮아지고 저를 자책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얼굴을 고쳐보라는 PD의 말에 성형외과를 찾았다가 3천만 원이 넘는 견적을 받고 망연자실했던 기억도 나네요. 하나부터 열까지 쓸데없이 비교당하고 경쟁하며 저 자신을 잃어버려갔던 그 당시 삶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죠. 


사람들의 기대는 점점 높아졌고 저도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이 사랑과 관심을 지킬 수 있다고 저를 밀어 붙였습니다. 타인과 있을 때는 항상 밝고 웃음 많은 사람이었지만,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이유 없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사무치게 외로웠습니다.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저의 20대는 너무 위태로웠습니다. 그 시기 스코틀랜드라는 낯선 도시에서 한 장의 엽서가 도착했습니다. 여행지마다 한 장씩 보내던 친구의 일상적인 엽서였지만 다른 때와 다르게, 다른 엽서들과 다르게 그날의 그 엽서는 제 마음에 굉장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친구는 어떤 마음으로 엽서를 보냈을까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저에게 그려 보냈을까요? 사실 그때 중요했던 건 친구의 마음보다는 이 그림을 통해 들여다본 제 모습 그리고 제 마음이었습니다. “삶은 줄타기와 같아서… 주위에 옅은 바람에도 내 몸이 흔들려… 떨어질까 두려워… 결국 중요한건 내 마음의 균형. 내가 가야할 곳은 발밑의 외줄이 아니라 저 앞에 자리 잡은 꿈” 글보다 제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불안하게 외줄을 타는 어릿광대였습니다. 그건 마치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나다움을 버리고 균형을 잡으려 안간힘을 다해 견디고 있는 저 같았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서 안쓰럽고 처량해 보이는 어릿광대의 모습에서 더는 이 자리에 머물지 말고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품게 된 것 같아요. 


그 당시 “힘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괜찮아”, “네가 중요한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 말들보다 엽서에 그려진 작은 그림이 제 마음에 더 와 닿았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저는 외줄 타는 어릿광대의 그림에서 삶을 바꿀 힘을 얻은 걸까요? 


‘그림은 글로 설명할 수 없는 데에서 출발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해낼 수 없을 때 시작된다.’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오싱젠(高行健)의 말처럼, 그 당시 타인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제 마음을 외줄 타는 어릿광대 그림을 통해 마주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건 아닐까요? 한정된 의미를 가진 말이나 글보다 보는 언어인 그림을 통해 더 많은 감정을 느끼고 인정하기 싫어 외면했던 문제들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되어 스스로에게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조금 흐른뒤 저는 엽서를 꺼내 작은 종이에 어릿광대를 따라 그렸습니다. 물론 그림을 배워본적이 없어 어설펐지만 엽서에 그려진 위태한 삶의 줄대신 평평한 땅과 풀 그리고 꽃도 그려주었어요. 그 순간 저의 무대는 바뀌었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거에요. 제 마음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스스로 위로받을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든 것이. 


40세가 되어 꺼내 본 엽서에는 불안하게 외줄을 타던 어릿광대 대신 즐기면서 줄을 타는 어릿광대가 있네요. 이제는 어릿광대의 그림에서 저보다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보입니다. 그들도 과거의 저처럼 무엇인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아픔을 견디며 미래를 불안해하겠지요. 그런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과거의 제가 그랬듯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다면, 생각을 바꿔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펜 하나 들어 그들에게 선물할 그림 하나를 그려보는 겁니다. 


제 학생들이 저처럼 마흔이 되었을 때 다시 그 그림을 본다면 어떤 마음일까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만져줄 그림 한 장 선물할 마음이 생길지 궁금해집니다. 직접 그리지 않아도, 잘 그릴 필요도 없어요. 내 진심을 전해 줄 수 있는 작은 마음 한조각도 괜찮습니다. 받는 사람에게 그 조각은 꼭 맞는 퍼즐처럼 필요한 부분에 위로가 되고 삶을 바꿀 힘을 얻을 테니까요. 

 

리네아스토리 부대표 김민정

lineastory.com

* LINEA STORY(리네아스토리)는 마음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컨텐츠 디자인회사입니다.

 

이 글은<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30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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