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4,000,605개의 미래 가운데 우리가 이긴 경우는 단 한 번

2018년 10월호(제108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8. 10. 7. 22:12

본문

[이동구의 금융스토리 18]



14,000,605개의 미래 가운데 

우리가 이긴 경우는 단 한 번



“시간을 앞질러 가서 발생 가능한 미래를 미리 봤어” “몇 개나 봤는데?” “14,000,605개” “우리가 이긴 경우는 몇 번이야?” “단 하나” 올 여름에 개봉한 영화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타노스’라고 하는 강력한 적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 가운데 미래를 볼 수 있는 마법사가 수많은 경우의 수를 살펴보았지만 주인공들이 이기는 경우의 수는 천사백만육백다섯 개 중에 단 하나 밖에 없다고 하는 장면입니다. 그만큼 상대방이 강력해서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를 바꾸기 힘들다는 것인데요.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이 있는데, 신용카드를 통한 소비가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지출을 하고 후회하지만 다음 달에 또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자신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신용카드 대신 현금을 쓴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닙니다. 동전과 같은 거스름돈이 생기는 것, 생각지 못한 지출이 발생할 경우 현금 인출기를 찾아야 하는 등. 이 불편한 과정을 말끔하게 해결해주는 것이 바로 신용카드입니다. 그런데 이 신용카드를 사용함에 있어 뇌과학에 근거한 고도의 심리게임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그리고 그 게임은 대체로 카드사의 승리로 끝나곤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신용카드 사용에 있어서 숨어있는 심리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돈을 쓸 때 매우 큰 고통을 느낀다는 것 알고 계신가요? 쇼핑을 하고 결제를 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새로운 물건을 얻게 되는 즐거움보다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빼앗기는 고통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실제로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자인 브라이언 넛슨 교수는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이를 실험했습니다. 이 실험에서 물건의 가격을 알고 계산을 할 때 뇌가 느끼는 고통이 마치 칼에 베이거나 화상을 입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니 생각보다 큰 고통이군요.

그런데 이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쉴 새 없이 물건을 구매하고 과소비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반복적인 자극 때문입니다. 넛슨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에게 상품의 이미지를 반복해서 보여주었더니 처음에 상품을 구매하지 않겠다던 피실험자의 무려 87%가 반복된 자극 이후 제품을 사겠다고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쾌락을 담당하는 뇌의 중추가 반복적인 자극을 통해 고통을 잊고 충동구매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용카드의 사용은 현금을 사용할 때와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행위가 카드 소비를 더욱 부추기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현금을 사용할 경우 내 지갑에서 꺼내어 상대방에게 줌으로써 내 것이 빼앗기는 고통을 겪게 되는데 반해, 신용카드는 카드를 돌려받는다는 점에서 심리적 상실감이 덜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과소비를 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여기에 당장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무이자 할부 혜택까지 더해지면 소비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할부에 숨어있는 교묘한 장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뇌는 어떤 가격을 평가할 때 두 단계로 나누어 처리를 합니다. 예를 들어 30만원짜리 상품을 10개월 무이자 할부로 구매한다고 하면, 첫 단계에서 할부를 통해 쪼개진 3만원을 떠올리고 3만원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심적 회계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다달이 3만원 정도는 더 지출해도 큰 무리가 없어’라고 말이죠. 신용카드의 할부 서비스는 이를 파고드는 것이죠. 작은 지출을 한 것 같은 착각을 심어주어 소비를 더욱 부추기는 것입니다.

어벤져스의 주인공들이 14,000,605개의 경우의 수 가운데 오직 한번 이기는 것과 같이, 우리도 지출을 함에 있어 조금 더 신경쓰지 않는다면 대개의 경우는 신용카드사의 의도대로 흘러갈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신용카드의 사용은 우리의 뇌에서 작용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멋진 해결책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이것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불이 위험하다고 다시 불을 사용하기 전의 문명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이미 신용카드 사용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아예 안 쓸 수 없다면, 결제정보를 문자로 받아 보는 것과 모바일 고지서 대신 지류로 발행된 고지서를 받아보는 것 또한 과소비를 방지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물론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이용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요. 그리고 매달 체크카드 결제 계좌에 일정 금액만을 이체하여 지출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디스커버리랩 대표 이동구
010-2040-2209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08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