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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미디어

뇌과학 & IT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7. 2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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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산업혁명과 미디어]

제4차 산업혁명시대의 미디어

 

  ‘제4차 산업혁명’이 지금 한참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 자동차, 빅 데이터, 퀀텀 TV, 양자컴퓨터 등의 등장을 일컫는 말이죠. 이걸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합의된 바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리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선 1·2·3차 산업혁명도 누가 기획해서 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진행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변화로서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었죠. 더구나 제3차 산업혁명은 미국 정부의 기획이었지만 산업혁명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1~3차에 걸친 산업혁명은 미디어 분야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먼저 제4차 산업혁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3차례의 산업혁명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제1차 산업혁명은 1760~1830년 사이 영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농업생산력이 제고되면서 급증하는 상품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기계적 생산을 증대시키고 인력을 대신해 그 기계를 가동시킬 동력이 필요했습니다. 증기기관이 등장한 배경이죠. 이로써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고 산업사회로의 이행이 수반되었습니다. 1만년을 유지해온 농업사회가 산업사회로 바뀐 것이죠. 그래서 '산업혁명'이라고 불렀지요.

 

  제1차 산업혁명은 데카르트 이후, 기계적 세계관과 뉴턴의 이론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지구상의 모든 물체와 우주의 운동을 중력의 법칙과 운동의 세 가지 법칙으로 설명한 뉴턴의 역학(고전역학)은 공학자들로 하여금 모든 기계의 작동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함으로써 증기기관과 증기기관차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로써 기계를 증기의 힘으로 작동시키게 됨으로 산업혁명이 가능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제1차 산업혁명은 대량생산의 산업사회와 더불어 신문영역에서 엘리트 중심의 ‘정론지’(政論紙) 시대를 마감하고, 윤전기에 힘입은 ‘대중적 상업지’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신문 발행의 목적이 정치에서 영리추구로 바뀐 것이죠. 그리고 동시에 전기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 전신의 발명으로 이어져 전 세계에 걸쳐 케이블을 깔아 정보를 수집하게 됨으로써 신문은 글로벌 미디어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제2차 산업혁명은 18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위주의 혁명적 변화인데, 기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석유와 전기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기에 대한 관심은 물리학자들의 지적 동기를 자극하여 전자기학의 등장을 가져왔습니다. 전자기학은 전자기파의 원리를 밝히고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임을 밝혔습니다. 쿨롱에서 패러데이를 거쳐 맥스웰 방정식(1865년)으로 완성된 전자기학은 빛의 정체와 더불어 전파의 존재를 예견했죠.
곧이어 헤르츠가 실험에 의해 전파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방송·통신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전자기학은 가시광선의 적색광 밖에 적외선과 더불어 단파, 중파, 장파 등의 전파의 확인으로 이어집니다. 그 결과 무선전신이 등장하고 이어서 라디오 방송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마샬 맥루언이 규정한 전기 미디어의 속도에 의한 ‘지구촌’의 시대가 도래했음은 물론입니다. 
  20세기는 전자혁명의 시대입니다. 초기의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유선으로 이동이 불가능했고 진공관은 전력을 많이 소모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발명된 것이 ‘트랜지스터’입니다. 1948년의 일이죠. 트랜지스터는 3개의 반도체가 접합된 전자부품으로서 진공관의 원리와 비슷하지만, 훨씬 효율적이고 반영구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크기가 작아지고 휴대가 가능해졌죠. 트랜지스터의 발명이 가능했던 것 역시 물리학의 뒷받침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양자역학’입니다. 양자역학은 고전역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원자의 세계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와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이 대표적이죠. 양자역학에 힘입은 전자혁명은 컴퓨터의 대중화와 함께 제3차 산업혁명으로 이어집니다.

 

 

  제3차 산업혁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짐에 따라 새로운 시장의 개척을 위한 정보통신산업 육성정책으로 컴퓨터의 상용화와 인터넷과 정보화시대 및 방송통신 융합시대를 열었습니다. 이 시기에 생명공학이 함께 발전했음은 주지해야 할 사실이죠. 3차 산업혁명은 복지정책의 파탄과 더불어 등장한 신자유주의와 궤를 같이합니다.

  자본주의는 ‘자유주의’를 앞세우며 이런 산업혁명들을 견인했습니다. 자유주의는 국가의 관리와 통제에 의해 유지되어 온 중상주의를 배격하며 등장했죠. 그것을 논리적으로 주장한 것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입니다.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이념으로서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를 두 축으로 합니다. 국가는 시장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이죠. 인간의 이기심이 성장의 동력으로서 자유로운 생산 활동을 보장해주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동으로 조절되어 모두가 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유주의는 19세기 산업사회에서 흔들리기 시작해 급기야 1929년의 대공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자유주의는 파탄이 났고, 국가가 시장을 관리하고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복지국가 모델이 대세가 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이후, 성장가도를 달리며 최고의 장기 호황을 누리던 미국경제는 1970년을 기점으로 무너집니다. 베트남전쟁이 길어지면서 재정적자에 허덕이게 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지 못한 미국의 제조업이 위기에 빠진 것이죠. 그래서 다시 등장한 것이 자유주의로의 복귀 즉‘신자유주의’의 등장입니다. 미국은 정보통신산업과 유전공학의 육성으로 위기를 돌파하기로 했습니다. 정보통신산업의 육성은 군사용으로 사용되던 컴퓨터의 상업화와 대중화였습니다. 그것은 1981년 스티브 잡스가 주도한 애플의 퍼스널 컴퓨터로 빛을 보게 됩니다. PC는 인터넷과 결합하여 정보화시대를 활짝 열게 되었죠.

  인터넷은 완전히 다른 ‘뉴 미디어’입니다. 기존의 뉴 미디어는 올드 미디어와 공존하며 미디어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했지만, 인터넷은 올드 미디어를 위기에 빠트리며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습니다. 스마트폰이 그 정점에 있음은 물론입니다. 미디어 생태계가 요동을 치게 만들었죠. 그 사이에 아날로그 시대가 막을 내리고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면서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었습니다. 이로써 200년 가까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며 저널리즘을 주도해온 (종이)신문은 사양산업으로 내몰리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명성을 얻었던 지상파방송도 사양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4차 산업혁명입니다. 제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 있는 4차는 보다 업그레이드 된 미디어의 영역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는 ‘융합’입니다. 클라우스 슈밥은 제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수학과 물리학, 화학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분과학문의 지식이 동원되었습니다. 전문가의 시대가 가고 융합형 지식인이 대우받는 시대가 온 거죠.

  미디어 이론가였던 마셜 맥루언은 1964년에 낸 그의 대표작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에서 “기계론적이고 전문성을 중시하는 서구 문화의 침투를 거의 경험하지 않은 뒤처진 나라들은 전기 기술을 훨씬 더 잘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19세기 산업사회에서 형성된 전문성은 인쇄미디어 시대의 산물로서 전자미디어 시대에는 전문주의의 습성을 버리고 지식의 융합을 중시해야 한다는 탁견입니다.

  그 후 5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전문주의의 습성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융합을 강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맥루언의 이 말은 인쇄미디어를 건너뛰고 전자미디어와 더불어 성장한 젊은이들을 상기하게 만듭니다. 인쇄미디어에 익숙한 노인들은 여전히 종이신문을 탐독하는 반면에 인터넷에는 어색합니다. 이는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어쨌건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데, 당연히 제4차 산업혁명은 미디어 분야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양자컴퓨터는 지금의 컴퓨터보다 훨씬 더 빠르고 포털에는 이미 인공지능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여 대학의 교육도 학과 전공 위주의 전문주의의 습성을 버리고, 융합형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교육부의 형식적인 가짜 융합 말고, 진짜 지식의 융합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복수전공 제도를 폐지하고 전공과목은 40 학점 정도 이수하는 걸로 하며 나머지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을 자유롭고 다양하게 이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새 정부는 노장년층을 대상으로도 융합 교육을 실시해야 할 것 입니다. 소외된 노인들은 새로운 지식의 공급이 중단된 가운데 왜곡된 정보와 이데올로기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교정해주어야 하는데 이를테면 평생인문학습원을 설립하여 시군 단위로 평생인문대학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여기서 교육도 하고 무료한 노인들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건강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러한 교육을 위해 강사를 채용함으로써 박사학위를 받고도 취업을 못하고 있는 고급인력의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대연정이지 않을까요? 연정은 정당과 정치인들의 거래가 아니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한양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김동민
dmkim2010@hanmail.net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0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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