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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잉에서 무용가로, 진정한 ‘춤추는 사람’을 꿈꾸는 차종현 안무가를 만나다 

2023년 2월호(16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1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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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비보잉에서 무용가로, 진정한 ‘춤추는 사람’을 꿈꾸는 차종현 안무가를  만나다 

 

 

춤으로 대학을 갈수 있다고?
 대한 진학을 앞두고 전공으로 사회체육학과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리며 취미로 시작했던 비보잉을 더 잘하고 싶어 재즈학원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무용으로 대학을 갈수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죠. 어떤 대학을 가야하는지 알 수 없어 인터넷을 검색하며 알아보니 각 대학마다 현대무용, 고전무용, 발레 등 다양한 춤을 배울 수 있는 무용학과가 있더군요. 당시에 체육보다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춤에 더 집중할 생각으로 고3 여름, 스스로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다짐한 만큼 이뤄내 봐라!”
 사실 예체능을 하려면 어느 정도 집에서 지원이 가능해야 하는데, 집 형편은 넉넉하지 않아 부모님에게 기대기는 죄송한 상황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리라 마음먹고 부모님께 저의 진로를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은 하고 싶은 일은 부모를 설득해서라도 하고 마는 저를 아셨기에 “네가 다짐한 만큼 이뤄내 봐라” 하시며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 제가 무용을 하도록 응원해 주셨죠. 제가 밤을 새며 차가 다니지 않는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이 그 시간에 저를 매일같이 데리러 와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믿음이 제가 더 노력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셔서 레코드판, DVD 등을 많이 수집하셨던 아버지는 외동아들인 저와 늘 많은 대화를 나눠 주셨죠.

비보잉 하다 무용학과에 들어가니…
 하지만 막상 무용학과에 진학하니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지금은 무용이 어느 정도 대중화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무용하면 어렸을 때부터 재능이 있고 경제적 지원을 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었죠. 더욱이 저처럼 비보잉을 하다 무용을 시작한 경우, 무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용을 잘 할 수 없을 거란 편견이 많았습니다. 교수님부터 학생들 모두가 거의 전통적인 과정을 밟아 왔으니까요. 대학 1~2학년까지 동기들은 이런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죠. 그래서 오히려 대학 친구들보다 예전에 같이 춤추었던 동료들과 소통도 많이 하고 활동도 계속했습니다. 그 속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잠시 방황도 했습니다. 재즈를 오래했으니 재즈나 뮤지컬 쪽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오로지 저의 생각은‘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특이한 커리어가 더 장점이 될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고정된 생각이 전부가 아님을 내 스스로 증명해보고 싶었던 것이죠. 그러다가 대학 안에서 발표나 공연을 할 때 특별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표현하는 것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흥미롭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속에서 저는 점차 자신감을 얻어갔습니다. 

연습에 연습으로 따라잡다
 지금은 현대무용을 하면서 무용 종류의 색깔이 더 다양하고 강해졌기에, 비보잉을 했던 경험을 장점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더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학창시절엔 어떻게든 나보다 훨씬 먼저 전통무용을 시작한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한 가지만을 생각했어요. 내가 해왔던 시간만큼 무용을 더 많이 연습하는 것!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요. 무용학과에는 새벽부터 시작하는 수업들이 많았어요. 1교시 시작 전에 새벽, 아침에 진행하는 발레 등등… 저는 이 수업들에 거의 1년 동안 어떤 일이 있어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며, 그 누구보다 더 많이 무용에 관련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제와 돌아보면 이렇게 했던 시간이 무용의 세계를 이해하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창작의 영감
 여행을 다니거나, 제가 무언가를 보며 느끼고 생각난 것을 메모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영감을 얻습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워낙 좋아해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장면, 대사, 풍경 등을 글로 옮겨 메모를 하죠. 최근에는 어떤 것을 바라볼 때 갖는 나의 심리적 상태가 중요하다는 것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물건, 단어, 지나갔을 때 봤던 담벼락 등 같은 것을 봐도 제가 어떤 심리 상태에 있었느냐에 따라 너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들었던 작품들을 보며 당시에 혼신을 다해 쏟았던 나의 마음 상태가 어땠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과 몸의 표현이 하나가 되지 않을 때
 사실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일어납니다. 작품에 대한 몰입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때와 하기 싫은 것을 할 때가 다르고, 당연히 결과물도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다작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혹 내가 하고 싶지 않거나, 아니면 그런 기회들에 조금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않고 결과물을 내야 할 경우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제의나 공연을 무작정 수락하지 않고, 내가 이것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는지,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지 저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스텝들, 무용수들과도 작품에 대해 수많은 질문을 통해 같이 이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제가 명확한 방향성을 가질 뿐 아니라 이것을 동료들과 정확하게 공유해야 서로를 신뢰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막상 실제에 들어가면 서로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참 어려워요. 최근에도 새로운 작품 연습에 들어가는데 무용수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며 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죠. 나는 정말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가? 이런 고민들은 함께하는 사람들보다 안무가인 제가 몇 배는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무가, 무용가로서 지금까지 올수 있었던 원동력
 춤을 춘지 햇수로 20년 정도 되었는데, 먼저 저는 도전을 하는데 있어 남들보다 거부감이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석사를 마치고 10년이 되었는데, 용기를 내어 박사과정을 밟고 있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같이 작업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제일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작업 속에서 오랫동안 희로애락을 나누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바로 이 사람들과 꿈을 꾸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저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치더라도 제 옆 사람들이 꾸는 꿈을 통해 힘을 얻게 되더라고요. 반대로 그 사람들이 지쳐있을 때 내가 힘을 내기도 하고요. 이렇게 상대방의 꿈을 계속해서 떠올리게 하는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대에서 큰 실수가 준 깨달음
 얼마 전 공연을 하며 큰 실수가 있었어요. 정말 처음 겪는 큰 실수였죠.(어떤 실수였죠?) 공연 중에 순서가 엉키고 틀렸어요.(하지만 관객들은 모를 수도 있잖아요?) 음… 알 정도의 실수였어요. 전에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고 무대에서 나를 표현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점점 관객들은 저를 통해 새로움과 즐거움을 경험하러 왔는데,‘난 예술가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돼! 누구의 평가도 중요하지 않아!’라고 하는 것은, 관객들을 배려하지 않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것임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물론 평가에 연연해서도 안 되지만, ‘오시는 분들에게 꼭 뭔가는 특별한 것을 드려야겠다.’, ‘가짜는 안 된다.’는 부담을 가져오던 상황에서, 이런 큰 실수가 일어나니 마음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실수를 한 친구에게 절대 말을 꺼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먼저 그 친구가 울면서 말을 꺼내더군요. 사실 그 친구도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이것은 우리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우리는 분명 더 연습을 해야 했고, 더 진심으로 노력해야 했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했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거고, 계속 잘 되기만 했다면 그것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 우리는 이 일을 좋아하니까, 앞으로 더 열심히 하자”며 같이 대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제안이 들어왔는데 금방 마음이 설레고 작업을 빨리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며, ‘내가 괴로워했던 것은 잠깐의 감정이었고, 역시 나는 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사실도 함께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답없는 질문


안무가로서 본인의 철학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주제성’ 입니다. 현대무용은 아직도 일반 관객들에게 관심도가 낮습니다. 많은 무용가들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지만,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죠. 현대무용은 추상적인 부분이 강하거든요. 현대무용은 1차원보다 2차원, 3차원적 생각들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관객들이 와 닿게 표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무용은 말로 설명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악수를 하더라도 그냥 악수가 아닌, 어떤 것을 악수라고 관객들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 현대무용의 재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생각하거나 말하고 싶은 것을 전달하려는 마음이 강합니다. 주제를 무용수와 저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줬으면 하는 것들로 표현에 담아내려고 하죠.(무용수가 표현하는 메시지에 관객들을 끌어들여 함께 고민하길 바라신다는 거죠?) 심지어 팸플릿을 만들 때도 작품에 대한 시놉시스가 좀 길어지더라도 관객들이 알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너무 짧고, 현학적이고, 불친절한 설명으로 알아서 해석해보라 한다면 저부터도 난해하고, ‘이게 무슨 말일까?’ 할 때가 많거든요. 제가 관객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하니, “너무 직접적이다. 이러면 너에게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 작품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면, 네가 그것에서 벗어나게 될 때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등의 조언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맞을 수도 있지만, 저는 상상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관객들이 주제를 명확히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이죠.

 

엘리시움


나? ‘춤을 추는 사람’
 저는 춤을 스트릿계열의 비보잉에서 출발해 현대무용을 했지만, 다 같은 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하냐?” 묻는다면, 비보잉 혹은 현대무용이라고 하기보다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르의 구분보다 어떻게 내 색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표현에 제한점을 두지 않고 여러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간혹 익숙하지 않은 동작으로 몸이 아프기도 하지만, 아직도 배울 것이 많고 제가 경험을 해봐야 누구에게 해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제가 춤추는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다른 사람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릿계열을 적용하다보니 기술적인 부분도 많이 들어가고 부상도 입을 수 있지만, 움직임에 있어 특히 역동적이고, 혼자가 아닌 2~3명이 밀착하는 컨택의 움직임을 좋아해서 이 부분의 연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타인들


영향을 받은 스승, 안무가, 무용단
 비보잉에서 무용의 길을 가는 것은 흔하지 않았기에 제 스스로 개척해야 할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도 저에게 무용뿐 아니라 전방위적인 가르침을 주신분은 최상철 현대무용가입니다. 교육자의 마인드가 무엇인지, 예술가로서 삶의 태도는 어떤 것인지 등, 저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거든요. 저는 이분을 통해 열정이란 한 번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꾸준함임을 배웠습니다. 저보다 더 힘든 순간이 많았음에도 계속해서 반복하는 꾸준함이 이 분의 모든 삶의 태도에 배여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공연 속에서 느끼는 열정은 순간적인 감정일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용단으로는 제가 어렸을 때 감동 받고, 한국에 내한했을 때 두 번이나 관람한 벨기에‘울티마 베즈’라는 무용단이 있습니다. 울티마 베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뜻인데, 이 무용단은 이름 그대로 마지막 순간처럼 움직입니다. 숨 넘어갈 정도의 인간 몸의 한계를 표현하는 무용단이죠. 아슬아슬함, 긴장감에 ‘무용수들이 괜찮을까, 저 사람들이 쓰러지지 않을까’하는 걱정까지 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무용수들이 이 무용단에 뽑히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 무용단의 영향을 받아 저희 무용수들의 컨택의 움직임에 대해 더 활발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영국의 ‘디브이 에잇’(DV8) 현대무용단입니다.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무용단으로 인터뷰 형식의 공연을 하는 곳이죠. 대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 많고 장애인, 이슬람 문화, 테러리즘 등 사회적인 이슈나 도전적인 무용을 주로 합니다. 그래서 움직임과 메시지를 함께 전달합니다. 안무가로서는 프랑스 태생의 ‘제롬 벨’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무용을 하는 사람인데 공연에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실제의 삶에서 실행하며 관객에게 진정성을 전달하는 면에서 저에게 영감을 준 분입니다.  

‘대답 없는 질문’작품 탄생 
 무용가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서인지 학생들에게도 조금 다른 조언을 하곤 합니다. 예고수업을 하다보면, 입시에 갇혀 있는 교육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합격과 성공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몇 가지 길이 정답처럼 주어져 있습니다. 너무나 똑같은 질문과 대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죠. 사실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 속에는 정해진 정답없이 수많은 질문과 답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의미 없는 뻔한 질문과 대답을 보며 고민하고 만든 작품이‘대답 없는 질문’입니다. 내가 예술인으로서 이 길을 걸어가려면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나를 표현하는 것이 갇히지 않고 자유로워야 그 과정들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저 스스로도 틀을 벗어나기 위한 도전들을 계속해 와서 그런지 학생들에게 절대, 정해진 질문과 대답을 하지 말고, 내가 정말 이것을 즐거워하는지? 이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 건지? 를 물어보라고 말합니다. 결국 예술은 나 자신의 만족도 중요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도 보여주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죠. 

해외초청 공연의 행복한 기억
 2018년 즈음 스페인에 마스단자(MASDANZA)라는 공모전에 선정되어 투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의 그랑 카나리아(Gran Canaria)섬에서 개최되는 마스단자(MASDANZA)는 독일의 하노버와 슈투트가르트, 그리고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댄스 콜렉션과 함께 안무 콩쿠르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스페인이긴 하지만, 아프리카와 가까운 쪽으로 바르셀로나에서 3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는 섬으로 이루어진 제도라, 개인적으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었죠. 섬, 섬, 섬을 이동하기에 비행기를 마치 버스처럼 타고 이동을 했습니다. 투어 내내 너무 행복했는데, 인구가 많지 않은 작은 극장에서 관객들이 보여주는 반응과 박수는 저에게 대극장에서 몇백 명이 주는 박수보다 더 큰 박수처럼 느껴졌습니다. 즐거워하며 너무나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 문화와 언어를 초월해 저희 공연에 어떤 분은 울기도 했는데, 저조차도 무엇 때문에 울고 계신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외국 관객들은 감정에 솔직하고, 비평적인 시각보다 좋은 점을 봐주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매의 눈으로 보는 경우가 다반입니다. 다들 전문가적인 식견들을 가지고 말이죠. (웃음) 하지만 이분들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며 관객도 어린아이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무용을 보러 오는 것이 마을의 축제이고, 끝나고 나면 우리는 싹 사라지는 반면 그분들은 소통하는 게 너무 당연한 것이었죠. 해외투어를 하며 단원들 사이에서도 좋은 기억들이 쌓여 무엇보다 좋았습니다.

새로운 비상
 올해는 업 사이클링을 주제로 4월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제에 맞게 버려진 장소에 어떻게 의미를 주어 다시 사용할 수 있을지, 그리고 작품에서 주는 메시지와 우리들의 표현을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박사 논문도 잘 마무리하고, 6월 이후부터는 단원들과 함께 고아원 공연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아이들을 위해 공연을 준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12월에는 일본 초청으로 도쿄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전혀 예상하지 않던 뜻밖의 선물에 우리 무용수들이 너무 좋아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며 저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제가 좋아하는 스텝, 무용수들과 저의 경험을 나누는 것이 매번 꾸는 꿈이자 목표입니다. 

···

안무가라하여 인터뷰할 때 말을 잘할까 하는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며 곧 그것이 나의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죠. 올해 40세임에도 보기에는 20대 같은 외모에 보기 드문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작년에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리 인터뷰를 하며 어렸을 때부터 지나온 것을 뒤돌아보고 누가 물어보지 않으면 개인적으로 생각을 잘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에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현재 <프로젝트 넘버> 대표로 있으면서 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공연을 할 때 10명까지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한 번 관계를 맺으면 10~15년 이상씩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는데, 차종현 안무가의 사람 자체를 생각하는 모습을 함께하는 단원들도 보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사람으로 어떤 기회가 오던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는 차종현 안무가가 앞으로도 함께 하는 단원들과 많은 경험들을 계속적으로 나누고, 춤추는 자로 관객들과 온전한 소통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함께하는 프로젝트 넘버 단원들

 

 

차종현(1984~   )
Project No. 대표
한국무용문화포럼 이사

교육경력
중앙대학교 무용학과 강사 
수원여자대학교 연기영상과 겸임교수
충남예고 현대무용 강사
계원예고 연극학과 현대무용강사

수상경력
2014 베이징 국제안무 페스티벌 안무상 수상  
2014 서울 국제안무 페스티벌 
Nigata City Noism Award 수상
2015 독일 하노버 국제안무 페스티벌 파이널 리스트
2019 전국무용제 동상, 2020 충남무용제 최우수상
2021 충남무용제 대상, 전국무용제 은상

공연경력
2018‘대답 없는 질문’안무 및 출연. 
스페인 그란카나리아 투어 초청
2019 전국무용제‘삼탄’연출 및 안무 
(대구 문화예술회관 팔공홀)
2020 서울 즉흥춤 페스티벌‘play fight’안무 및 출연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
2021 modafe 국내초청작‘대답 없는 질문’
안무 및 출연(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2022 SCF‘elysium(layer2)’안무 
(아크로 예술극장 소극장)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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