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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온 벤자민

2023년 2월호(160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8. 12.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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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온 벤자민

나를 이모라 부르는데…
“벤, 배고프지?”
“네, 이모 배고파요! 얼마 동안 잠을 잤는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이틀 동안 잔 것 같아요.”

 깨지 않아서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실컷 자도록 내버려 두었더니 죽은 듯이 자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편한 침대에서 자니까 잠이 더 잘 온 것 같아요,” 스웨덴에 살고 있는 벤은 남미의 페루 마추피추에 여행을 갔다가 한국으로 다시 여행을 왔다. 남미에서 배낭여행을 했는데, 텐트에서도 자고 가끔 숙소에서 자기는 했지만 잠자리가 편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를 이모라 부르는 벤은 정작 이모 노릇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나에게 꼬박 이모라고 살갑게 부른다. 페루의 전통 모자와 차를 선물로 사왔다. 이모라고는 불리지만 멀리 있는 이유도 있고, 다 큰 청년에게 내가 특별히 잘 해 줄 일도 딱히 없어서 그냥 그냥 지내고 있다. 이렇게 이모라 불리니 조금 미안한 마음까지 스멀스멀 올라왔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벤
 3년 전에 벤은 한국에서 1여 년 남짓 지냈다. 스웨덴으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 집에서 한 달을 함께 살았다. 요즘 청년답지 않게 벤은 26살 정도의 나이 또래에 비해 훨씬 성숙했고, 반듯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문화, 역사 등 두루 관심이 많았다. 소향이나 송소희를 좋아하고, 김광석의 노래도 좋아했다. 여느 아이돌 팬처럼 한국 가수를 좋아하는 그런 관심이 아니었다. 여러 면에서 사랑받을 짓을 하는 벤에게 특별히 정이 가서 손님이 아니라 조카처럼 대해 주었다. 그랬더니 벤은 자신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나를 이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벤은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해 고등학교 시절부터 방황의 시기가 좀 있기는 했지만, 일찌감치 자기의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어른이었다.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함께 자주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중에 팜펜션을 하고 싶다기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영월에 있는 수피움, 장수에서 전원생활을 하시는 어른께 같이 가기도 했다. 비록 부모님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벤이 반듯하게 자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모두들 반겨주고 격려해 주셨다. 심지어는 일본에서 왔던 손님도 다음에는 꼭 일본에 놀러 오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벤의 생활
 한국의 여느 학생처럼 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는 그런 코스를 밟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형님을 따라 트럭 운전을 시작했다. 25미터나 되는 아주 큰 트럭을 운전해 온 지가 벌써 10여 년이 된 듯하다. 새벽 이른 시간에 시작 해서 저녁에 마치고 일주일에 80시간 일을 하고, 7일 동안 쉰다고 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하기에는 그리 녹록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쉬는 동안에도 몸을 많이 움직인다고 한다. 1년에 한두 달은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 사람이 거의 없는 깊은 산 속으로 혼자 텐트와 최소한의 음식만 가지고 모험 여행을 떠나곤 했다. 때로는 험난한 자연 속에서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 어려움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몸도 다치고, 마음도 위축되었지만 그런 모험을 멈추지 않고 계속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몇 년을 열심히 일하고 1년 정도는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 물론 여행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최소 비용으로 사는 훈련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인생의 경험으로 삼아가고 있다. 새로운 경험과 특별한 안목을 얻는 공부를 삶속에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면서 산 공부를 하는 셈이다. 그리고 건강을 위해 가끔 단식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잘 챙겨 먹으려고 직접 요리를 하는 것도 즐거워했다. 또한 책 읽는 것을 생활 습관으로 삼고 산다. 책을 스승으로 삼고, 읽은 내용에 근거해 그대로 살아가려 했고, 책 읽는 수준도 아주 높다. 여행을 갈 때도 책을 꼭 챙겨가지고 다니고, 요즘은 태블릿에 1000여권의 책을 저장해 두고 여행 동안 많이 읽는다.  

김치만 먹어도 좋아요!
 벤이 일어나면 배가 고플 것 같아서 언제 일어날까? 쭉 기다리고 있었다. 죽은 듯이 잠만 자더니 겨우 일어나서 배가 고프다고 했다. 

“반찬이 별로 없는데 김이랑 김치하고 먹을까?”
“김치 좋지요. 얼마나 김치가 먹고 싶었는지 몰라요.”
“진짜 김하고 김치뿐이야~”

김장 김치 한 포기를 꺼내서 담고, 곱창 김 몇 장을 꺼냈다. 그리고 밥뿐이라, 아쉬워서 참기름간장과 다른 반찬 하나를 더 꺼내기는 했지만,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밥상이었다. 반찬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좀 있기는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또 색다른 한국 맛이려니 하면서 겨울에 반찬이 없을 때는 이렇게 밥을 먹곤 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양념이 된 도시락 김은 먹어봤지만, 이런 김은 처음 먹어 본다고 했다. 양지바른 툇마루에 소반을 꺼내어 상을 차렸다. 벤이 우리 집에 있을 때 자주 차를 마셨던 자리여서 그 기억을 다시 살려 주고 싶어 그 자리에 앉게 했다. 옛날 소반은 1인용 상이다 보니, 상이 작아서 몇 가지 되지 않은 반찬을 담은 그릇들이지만 한 상이다. 김은 불에 살짝 그을리기만 하고, 칼로 자르지 않았다. 구운 그대로 접시에 담았는데 조금 큰 접시에 담긴했지만 김이 접시를 다 덮어버리고 상을 반이나 차지했다. 

“자~ 먼저 김을 세로로 접어 한번 찢고, 가로로 접어 한 번 찢어봐!”
“모양이 예쁘게 안 찢어져요.”
“응, 그 맛에 먹는 거야”

 그 말을 이해했을 리가 없지만, 손바닥에 커다란 김을 한 장 올리고, 밥을 한 숟가락 뜨고, 김치를 올려 말아서 입에 넣는 시범을 보여 주었다. 벤은 나를 따라서 밥이랑 김치를 올려서 입으로 넣었는데, 너무 커서 입안으로 들어가기가 힘이 들 정도였다. 처음이라 밥의 양을 조절하지 못해서 입안 가득이다. 김을 자르느라 김가루가 이리저리 흩날리고, 금방 내어온 김치 위에도 조금 떨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입맛을 쩍쩍 다셔가면서 맛나게 먹었다. 
지난 여름날에는 상추와 된장으로 밥을 싸 먹은 적이 있다. 쌈장을 만들어 주고는 집 된장의 맛도 조금 보여 주었다. 그런데 장독에서 금방 퍼온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집 된장이 더 맛있다고 하면서 집 된장으로 밥을 먹었던 적도 있다. 우리도 잘 모르는 집 된장의 깊은 맛을 잘 안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벤은 가끔 스웨덴에서도 김치를 만들었다고 사진을 보내 주곤 했다. 재료를 한국에서처럼 잘 구할 수가 없으니 비교적 간단한 깍두기를 만들 정도로 김치를 좋아했다. 들깨 씨앗도 가져가서 화분에 키워서 깻잎을 따서 먹기도 하고, 깻잎 몇 장으로 깻잎 김치도 담구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몸살이 나거나 아프면 몸의 기운을 돋우기 위해 삼계탕을 끓여 먹기도 할 정도로 한국 음식을 좋아했다. 

 


한국 개량 한복도 샀어요!
 등산복만 간단히 입고 왔던 터라 겨울옷도 필요했다. 그래서 벤하고 주변 리사이클 숍을 다녀보았지만, 마땅한 겨울 코트를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바지는 퓨전한복바지, 개량 한복을 하나 샀다. 몸을 꼭 쪼이지 않아 품도 넉넉하고, 좋은 소재로 만든 옷이니 젊은이들이 잘 차려 입으면 얼마나 멋스러운가? 벤은 그 멋을 알기에 개량한복 바지를 고르더니 아주 좋아했다. 바지를 입고 마당에서 멋진 포즈를 취해 보이다가 얼마 전에 등산을 하다가 다친 다리를 삐걱하기도 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고, 그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함께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추운 겨울을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 아무래도 힘이 든 것 같았다. 며칠을 한국에서 지내다가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가서 추운 겨울을 좀 피해 있다가 한국으로 다시 온다고 한다. 그 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좀 쓰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돌아오면 꿈꾸었던 대로 팜펜션이나 카페를 해도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 벤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면 좋을까를 혼자 고민 해 보는 중이다. 벤이 이모라 부르니까, 이모 노릇을 조금이라도 해야 하는데… 벤은 누구보다도 한국 음식, 한국 옷, 한국 노래를 좋아한다. 물론 한국말도 제법 잘한다. 그래서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도 자주 이야기를 하는데, 어디 참한 신부감은 없을까? 

 

서울 혜화동 유진하우스 김영연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0>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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