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 잔 할까?

2023년 3월호(161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3. 11. 19. 17:08

본문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 잔 할까?

출항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는 요트

 

 오래 가까이 지내온 형이 있다. 나의 20대 때부터 허물없이 도심과 숲 속에서 함께 지내고, 20여 년 전에는 말을 타고 서울에서 목포, 제주까지 국토 종주를 하는 최초의 도전을 함께 성공했다. 5년 전에는 28피트 요트를 타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현해탄을 함께 건너고, 3년 전에는 요트를 타고 필리핀을 함께 가기도 했다. 두 편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이자 방송에도 여러 번 출연했던, 엔지니어링 사업가이자 승마 종주 전문가였던 그는 요트 선장이 되어 새로운 모험을 떠났다. 2월 중순부터 50피트 요트를 타고 아내와 두 돌이 안 된 어린 딸 아이, 셋이서 유라시아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유럽에서 인도, 동남아를 거쳐 한국에 오는 요트 여행을 떠난 것이다. 아드리안 해와 아라비아 해, 인도양을 건너는 긴 여행이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이면 그는 수에즈 운하 쯤을 도달했을 것이다. 결혼 전 프로포즈 콘서트, 결혼식, 등단을 하던 시상식 등 내 인생의 중요한 시간들과 위의 큰 모험들을 빠짐없이 함께 하다 보니 으레 이번 일주에도 나는 자동 참가(?)가 되어버렸다.

최소 4개월여를 가야 하는 긴 여정이라 구간을 다 참가할 순 없어 어디쯤에서 합류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랍권이나 인도 쪽에서 합류하자니 비행편이나 교통이 쉽진 않을 것 같고 태국이나 싱가포르 쪽에서 합류하면 비행기도 한 번에 가고 푸켓, 싱가포르, 코타키나발루, 필리핀 팔라완 등 환상의 섬들을 2~3일씩 점핑하며 즐겁게 호핑 트립이 가능할 것 같다. 내심 마음은 그렇게 동남아 일주 쪽으로 기울고 있었지만 구글맵으로 지도를 열어보니 중간에 떡 하니 인도양이라는 푸른 사막이 보인다. 예맨 쯤에서부터 횡단을 하자니 직선거리로 6천km가 조금 안 되는 길이에 인도 아래쪽에는 마리나가 없고 스리랑카의 콜롬보는 2021년부터 발생한 국가 재정위기 등으로 어수선한지 마리나가 문을 닫았다. 중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섬은 몰디브 정도. 편안히 동남아에 놀러가기보다 가서 뭐라도 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인도양 사막을 절반만이라도 함께 건너야겠다 싶다. 
  
몰디브에서 푸켓까지는 요트로 10일 정도의 거리. 적도의 푸른 바다 사막에서 견디는 시간들이다. 적도 부근의 햇살은 해가 뜨자마자 아침부터 살갗을 벗겨낼 듯 뜨겁게 타오를 것이고 바람도 없는 무풍 가운데 들라치면 더위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 피하기 힘든 큰 바람이 두 세 번은 큰 파도들로 배에 들이닥쳐 마음을 꺾어놓을 것이고, 오랜만의 큰 바다에 몸은 또 멀미에 적응하려 3일 정도 죽은 시체처럼 누워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루 종일 흔들리는 배, 한 번에 잠을 푹 자기 어려워 쪽잠을 이어가는 수면 부족에 머리는 멍하니 가끔은 깨질 듯 아프겠지. 장거리 요트 여행은 그렇게 낭만만은 아니다. 기실 견디는 시간, 고온과 바람, 파도와 햇볕에 몸이 절여지는(?)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 선장에게 이 여행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날 것인 자연들의 위협이 아니라 ‘해외 요트 구매’와 ‘요트 세계 여행’이라는 개념을 모르는 공무원들과 행정 시스템으로 보인다. 해외에서 배를 사와 이런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 손에 꼽을 정도니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톤수 규정을 가져와 이것이 맞지 않으니 이탈리아에 있는 선장에게 서류를 여러 번 보강해오라 주문하고 2018년 이후 별다른 사고가 없어 전 세계 요티들이 잘 지나고 다니는 아덴만 지역에 민원이 들어왔으니 무조건 가지 말라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해수부 공무원. 그들의 무사안일과 행정편의주의는 헌법에 규정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자국민의 이동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여행 내용을 커뮤니티에 공유하니 위험한데 왜 가게 하냐고 민원을 넣는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야 밖을 탈출하려 애쓰는 다른 게를 붙들어 같이 탈출을 못하게 만드는 게의 습성을 가진 것은 아닌가 싶다. 요트 관광업을 고민하며 다른 마리나들을 구경 다닐 때, 나는 자신만이 독점해야 하는 밥그릇을 뺏길까봐 경계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여기 있는 한 두 개 업체가 관광객들을 1년 내내 가득 태워도 지역 유입 관광객의 1/1000도 다 못 태우니 서로를 경계할 힘으로 연합해 지역 요트 관광 브랜드를 키워 같이 먹고 사는 쪽으로 사고를 전환하자 이야기 한다.(참고로 서울 지역의 1년 관광객을 다 태우려면 쉼 없이 운항해도 요트 5천대로도 모자라다) 이런 저런 게발 습성을 가진 자를 피하고 어려움들을 뚫고 김 선장은 가족과 항해를 시작했다. 

지구본을 거꾸로 돌리면 우리 앞엔 거대한 서태평양의 입구가 뚫려 있다. 새로운 역사와 이정표가 될, 가족 단위로는 처음으로 유라시아 대륙 바다 횡단을 도전하는 한국인들을 큰 박수로 응원하며, 나도 천천히 모히또 마시러 갈 준비를 한다.

 

세일링서울요트클럽, 모아나호 선장 임대균
keaton7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1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 '지역적 동네'뿐 아니라 '영역적 동네'로 확장하여 각각의 영역 속에 모여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와 그 속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문명, 문화현상들을 동정적이고 창조적 비평과 함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국내 유일한 동네신문입니다.
  • 일체의 광고를 싣지 않으며, 이 신문을 읽는 분들의 구좌제와 후원을 통해 발행되는 여러분의 동네신문입니다.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