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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를 통해 돌아보는 군대이야기

2023년 6월호(164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3. 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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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를 통해 돌아보는 군대이야기

 

지난 4월 11일은 우리 가족에게 조금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의 전역 날이자, 동시에 둘째의 훈련소 퇴소식이 있는 날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저와 아내는 군포에서, 전역하는 첫째 아들은 여수에서 출발해 둘째의 퇴소식이 있는 논산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재밌게도 논산은 군포와 여수에서 직선거리로 거의 동일한 거리의 중간에 위치해 있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이날의 특별함을 더해 주는 작은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30년 전 제가 입대해 훈련을 받았던 곳이 바로 논산훈련소라는 것이죠. 둘째 아들이 저의 훈련소 후배가 된 것인데, 제가 후반기 훈련을 받았던 곳이 아들의 퇴소식이 열리는 장소였죠. 거기다 아들이 5주간 훈련받은 연무대(논산훈련소를 부르는 다른 명칭) 안을 둘러보며, 그곳에서의 저의 군 생활이 새록새록 기억나 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지요. 그러면서 30년 전 나의 군 생활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1993년의 나
우스개 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3위는 ‘군대 이야기’이고, 2위는 ‘축구 이야기’, 대망의 1위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군대이야기를 아무리 재미있게 하는 남자라 할지라도, 다시 군대에 가겠냐고 물어본다면 장담컨대 모두 ‘NO!’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힘든 기억들을 가능한 미화하고 좋은 기억만 떠 올리고 싶은 일종의 기억왜곡이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솔직히 군대에 자발적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저의 경우도 신체검사에서 최대한 낮은 등급이 나오기를 바라기도 했고, 주변에 저보다 더 건강한 친구들이 방위로 빠진 것을 보면서 부러워했으니까요. 그런 가운데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는 자부심, 남자로서 멋진 군 생활을 해보자는 의욕들과 전혀 상관없는 어떻게든 이 시간을 빨리 보내자 라는 마음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 거꾸로 걸어놓아도 돌아가는 군대의 시간을 너무나 무의미하게 흘려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의 삶의 태도는 개인적인 부끄러움을 넘어 저의 앞 세대와 아들세대를 향한 미안함이 되었습니다.


1950년의 아버지
저희 아버지는 1920년 생으로 24살에 일본으로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간신히 살아 돌아오셨습니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아버지는 5년 뒤에 터진 6.25전쟁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셔야 했지요. 아버지는 미국병사들 사이에서 그 모양 때문에 A특공대로 명명된 ‘지게부대’에 일원으로 춘천에서 시작해, 홍천, 양구, 인제의 산악을 오르내리며 탄약과 식량을 지원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사선을 넘나드는 가운데도 다행히 다치신 곳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남한은 6.25전쟁으로 50만이 넘는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다쳤고, 1,000만 명의 이재민과 국토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3만 명이 넘는 미군 전사자를 포함해 15만 명의 유엔군 사상자가 발생했으니,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루고 주어진 것인지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어진 평화와 자유의 시간을 가치 있고 소중하게 사용하지 못한 죄송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3년의 두 아들
저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커서 군대에 가야 하는 것을 한참 걱정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군대 갈 나이가 되면, 통일이 되거나 직업군인제가 되어 군대에 의무적으로 갈 필요가 없을 거야.’라는 말로 위로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이었는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중국공산당의 대만 침공 위협, 북한의 핵무기 위협 등으로 한반도에 언제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험악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으로 절감하고 있습니다. 앞 세대의 희생 속에 주어진 평화의 시간을 진보라는 교묘한 말장난과 포퓰리즘에 선동되어 분열과 대립, 엄청난 빚더미로 날려버린 우리의 선택, 혹은 우리의 무관심과 함께 말이죠.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있는 K-시리즈를 한방에 날려버릴 이러한 커다란 짐들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떠맡긴 미안함을 어찌해야 할까요?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편엔 예비군마크를 단 첫째와 다른 한편엔 이등병 계급장을 단 둘째와 함께 걸어가는 저에게 뿌듯함 보다 무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버지의 공통된 마음일 것입니다. 군장을 메고 얼차려를 받던 연병장을 바라보며 세상에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아버지의 등이 아닌, 개인뿐 아니라 시대의 짐을 등에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런 뒷모습을 보여줄 것을 조심스럽게 다짐해 봅니다.

 

경기도 군포시 고종훈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4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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