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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등장과 고조선, 일본의 등장과 대한제국

2023년 7월호(16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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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철의 한국사칼럼 37]

원나라의 등장과 고조선,
일본의 등장과 대한제국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조선은 단군이 세운 조선을 말합니다. 대부분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고’를 붙였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기자조선 또는 위만조선보다 앞서 세워졌다고 해서 ‘고’를 붙인 것입니다. 또 ‘古(고)’에는 오래되었다는 뜻 말고 ‘고전(古典)’이나 ‘상고주의(尙古主義)’의 ‘고’처럼 ‘이상적인’이란 의미도 갖고 있답니다. 우리나라의 첫 나라이면서 이상적인 국가라는 의미의 ‘고조선’이란 나라 이름이 생기게 된 배경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송나라가 멸망하고 이민족인 몽골(원)이 새로운 중국의 주인으로 바뀌어 가는 시기였습니다. 고려의 입장에선 예전에 요나라와 금나라의 침략과 압력을 받았지만 그래도 중국의 주인은 여전히 송나라였습니다. 따라서 한족의 송나라가 멸망하고 이민족의 몽골이 중국을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적 상황은 지금까지 고려가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답니다.
우리는 흔히 일연의 《삼국유사》가 몽골의 침략에 저항하기 위해 편찬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언급하고 단군신화를 실은 이유도 원에 대한 저항정신을 고취 시키려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또 다른 이유 하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중심이 송나라에서 원나라로 바뀌는 시대적 격변기에 우리 역사에 대한 자각이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는 중국의 역사를 기준에 두고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았다면 절대적 강자는 없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의 출발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조선과 단군신화를 언급하고 고조선이 세워진 시기도 중국의 요임금과 같은 시기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삼국유사》는 원에 대한 저항이라는 수동적인 의미보다 새로운 시대, 자기 찾기라는 능동적인 측면에서 쓰여졌다고 보고 싶습니다.

대한제국의 궁궐 경운궁(덕수궁)


시대는 바뀌고 또 바뀝니다. 세계를 주름잡던 원나라도 명나라에 의해 북쪽으로 쫓겨났습니다. 고려도 친원파와 친명파로 갈렸지요. 친명파인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원명교체기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송원교체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 이상적인 국가 ‘고조선’이 등장했습니다. 원명교체기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 ‘조선’이 등장하였습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조선’이란 나라 이름은 명나라 황제에게 청해서 받은 이름입니다. 이때의 조선은 단군조선이 아니라 중국인 기자가 와서 세운 기자조선을 말합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이란 책에서 중국 황제가 지어 준 ‘조선’이란 나라 이름이 ‘가장 이상적이고’ 그 이전 자기들이 마음대로 지은 ‘신라’, ‘고구려’, ‘백제’ 등의 이름은 정식 이름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송원교체기에는 우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이상적인 ‘고조선’이 등장했지만 원명교체기에는 중국을 닮기 위한 ‘이상적인 조선’이 등장했답니다. 
그런데 이때의 중국 닮기는 문제가 심각했어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시대가 바뀌어도 중국 ‘명’ 닮기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는 망했지만, 명나라의 정신은 조선에 남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중화를 대신하는 소중화(小中華)가 조선이라고 여겼으니까요. 물론 현실의 중국인 청나라에 대한 정치적인 사대는 예전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가 등장했습니다. 1894~1895년 중국과 일본이 맞붙은 것입니다. 조선은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이기리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송원, 원명, 명청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주도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한중일 초유의 상황이 벌어져 버렸답니다. 이때 조선에서 새로 생겨난 나라 이름이 대한제국입니다.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1896년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건양’이란 연호를 사용하고 이듬해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황제국 ‘대한제국’을 선포하였습니다. 일본의 승리를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세계 변화에 나름대로 능동적으로 대처했지요. 물론 대한제국이 이름뿐인 제국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독립국으로서의 ‘제국’을 만들어 가는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대한제국이 멸망했다는 결과론적 시각만으로 대한제국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시대적 격변기에 우리는 두 가지 길을 걸어왔습니다. 주체적인 입장에서 ‘고조선’과 ‘대한제국’을 만들어냈다면 수동적인 입장에서 ‘조선’을 만들어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명으로 바뀔 때 스스로 나라 이름을 정하지 못한 것이고 명청으로 바뀔 때 시대의 대세를 따르지 않은 점입니다. 앞으로 시대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명협 조경철, 연세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한국사상사학회 회장
naraname2014@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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