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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남기는 무게감 삶의 기한

2023년 7월호(165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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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 남기는 무게감
삶의 기한

 

장인어른의 소천이 임박했다는 소식에 일손을 중단했다. 나는 현재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봉사단원의 신분으로 있으니 특수한 상황을 적용받아서 한국에 다녀오는 수밖에 없다. 부모와의 이별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아내의 음성은 슬픔으로 떨렸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하는 때란 걸 직감하게 만들었다. 월요일쯤에 주치의의 소견서를 받아서 약간의 절차를 밟고 토요일에 출발하는 비행 편을 예약했다. 일주일 안에 심장의 작동이 멈출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그간 심장박동기의 도움을 받아서 팔십 중반을 넘기신 것도 운이라면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소견으로 인해 자녀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해외에 나가 있던 자식과 사위, 손주며느리까지 속속 입국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삶이 마무리되는 시간의 자리엔 묵직한 진중함이 흐르고 세상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잔잔한 애도가 깃드는 듯하다. 


아직 학기 중이지만 기꺼이 잘 다녀오라고 위로하는 교장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이 있다. 내게 주어진 2주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 모든 일이 조화롭고 순적하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오늘 오후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지구 반대편을 향해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1년을 다 마치기도 전에 한국에 다녀오고 가족을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슬픔과 애도의 차분한 마음의 준비 중에도 아내와 아이들을 만난다는 기쁨을 감출 수는 없다. 다만 감사함 속에도 깊은 애도의 빛이 바래지 않도록 자중하면서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나의 몫을 감당해야겠다. 

 

 


내 아버지의 부음을 접했을 때는 지방에서 한참 행사 진행을 연출하던 순간이었다. 오랜 익숙함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지만,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서 카메라 커팅을 외치는 콜의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오랫동안 병마로 누워 계셨던 탓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찰나를 특정해내지 못할 만큼 아버지의 마지막은 희미하고도 알 수가 없었다. 이것도 거의 10년 전의 일이다. 


키갈리의 공항에서 비행 편을 이용하면 부른디를 거쳐 에티오피아에 도착해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하게 된다. 피곤하기야 하겠지만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이기를 이용하면 시공을 초월해서 내일 밤이면 서울의 집에서 저녁을 먹게 될 것이다. 초고속 연결 사회에서 AI의 등장과 챗봇의 놀라운 기능에 찬탄을 금치 못하고 놀라운 인류의 성과물들을 누리며 살지만 또 한편으로는 겸허함을 잃을 수 없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라는 점, 내겐 2주간의 시간만 서울에서 머물 수 있다는 점. 기한이 있기 때문에 삶이 더 값지고 아름다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 
매 순간이 소중하고 귀하다.

 

 

CMC프로덕션 제작이사/PD 이준구
brunch.co.kr/@ejungu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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