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
내 고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시인 이육사의 《청포도》 싯구처럼 7월은 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지난 6월 말 첫 수확을 시작하여 여름 내내 잔뜩 영근 포도송이를 따기에 부산한 고장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경북 영천이다. 이곳의 포도재배면적은 2,200ha 정도로 수확량은 전국 10%를 차지한다. 대구에서 가까운 영천은 강수량이 적은 대신 일조량이 풍부하여 당도가 높고 알이 굵은 최상급 포도를 생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포도는 전 세계 과일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세계 전역에서 폭넓게 재배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퀴즈 하나! 포도의 최대생산국은 프랑스일까? 정답은 이탈리아로 연간 850톤 정도를 생산하여 단연 1위이다. 2위 중국, 3위 미국, 4위 프랑스, 5위 스페인 순인데 칠레, 남아공 등이 신흥생산지로 부상하고 있어 6대주 어디에서건 포도밭을 볼 수 있다.
원산지는 서아시아의 반사막지대이다. 재배역사는 구약성경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로 유명한 노아가 심은 포도나무와 포도주 이야기가 실려 있어 기원전 2000년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도(葡萄)란 말은 이란어 Budaw를 음역한 것으로 중국 한나라 무제 때 장건이 서역에서 가져와 재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충렬왕 11년에 원제가 고려왕에게 포도주를 보내왔다고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되어 있고 이색의 《목은집(牧隱集)》, 이승인의 《강은집》에도 포도가 기술되어 있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포도, 포도뿌리, 포도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 포도 - 성질이 평하고 맛은 달고 시며 독이 없다. 습비(濕痺)와 임병을 치료하고 오줌이 잘 나가게 하며 기를 돕는다. 따 두었다가 마마 때 구슬이 돋지 않는 데 쓰면 매우 효과적이나 많이 먹으면 눈이 어두워진다.
2. 포도뿌리 - 달여 마시면 구역질과 딸꾹질이 멎는다. 임신 중 태기가 명치를 치밀 때 마시면 곧 내려간다. 오줌을 잘 나가게 한다.
3. 포도주 - 얼굴빛을 좋아지게 하고 신장을 따뜻하게 한다.
포도는 피로 회복과 해독작용에 특효가 있는 천연물질이다. 포도는 당질이 주성분인데, 포도에 들어있는 포도당과 과당은 소화를 촉진하고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 포도에는 주석산과 사과산이 0.5~1.5%, 펩틴이 0.3~1%, 비타민B복합체, 탄닌 등이 들어있어서 장의 활동을 돕고 해독작용을 하여 변비에 특히 좋다. 특별히 포도의 영양은 껍질과 씨앗에 몰려 있다. 껍질에 들어있는 레스베라트롤 (resveratrol)은 항산화 작용, 항암작용, 항염증 작용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이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 심혈관질환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포도씨에는 OPC(Oligomeric Proanthocyanidin)라는 폴리페놀 성분이 있어 비타민E의 50배가 되는 강한 항산화 효과를 나타내고, 혈소판이 서로 엉기는 것을 막아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 줌으로써 심장병도 예방한다.
최근 러시아의 한 연구팀에서는 45세 이상 중년 여성들에게 포도껍질과 씨 추출물을 섭취하게 한 결과, 2시간 만에 세포내 콜레스테롤 농도가 최고 700% 감소함을 입증한 바 있다. 프랑스인은 흡연, 비만, 고혈압 유병률이 미국, 영국 등 다른 서방들과 별 차이가 없는데도 심장병에 의한 사망률은 두 세 배 이상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9년 WHO의 조사에 의해 채소, 과일 및 올리브 오일 등의 지중해식 식사법과 하루 200ml 이상 마시는 포도주가 그 비결로 밝혀졌다. 즉 ‘프렌치 패러독스’의 요체인데 포도주에 든 폴리페놀화합물이 심장병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폴리페놀은 체내 유해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 물질로 심장병 외에 노화, 암, 동맥경화 방지에도 유효하다. 이 물질은 포도껍질 쪽에 몰려 있어 포도껍질째 숙성 발효시키는 와인이 생포도 대신 베스트푸드로 각광받고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포도의 항산화 능력을 비교해 보면 백포도주보다는 적포도주가, 적포도주보다는 포도원액 주스가 더 높다. 하지만 포도주의 일일 권장량은 20~50ml로서 반 잔 이하의 분량이 적당하다. 적포도주는 편두통을 일으킬 수 있고, 효모나 세균의 발육을 억제하기 위해 포도주에 사용하는 이산화황이 잔류할 경우 천식을 유발할 수도 있다. 과음하면 일반 술과 같은 폐해를 부르니 이래저래 권장량 범위 내에서 즐기는 것이 좋겠다. 생포도 역시 잘못 먹으면 독이 된다. 위장병, 궤양이 있는 사람은 포도 껍질이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포도송이에는 백색 가루가 덮여있는데 농약으로 오인하여 닦아낼 필요가 없다. 이 가루가 누룩 역할을 하여 잘 발효되도록 돕기 때문이다.
K-Geofood Academy 소장 신완섭
《코리안 지오푸드》저자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5호>에 실려 있습니다.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는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매월 댁으로 발송해드립니다.
연락처 : 편집장 김미경 010-8781-6874
1 구좌 : 2만원(1년동안 신문을 구독하실 수 있습니다.)
예금주 : 김미경(동네신문)
계 좌 : 국민은행 639001-01-509699
칠레에서 본 K-문화 (1) | 2024.05.21 |
---|---|
내 삶을 버티게 해주는 기록의 힘! ‘사회일지’ (1) | 2024.05.18 |
흰어리연 (0) | 2024.05.18 |
마지막이 남기는 무게감 삶의 기한 (0) | 2024.05.16 |
평창 산골에서 본 ‘아르헨티나의 춤들 작품 2번’ (Argentine Dances, op 2) (0) | 2024.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