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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점입혼(一鮎入魂) 40년! 한국 은어 낚시의 대가 ‘한용범’

2023년 8월호(16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2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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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김미경이 만난 사람]

 

일점입혼(一鮎入魂) 40년! 
한국 은어 낚시의 대가 ‘한용범’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느니 낚시는 배우지 말거라~”
포항 부근에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 많습니다. 4~5월 봄이 되면 기수지역에 어김없이 바다에서 강으로 은어가 올라옵니다. 소상(遡上)이라고 하죠. 이 은어 낚시는 3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이 먼저 하셨어요. 낚시 실력도 친구분들에 비해 월등하셨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은 일본 야마구치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에 아는 분들이 많았는데, 그 당시 일본에는 은어 낚시가 대단히 발달해 있었어요. 아버님은 일본 분들과 종종 강으로 나가 낚시를 하시곤 했는데, 저는 점심도시락, 술 등을 자전거에 싣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배달을 해야 했죠. 그때가 중학교 1학년쯤이었는데, 아버님이 식사를 하시는 잠깐 사이 낚싯대를 잡아보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시고 아버님은 “공부에 소홀할 수 있느니 낚시는 배우지 말거라~”하셨어요. 물론 나중에는 낚시가 골프로 바뀌긴 했지만요.

본격적으로 낚시에 첫 발을 내딛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군대에 다녀온 후, 포항에서 가장 가까운 영덕 오십천에서 본격적인 낚시의 첫발을 디뎠습니다. 이곳 은어는 중국에서 온 사신을 대접하거나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릴 정도로 정말 맛있습니다. 《영덕읍지》(盈德邑誌)기록을 보면 제때 진상을 못해 파직을 당한 정인함, 이인기, 이해관 원님들의 이름도 나와 있습니다. 그때는 냉동, 냉장 시설이 없었고, 특히 비가 오거나 홍수가 나면 은어를 잡지 못하는데도 말입니다. 은어 낚시의 기술을 원로분들에게 많이 배웠는데, 특히 영덕 토박이 어르신들께 은어 낚시의 역사와 근원에 관해 많이 여쭈어봤습니다. 이를 토대로 추측해 보건데, 예전 일제강점기 시절 영덕에는 이주해 온 일본 사람들이 다수 있었는데 이 분들을 통해 은어 낚시 기술이 영덕에 전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낚시의 최고봉 은어 낚시, 하지만 낚시 매너는?
흔히 은어 낚시를 낚시의 최고봉이라고 합니다. 즉 낚시의 마지막 도(道)가 은어 낚시인거죠. 예를 들면 다른 물고기 낚싯대 길이가 4~5m라면, 은어 낚싯대는 8~9m로 세차게 흐르는 강에서 힘있게 두 다리로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고품격의 은어에 비하면 은어를 낚는 낚시인의 매너는 아직 성숙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낚시를 하면 그곳에서 30~40미터 거리를 띄어주는 게 예의인데, 바짝 붙어서 해요. 은어가 좀 낚인다는 생각이 들면 욕심이 나서 그러는 것이지요. 또 어떤 낚시인은 낚시를 마치고 귀가할 때, 은어를 손질한 내장을 돌 위나 강바닥에 내팽개치고 가버립니다. 물속에라도 넣어주면 물고기 먹이라도 될 텐데 말이죠. 이러니 낚시터에 악취가 풍기고 수질이 오염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 블로그에 ‘자손만대에 물려줄 우리의 하천은 우리가 지키자.’라는 글을 올렸는데, 일본의 어느 재일교포가 우연히 저의 글을 보고 연락이 왔더군요. “당신의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라면서요. 알고 보니 이 분은 동경에서 유명한 한식당을 운영하는 박진호님이었어요. 저희 아버님처럼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해방이 되자 고향인 경남 함양으로 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그 당시 우리나라는 먹고 살기가 어려워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셨는데, 지금까지도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계시더라고요. 이 분과 한국에서 만남을 가졌는데, 그 이후로 일본의 지인들을 데리고 한 번, 두 번 은어 낚시를 하러 한국에 오시더군요.

복닥거리는 일본 낚시터 VS 천국 같은 한국 낚시터
박진호님과 동행한 일본 낚시인들은 “한국은 은어 낚시의 천국”이라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한국의 은어가 일본의 것보다 훨씬 크고 맛도 좋으며 낚싯대에 전해지는 손맛이 절묘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의 은어 낚시터에는 낚시꾼이 너무 많아 거의 포화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은어 낚시를 즐기는 사람이 한국은 겨우 500명 남짓인데 비해 일본은 150만 명이니 낚시 시장이 비교가 안 됩니다. 일본은 은어가 서식하는 하천도 500여개나 되어 은어 낚시터 관리를 어협에서 합니다. 어협에서는 사업적인 목적으로 자신들의 하천에서 큰 은어가 낚이면 낚시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신문에 대대적으로 홍보를 합니다. 그러면 신문기사를 읽은 낚시꾼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몰려갑니다. 낚시터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게다가 낚시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권, 월권, 년권의 입장권을 구매해야 하고,(각 하천의 입장료는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입장권을 낚시꾼이 입고 있는 조끼에 부착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천 감시원이 멀리서도 망원경으로 입장권의 소지 여부를 체크 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고 낚시를 하다 적발되면 현장에서 돈을 더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니 낚시터가 인산인해가 되어도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하지만 일본 은어가 맛이 없는 이유는 양식 은어를 방류하기 때문인데, 결국 일본의 하천에서는 한국처럼 자연산이 아닌 양식 은어를 잡는 것이죠. 한국의 은어낚시가 이렇게 일본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특히 제가 소개한 곳에 가면 팔이 아프도록 은어를 실컷 낚을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일본의 낚시 잡지사와 신문이 취재를 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러면서 취재진이 저에게 “왜? 이런 좋은 물고기를 한국 사람들은 잡지 않는 것이죠?”라고 묻더군요. 일본에서는 은어는 국어(國魚), 즉 나라를 대표하는 물고기라고 여길 정도로 일본 사람들의 은어 사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매년 약 150~200명의 일본 낚시인이 한국을 방문할 정도였으니까요. 

은어 낚시를 통해 한일의 역사 관계를 논하다
비가 많이 내려서 하천이 흙탕물로 변하면 은어 낚시는 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저는 일본의 낚시인들과 주변의 역사박물관에 갑니다. 그러면서 한일 역사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죠. 어떤 분은 한반도에서 전래된 아스카 문화에 대해 알고 있지만 일부러 먼저 말하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게이오 대학에서 일본 역사를 전공한 어떤 분은 “강의 시간에 일본의 천황은 백제의 피가 섞였다. 천황이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라고 교수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며 솔직히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1853년 미국 페리 함대의 무력시위에 영향을 받아 일본이 일찍 개항을 했지만, 한국으로부터의 발달된 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일본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일본의 지인들에게 가끔 우리 역사와 관련된 유튜브 영상도 보내는데, 일부러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하고 훼손한 내용들을 보냅니다. 낚시의 최고봉인 은어 낚시에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열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인데, 물론 모두는 아니겠지만요. 은어 낚시 때문이기는 하지만 일단 한국에 오면 한국의 언어나 문화를 접해야 되기에, 한국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기본 틀이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합니다. 의외로 저의 이런 노력에 찬성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일본 사람들도 있습니다.

 

섬진강에서 놀림 낚시로 낚은 은어(은어 낚시꾼들은 항상 계측자를 휴대함)

 


일본 털바늘 은어 낚시 동호회의 초청을 받다
 은어를 잡기 위한 방법 중에 털바늘 낚시가 있습니다. 털바늘은 순금이나 금으로 도금한 구슬을 끼우고 털을 감아 만드는데 물속에서 묘하게 반짝입니다. 이것은 물고기의 시선을 끄는데 아주 효과적이죠. 일본에는 이 털바늘로 은어를 낚는 동호회(日本鮎毛バリ釣り団体協議会)가 있습니다. 금년에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는 오랜 전통의 명문 낚시 동호회입니다. 2013년 이 동호회의 ‘사와도 카나메(澤渡要)’회장님이 저를 3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해 주셨습니다. 이 분은 일본에서 자석 공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한일 낚시 교류를 통한 한일관계의 회복방안에 대해 연설을 한 번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한국을 방문한 일본 낚시인들에게 말했던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죠. 직접 원고를 써서 7~8분정도 연설을 했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보며 서로 반목과 질시만을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된 부분은 인정하고, 서로 돕고 이해하며 미래를 향한 진보의 발걸음을 시작해야 한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자 동경제국호텔 연회장을 가득 채운 낚시계의 원로들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를 쳐주더라고요. 일본의 노년층들도 분명히 한국의 문화를 흠모하고 한국의 저력을 인정하고 있음을 피부로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일본의 양아버지, 오구치 슈헤이(小口修平)선생님!
일본에 제가 양아버지처럼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다. 올해 100세로 일본 낚시잡지 ‘낚시인/쯔리비토’의 회장이신 오구치 슈헤이(小口修平)선생님입니다. 1960년 후반, 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한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당시 우리나라 문화공보부와 협의하여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노력하신 적이 있다고 합니다. 오구치 선생님은 저를 자식처럼 여기시고 한국에 자주 오셨는데 항상 저를 만날 때마다 “겸손하게 살아라. 돈을 열심히 벌되 남에게 베풀어라. 담배는 멀리 해라. 과음을 하지 말라”등의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이 말을 생활신조로 삼으며 명심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한국의 낚시잡지사(낚시春秋社)에도 많은 낚시 자료와 책의 편집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2010년 영주 부석사 방문, 오구치 슈헤이(小口修平) 선생님과 동경의 박진호씨 제일 왼쪽이 은어 낚시의 대가 한용범



은어 낚시! 40년 넘게 진심인 이유 ‘일점입혼’(一鮎入魂)
2019년까지 약 25년 동안 경북 포항에서 대학입시학원을 운영했습니다. 저는 수학과 화학을 담당했는데 특히 화학 과목은 참고서가 필요 없이 강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통달했습니다. 고3시절 화학시험 문제가 잘못 출제되어 정답이 없음을 발견하고 답안지에 “정답이 없습니다”라고 적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 후 선생님은 졸업할 때까지 무조건 만점의 화학시험 점수를 주셨습니다. 학원 운영에 매일 매일이 바빴지만 제가 은어 낚시에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은어가 가진 특성 때문입니다. 은어는 맑은 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은어 낚시터의 주변 경관 역시 뛰어납니다. 물속에 들어가 낚싯대를 드리우면, 눈앞에는 산과 구름이, 귀에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회상해보고 앞으로의 삶을 구상하게 됩니다. ‘이런 무릉도원에서 낚시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라고 스스로 위안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것에 한눈을 팔지 않고 일점입혼(一鮎入魂/은어 한 마리 한 마리를 낚는데 온 신경을 집중한다)하는 제 스스로가 때로는 대견하기도 했으니까요.

은어 낚시의 역사! ‘영덕어촌민속전시관’에 녹여내다 
대게로 유명한 영덕 강구의 삼사해상공원에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 수산동식물 전시실, ‘영덕황금은어낚시전’ 코너에 수십 년 전의 은어 낚시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어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영덕군에서 박물관 한쪽에 코너를 마련해주어 원로들에게 기증받은 옛 낚시 도구와 영덕 문화원에서 보관 중이던 조선시대의《영덕읍지》(盈德邑誌) 원본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일본 낚시인들에게도 저의 취지를 말하고 협조를 부탁했더니 자신들이 보관하고 있던 은어 낚시 도구를 선뜻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리 정성을 다해서 만든 우리나라 유일의 ‘은어 전시관’을 2008년 영덕군에 기증했습니다.

 

 

▲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실내 ‘은어전시관’


우리나라 은어 낚시의 메카
한국의 대표적인 은어 낚시터는 하동 섬진강과 산청 경호강입니다. 그외 강원도 양양 남대천, 울진 왕피천, 영덕 오십천, 울산 태화강, 거창 황강, 전북 진안 용담댐 상류가 있죠. 산청 경호강은 약 15년 전에 제가 낚시 잡지에 최초 공개 했습니다. 요즘은 산청 경호강이 은어 낚시인들의 사랑을 받는 은어의 메카가 되었습니다만, 은어의 맛은 다른 하천의 것보다 조금 뒤쳐집니다. 은어는 원래 봄에 바다에서 올라와 가을에 강에서 산란하고, 부화 후 다시 바다로 내려가야 자연산인데 은어들이 바다로 가고 싶어도 중간에 진양댐으로 막혀있으니 댐에서 겨울을 지내게 됩니다. 바닷물은 구경도 못하고, 봄이 되어 다시 올라오다 보니 은어 맛이 제대로 나지 않습니다. 경상북도 쪽은 은어낚시를 위해서는 봄에 무조건 비가 많이 와주어야 합니다. 올해 은어 낚시는 흉작입니다. 특히 영덕 오십천은 하구 쪽의 대게상가에서 정화처리 되지 않은 오수를 무단방류하니 오염이 극심해 바다에서 은어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정말 유명한 곳이었는데 말이죠. 낙동강 하류를 타고 안동까지 600리를 은어가 올라왔지만 지금은 중간 중간 댐으로 어로가 막혔습니다. (40년 은어 낚시를 하시면서 그동안 하천의 변화를 체감하셨을 것 같네요) 

은어 낚시의 가장 큰 복병, 수산자원보호령 제9조?!
옛날에는 은어 낚시를 하러 타지에 가면 그 지방 낚시꾼들의 텃세가 심했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팔을 걷어 부치고 심하게 싸우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지방 낚시꾼들의 의식수준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은어 낚시의 복병은 다름 아닌, 수산자원보호령 제9조입니다. 모든 어류의 금어기를 법령으로 정해놓았습니다. 은어의 경우 수년전까지 8월16일부터는 낚시가 금지 되었습니다. 한창 은어가 성장할 시기라서 은어의 뱃속에 아직 알도 생기지 않았는데 은어 종족 보존을 위해서 낚시를 하지 말라했으니까요.(네? 웃음) 한마디로 탁상행정의 전형적인 표본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산자원보호령을 개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을 했고, 매스컴을 통해 그 부당성을 이야기하여 급기야 금어기가 9월15일부터로 조정되었습니다. 반면 이웃 일본은 금어기가 없습니다. 일본은 봄에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은어가 극소수 입니다. 일본 하천의 은어 중 약 70%는 인공 양식은어를 방류한 것입니다. 반대로 한국은 약 80%이상이 자연산이죠. 일본은 매해 봄에 다시 치어를 방류할 테니 능력껏 실컷 잡아도 된다는 식입니다.

은어 낚시 초보자는 주목하세요!
은어낚시를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하려면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먼저 기본적인 도구를 언급하자면, 8~9m의 긴 낚싯대와 은어를 담는 직경 30cm이상의 뜰채, 낚시 바늘, 살아있는 은어를 보관하는 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미끼(씨은어)는 현지 식당에서 파는 양식 은어를 구입 하거나, 먼저 와 있는 낚시꾼에게 한 마리를 분양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은어의 꼬리 부분에 낚시 바늘을 달아 물속으로 보내면 영역을 가진 은어가 씨은어를 공격하다가 걸려듭니다. 무엇보다 은어 낚시에서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폭우가 내려 강물이 불어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하고 안일한 생각을 하는데 요즘처럼 갑작스런 집중폭우가 내리면 물이 탱크처럼 몰려옵니다. 일본에서는 매년 여러 건의 익사사고가 발생합니다. 또, 천둥번개가 치면 긴 낚싯대는 대단히 위험합니다.

은어 때문에 절을 받다!! 
은어는 돌에 붙어있는 이끼를 먹고 자랍니다. 그래서 은어에서 수박향 또는 오이향이 납니다. 은어를 먹어 본 사람들은 은어의 진미를 잊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10년 전쯤 경북 경주에 사시는 이모부님이 “옛날에 은어를 먹어 보았는데 다시 한 번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침 집의 냉장고에 보관 중이던 냉동은어를 가져다 드렸더니 조카인 저에게 큰절을 하셨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암투병을 하시던 이모부님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은어 낚시가 가져다 준 그 날의 감격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500여명 은어 낚시인과 함께하는 꿈
우리나라의 은어 낚시인은 약 500명 정도라고 추산됩니다. 가능하다면 500명이 모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정부의 수산자원 담당자와 어떻게 하면 강을 살릴 수 있을까 하고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궁리해 보고 싶습니다. 어협에서 하천 입장료를 받아 500여 곳의 낚시터를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치어를 방류하는 일본을 모델로 삼아 우리나라도 은어의 관광자원화를 위해 획기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은어 낚시를 관광자원화해서 외국인들을 오게 하고, 은어를 이용한 전통음식을 개발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바입니다. 저는 하동 섬진강 화개장터나 울산 태화강이 은어의 관광자원화에 최적지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울산 태화강은 국가정원과 민물어류생태관 등 볼거리가 많고 하천 주변에 식당 시설도 완벽하게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대만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이고 깊은 계곡이 많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별도로 강을 관리하지 않아도, 낚시 동호회가 자발적으로 하천을 청소하고 치어를 방류한다고 합니다. 매년 각 동호회에서 은어치어를 구입해 방류한 후 성어가 되는 여름에 낚는 것이죠. 이런 노력을 동호회 회원들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대만 낚시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

인터뷰를 마쳐갈 즈음, 선생님께 이리 은어에 대해 일점입혼(一鮎入魂)을 하셨는데 반면 가족은 어땠는지, 특히 사모님은 어떠셨는지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젊었을 때 낚시에 미쳤다고 바가지를 많이 긁혔죠. 더구나 은어 낚시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도구나 장비도 많이 나눠주어 ‘산타 한’이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저에게는 철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은 내가 책임진다는 거죠. 낚시 준비부터, 낚시를 하고 돌아와 은어를 손질하고, 냉동실에 넣는 뒤처리까지 모두 제가 합니다. 아내에 대한 배려인거죠. 요즘에는 은어 낚시 갔다 오면 왜 이리 빨리 왔냐고 합니다.”라며 허허 웃는 모습에서 은어 낚시 대가로서의 여유와 올곧은 자세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간 은어 낚시를 통해 한용범 선생님이 담당해 온 멋진 한일 민간 외교가 열매 맺기를 바라며, 강물에 반짝이는 은어처럼 감동적인 500여명 은어 낚시 모임도 새롭게 만들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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