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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보자!

2023년 8월호(166호)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24. 5. 2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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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 
먼저 ‘다양성’을 인정해보자!

 

주말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지난 한 주 내가 본 공연들 중에서 인상 깊었던 공연을 복기해 보는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공연의 제목은 <만병통치약>. 제목만 들어도 속이 시원해지는 공연이었다. 출연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가 안은미 씨와 젊은 소리꾼 서도가 함께 꾸미는 무대였다. 오프닝은 옛날 가수 신 카나리아 씨가 부른 ‘나는 열일곱’이라는 노래를 안은미씨가 립싱크로 부르며 시작되었다. “나는 가슴이 울렁거려요. 당신만 아세요. 열일곱 살이에요…” 객석을 채우고 있는 관객은 20대부터 60대 까지 다양했는데 일부 나이 드신 관객들은 따라 부르기도 하며 공연을 즐겼다. 그 후엔 서도밴드의 리드싱어 서도가 드랙 퀸 복장을 하고 나와서 80~90년대 유행했던 가요를 그의 창법으로 불렀고 안은미 무용단의 젊은 무용수들이 객석에서 관객들과 함께 춤을 추며 공연이 무르익었다. 생각해 보니 드랙을 소재로 한 콘텐츠들을 나는 꽤 많이 보아왔다. 뮤지컬 <킹키부츠>, <헤드윅>, 영화 <more or less>, 웹툰 <오! 나의 퀸> 등 한바탕 신나는 공연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문득‘요즘 부쩍 드랙 퀸 공연들이 눈에 띄네… 이건 무슨 현상이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드랙(Drag)이란 ‘Dressed as a Girl’의 약자이고, 드랙 퀸이란 스커트, 하이힐, 화장 등 옷차림이나 행동을 통해 과장된 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를 일컫는 말이다. 주로 유희를 목적으로 한 연기(퍼포먼스)의 일종이라는 면에서 트랜스젠더와는 구분된다. 드랙은 그 기원이 셰익스피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에는 공연에 여자가 무대에 오를 수 없는 시대였다. 그래서 여자 역할을 남자가 해야 했는데 그때 남성 배우가 여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 것에서 드랙이 기인했다는 주장이 가장 유력한 설이 되었다. 지금 우리나라 공연계에 유명한 드랙 공연의 주인공들은 지반, 보리, 나나영롱 킴, 김치, 모어 등으로 이들은 ‘드랙 아티스트’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 주에 예약한 공연도 ‘모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드랙 아티스트 모지민이 꾸미는 <로미오와 줄리엣 and more>라는 공연이다. 이젠 이런 공연들이 메이저 극장에서 공연을 할 정도로 공연의 소재가 다양해졌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걸 의미하는 것일까?

 

드랙 - 출처:경향신문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 뮤직에는 인기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Tiny Desk Concert)’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이 콘서트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들이 줄지어 출연하고 있다. 만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싶다면 이 채널을 통해야 한다는 불문율 까지 있을 정도로 이 채널은 대중음악인들에게 인기 있는 등용문이다. 이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우리나라 국악밴드가 출연해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공연을 시청했는데 바로 <Sing Sing 밴드>다. 그들이 부르는 음악 장르는 우리나라 민요를 기반으로 한 국악 록 그룹으로 분류하는데 그 밴드의 리드 싱어는 드랙 퀸 복장을 하고 민요를 부르는 이희문 씨다. 그 후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희문 씨는 국악씬에서는 가장 바쁜 일정으로 모시기 어려운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70년대 이전 출생하신 분들은 LGBTQ라는 말을 듣기만 해도 불편해하실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LGBTQ는 성 소수자 Lesbian(여성 동성애자), Gay(남성 동성애자), Bisexual(양성애자), Transgender(성전환자), Queer(성 소수자 전반) 혹은 Questioning(성 정체성에 관해 갈등하는 사람)을 일컫는 약자이다. 이미 서양은 LGBTQ를 차별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하는 것만큼 금기해야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교육하고 있다. 우리 문화와는 차이가 있지만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빠르게 교류되는 이때 우리나라도 다문화 인종들이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만큼 LGBTQ문제도 부각 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문화예술은 어느 정도 서양과의 교류가 실시간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의 다양성 문제가 이미 표면화된 것 같고 문화콘텐츠에서는 그 소재로 사용된 지 오래 되었다. 올해 5월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는 여주인공 에어리얼을 흑인 여배우 할리 베일리가 맡아 큰 화제가 되었고, 개봉 전부터 흑인 여주인공이 어울리느니 안 어울리느니 노이즈 마케팅을 노린 캐스팅이라느니 말이 많았었다. 개봉 후 흥행 성적표를 보니 그동안 제작된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 참담한 성적으로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었다고 한다. 디즈니의 최고 다양성 책임자(CDO) 수석 부사장 레톤드라 뉴턴은 2017년부터 디즈니의 다양성 및 포용성을 이끌어왔다. (이런 부서까지 디즈니에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그는 이번 흑인 인어공주를 배후에서 캐스팅하는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하는데 처참한 이 프로젝트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고 한다. 활동명 모어로 활약하고 있는 드랙 예술가 모지민씨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주변에 드랙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디바를 표현하고 싶어 해요. 휘트니 휴스턴이라든지, 레이디 가가라든지… 왜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니라 휘트니 휴스턴이고 레이디 가가일까요? 공연이나 패션쇼를 보면 남자 옷보다는 여자 옷이 더 화려하잖아요. 그렇지 않던 시대도 있었지만, 대부분 남자들은 화려하게 치장하거나 입는 것이 금기시됐으니까요. 요즘은 젠더리스 시대라지만 성 역할의 경계가 완벽히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어릴 적 여자 아이들이 전쟁놀이나 칼싸움 같은 놀이를 하면 ‘여자아이가 드세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남자 못지않게 큰 인물이 되겠다’느니, ‘여장부감이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남자 아이가 성격이 소극적이거나 바느질을 잘하거나 자동차보다 인형 같은 장난감을 좋아하면 말 그대로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였다. ‘사내놈이 그런 거 좋아해서 크면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고 ‘그러면 못 쓴다’고… 여자아이의 일탈보다 더욱 강도 높게 혼을 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 박혀있는 성역할조차 남녀가 평등하지 못했던 시대였다.

내가 아무리 공연기획자라도 이런 불평등한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일반인들에게 드랙 공연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라는 말은 차마 못하겠다. 이 글은 페미니즘이나 젠더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글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공연예술 작품에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재로 이용되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기 전에 내용을 보고 한번 이해해보자는 이야기다. 예술의 중요한 가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생각의 프레임을 예술이 바꿀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고,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해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준비를 하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 보자.

 

서울 예술의전당 손미정
mirha2000@naver.com

 

 

이 글은 <행복한 동네문화 이야기 제166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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