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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력(球歷) 40년! 골프 지진아!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9.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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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날아온 편지]

구력(球歷) 40년! 골프 지진아!

 

  1971년 봄, 휴스턴의 석유탐사 회사에 근무하며 스물여덟의 도미 1년 차 독신이던 저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양 선배를 찾아 텍사스 남부의 학교 촌 College Station시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자원공학과 선배로, 남영동의 ‘국립지질조사소 물리탐사실’에서 같이 근무하던 소박한 성품의 양 선배는 이국 생활의 외로움도 달래고 ‘한국말’도 실컷 할 겸 찾아가는 저를 늘 반갑게 맞아 주었죠. 하루는 둘이서 가볍게 산보나 할 겸 숲 속을 걷는데 마치 거짓말같이 넓고 고운 잔디가 나타났습니다. 융단을 깔아 놓은 듯싶은 잔디 위에서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얘기를 하다 보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피크닉 장소가 어디 있으랴 싶더군요. 그런데 그것도 잠시, 우리와는 꽤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고함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긴 했지만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겠거니 하며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죠. 그런데 잠시 후 소리 없이 달려온 조그만 사륜차에서 덩치 큰 미국인이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자리를 피하라는 손짓을 하는 겁니다. 황망히 그곳을 피한 후에라야, 앉아 봄을 만끽하던 자리는 College Station의 한 골프장 끝자락에 있는 숏홀 그린이었고, 클럽을 휘두르며 아우성 친 사람들은 그린에 볼을 한 샷에 붙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는 골퍼들이었습니다.

 


  그 당시, 새마을 운동으로 허리띠 졸라매던 시절이라 “골프라는 스포츠가 있다”더라 정도의 말만 들으며, 먼 나라 배부른 사람들의 사치스런 게임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 제가 회사로 돌아와 ‘한 번 골프를 배워보자’라고 생각하며 동료에게 이야기를 하니, 저의 말을 귀담아 들은 한 직장 동료가 어느 날 골프 초년생은 헌 채가 제격이라며 가방과 함께 골프채를 건네주더군요. 동료로부터 기본 폼도 배우고 여기저기서 동냥 레슨도 몇 차례 받고, 레인지 볼 연습장을 찾아 옆 사람 스윙을 눈 여겨 보아가며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프로에게 정식 레슨없이 여기저기서 동냥 코치를 받으며 골프를 시작한 저는 어느새 ‘내 버릇대로의 자세’가 되어 누가 바로 잡아주면 공이 안 맞는 등 혼란을 겪곤 했습니다. 88 올림픽 폐막식 즈음, 고국으로 취직이 되어 다시 와 보니 골프는 우리나라 중년층을 파고들어 골프를 쳐야 문화인 대열에 선다는 소리를 듣게 되더군요. 고국의 눈부신 발전에 감회가 새롭고 어떤 것은 미국을 앞지르고 있는 것도 감탄이었지만, 미국에서 열 번을 치고도 남을 라운드 비용을 한 번 치는데 써야 하는 고비용 스포츠가 되어 있었지요.


  임직원간의 인화를 사훈으로 삼은 대기업에 근무한 저로서는 상하가 유별난 회사조직을 그대로 필드에다 베껴다 놓은듯한 ‘친선 골프 토너먼트대회’에 나가야 했습니다. 사실 팀에 민폐를 끼칠까 때로는 ‘비나 억수같이 와 회동 계획이 취소되기를’ 바라기도 하는 구제 불능의 외인이기도 했습니다. ‘골프 천국’인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 골프는 제법 치겠거니 생각했던 사람들이 죽을 쑤는 저의 행태에 도리어 위로를 하는 일도 있었지요. 이렇게 ‘골프 천국’ 미국에서 어영부영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도리어 닦달받던 저는 골프와는 별 상관없는 또 다른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는 저에게 미국에서 제대로 골프를 배우지 않았냐며 애석해 하는 사람도 없었고, 골프채가 후지니 어쩌니 말해줄 명품 마니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골프는 10여 년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3년여 눌러 앉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조차도 나에게 애증의 친구가 된 거 있죠. 자카르타의 골프장들은 안전관리가 잘 되어 있지 않아 코스마다 나이 어린 현지 아이들이 포진하고 있었고, 워터해저드마다 물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다가 수장되는 공들을 지체 없이 자맥질해 비닐봉지에 가득 채운 후, 코스 간 길목 숲 속에 숨어 있다가 골퍼들에게 반값으로 파는 겁니다. 공을 사 주지 않는 것만이 이들을 골프장에서 근절하는 길이라지만,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루는지 물 있는 곳엔 늘 한두 명의 아이들이 물 위에 머리만 동동 띄운 채 골퍼의 비운(?)을 기다리고 있었지요.


  자카르타에서 다시 미국 오렌지카운티로 돌아와, 이제는 골프 천국에서 ‘실수’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골프장을 찾기 시작한 지 어언 15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골프는 여전히 죽마고우이나 연애할 만큼 뜨겁지 않은 것은 아마도 빤한 실력에다 나름대로 ‘할 일’들이 있어 골프를 우선순위에 놓지 않는 미지근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와는 떨어질 수 없는 필연과 같은, 저의 은근한 친구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언제라도 가고 싶으면 덥석 품어주는 골프장이 가까이 있고, 골프를 칠만큼은 성한 제가 행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필요 이상으로 남을 의식하며 하는 라운드가 아니고, 저에게 최상의 시간을 만들 수 있는 편안한 골프장 분위기가 좋습니다. 텍사스 A&M 대학촌, 골프장 그린 위에서 소풍하다 골프장 관리 요원으로부터 망신 당한지 어언 40여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타수 100을 웃도는 저는 확실히 ‘골프 지진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한스럽다거나 못났다 생각하지 않고 골프를 평생 친구로 삼으려 하고 있으니, 어찌 보면 지금 이 순간도 미국에서 큰 ‘실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문병길 드림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89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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