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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을 찬 보안관

삶의 스토리

by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2017. 10. 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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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도전이야기]

수첩을 찬 보안관

 

 

당당하게 시작하다!
  보안관 생활 7년째... 대체 무슨 보안관인지 궁금하시죠? 보안관 하면 악당들을 소탕하는 서부극이 떠오르실 겁니다. 제가 담당하는 보안관은 학교 내외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예방하고, 부적응 어린이를 살피며 학생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니 더 멋진 일이 아닐까요? 2010년, 서울 시내 국·공립초등학교에 학교보안관을 모집하던 첫해,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원을 했습니다. 경찰, 군인, 교직원 퇴직자들이 주를 이룬 지원자 중에 여자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당당했는데, 이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때의 초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먼저 시작하자!
  저에게는 이 일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5~6세 정도 되었을 때, 저는 가정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어요. 죽음까지도 생각할 만큼 힘든 상황이었는데, 식음을 전폐한 채로 15일을 보내고 나서 마음에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이 세상에 죽지 않고 살아야 한다면 반드시 할 일이 있을 거다. 그게 뭘까? 그걸 찾자!” 구청을 찾아가서 소년소녀 가장들의 명단을 받아 그 가정으로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찾아간 집들은 달동네에 고만고만한 여러 가구들이 모여 사는 곳에 있었고, 거기서 저는 연말이면 신문에나 나올 법한 불우한 청소년들을 만났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웠기도 했지만, 어른들의 잘못으로 깨어진 가정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이 잘 자라야 사회에 유익이 되는 어른들이 될 텐데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죠. 여기에 내 가정, 남의 가정의 일이냐를 구분할 게 아니었어요. 방치된 가운데 망가지는 아이들은 누구의 잘못이며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사회 혹은 나라인가? 그럼에도 누군가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사람부터 먼저 시작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첫발을 디뎠습니다.

 

더 어릴 때부터...
  그런데 불우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오히려 나 자신에게 소망을 주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삶에서 지쳐서 의미를 잃어갈 때면, 오히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었던 겁니다. 중학교 생활지도부 청소년 상담으로 2년 동안 근무를 하면서 알게 된 무서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중학생이 되면 초등학생 때보다 더 폭력적이 된다는 겁니다. 체구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자아가 강해지니까 다루기가 정말 힘듭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바른 심성을 가지도록 해 주자! 보안관을 지원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웃으면서 아이들에게 다가갑니다. 좀 부족한 아이라도 인정해 주면 자존감이 살아나서 자신감이 생기고 훨씬 활기차게 생활하는 것을 많이 발견합니다.

 

새까매진 7권의 수첩
  저는 해마다 학기 초에 수첩을 준비합니다. 올해로 7권 째 수첩이 되었습니다. 봄마다 새학기에는 깨끗하던 수첩이 가을을 지나 겨울이 되면 점점 새까맣게 되고 내용이 가득 채워집니다. 1학년 1반부터 아이들의 이름과 번호, 그리고 기억할 만한 특징과 매일 매일의 변화와 특이한 사항들로 가득 채우지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예전아이들처럼 마냥 순수하지만은 않는 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아이들 자체는 사랑스럽지만 아침 등교시간에 자세히 살펴보면 씩씩거리거나 슬픈 눈빛 또는 화난 표정 등의 다양한 부정적인 모습이 많이 눈에 뜨입니다. 이런 안타까운 표정 하나하나가 제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누가 일찍 등교하고 하굣길에는 누가 어떤 학원 버스를 타고 가는지가 다 기억나곤 합니다. 심지어 밤에 잠들 때에는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등교 할까가 걱정되고 마음 쓰여지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렇게 7년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지요.

 

 

우리학교 주인은 학교보안관님?
  이제 3년 후면 저는 은퇴합니다. 그 동안 힘든 일도 있었지만 보람 있었던 일도 참 많았습니다. 까불고 싸우고 말썽부리던 아이들이 의젓하게 중고생이 되고 심지어 씩씩한 군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기도 합니다. 학생과 교직원과 학부모님들도 보안관이 계서서 안심된다며 참 좋아들 하시곤 합니다. 얼마 전에 1, 2학년에게 ‘우리 학교의 주인은 누구입니까?’라는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어느 아이는 ‘학교보안관님이요’라는 기분좋은 선물같은 대답을 하기도 했습니다. 엉뚱한 답이지만 내심 싫지는 않습니다. 저의 시선이 아이들에게서 늘 있었음을 아이들도 알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니까요.

 

2막 인생

  이렇게 정들었던 보안관 일을 마무리 하고 저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 뿐 아니라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분들 역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생각은 많지만 선뜻 나서거나 도전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멈추지는 않나요? 7년 전에는 저도 그랬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용기 내어 일찍 일을 시작 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집니다.
  이제 3년 후면 그동안 마음으로 그려왔던 일을 실제로 해야한다는 생각에 문득 마음이 바빠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친정 부모님이 전통방법으로 만들어 내시는 된장과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명절 때마다 만드셨던 전통 유과를 전수받기로 하고 해마다 내려가서 배우고 있습니다. 콩심는 것으로 시작하여 메주를 쑤어보고 메주를 짚 끈으로 묶어 천정에 겨우내 매달아 띄워보며 된장 담그는 방법을 실습합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해 오신 어머니의 손맛을 쉽게 따라갈 수는 없으니 열심히 실패를 거듭하면서 배우며 본격적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누구에게나 편안한 휴식처가 되는 어린 시절 자란 시골집에서 제2의 인생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활기차게 살고 싶습니다.

 

bhdiak@hanmail.net
초등학교 보안관 교사 이보현

 

이 글은 < 행복한동네문화이야기 제 96호 >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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